‘네이티브 충청도민’이 그려낸 ‘단발머리 깡패’가 대중들의 사랑을 받기까지...
자로 잰 듯한 칼단발머리에 비범한 패션 센스, 고향에 계신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충청도 사투리의 이 ‘빌런’을 일약 스타로 만들어준 대사다. 고작 4~5화 만에 씬 스틸러로 급부상한 SBS 금토드라마 ‘열혈사제’의 미워할 수 없는 악역 ‘롱드래곤’, 장룡은 그야말로 이 드라마의 최대 수혜자라고 불릴 만 하다.
배우 음문석이 서울 중구 카페 어반스테이에서 ‘일요신문’과 인터뷰를 가지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서울 중구 서소문로 카페 어반스테이에서 ‘일요신문’과 만난 배우 음문석(37)은 ‘롱드래곤’이 아닌 ‘숏드래곤’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드라마가 끝난 지 열흘 남짓 지난 지금까지도 “얼떨떨한 기분”이라던 그는 아직 대중들이 자신에게 보이는 관심이 신기하기만 하다고 했다.
소속사들의 러브 콜도 이어지고 있고, “배우 음문석의 인생에 이제까지 없었다”는 광고 요청도 처음으로 경험해 봤다는 게 그의 솔직한 심경이다. “저는 지금 겪는 게 다 처음이다. 하나도 안 신기한 게 없고, 정말 행복한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라며 설레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장룡’이 처음 나왔을 때 방송가에서도 “저런 신인을 어디서 데려 왔지?”라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그러나 음문석은 경력 15년의 ‘중고 신인’이다. 2005년 래퍼 ‘SIC’으로 데뷔 후 연기자를 병행하면서 저예산 단편 영화를 제작하거나 직접 출연해 왔다. 상업 영화에도 출연했지만 ‘부대원 4’ ‘주인공의 선배’처럼 이름이 없는 배역에 그치면서 큰 스포트라이트는 받지 못했다.
그런 만큼 ‘장룡’이라는 배역이 그에게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 “거리를 지나다 보면 어머니뻘 되시는 분들부터 다양한 연령층이 제게 ‘팬이에요’ 라고 하시는 걸 보고 (마음이) 되게, 어떻게 표현을 못 하겠더라. 너무 감사한 마음”이라며 “15년 활동기간 동안 지금을 행복 지수로 잡자면 100퍼센트를 넘어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장룡이 잘 된 게 아니라 드라마가 잘 된 거다. 모든 포지션에서 모든 배우들이 잘 연기를 해줬기 때문에 장룡도 여기에 힘입어서 사랑을 받은 거다. 제가 특별히 사랑을 받았다기 보다는 그냥 머리가 단발머리고 캐릭터가 강해서 눈에 띄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배우 음문석. 사진=최준필 기자
다음는 음문석과의 일문일답.
–칼단발머리의 양아치 캐릭터는 확실히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쎈 캐릭터’인데 촬영 중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밥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장룡 복장 그대로 놀이터에 갔는데 어르신들은 저를 이상하게 보고, 젊은 친구들은 슬슬 피해 가는 거다. 범죄자 보듯이… 빨간 정장, 파란 정장을 입고 머리는 단발머리인데 이게 또 남자다. (비주얼이) 피할 수밖에 없는 거다. 나중엔 더 나이 드신 분들이 오셔서 ‘여자여, 남자여’ 그런 것도 물어보시더라. 방송이 조금 진행된 뒤 단발머리 장룡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많이 알아보셨던 것 같다. 그 때부턴 이상한 사람 바라보듯이 하지 않고 사랑스러운 눈길로.(웃음)”
–장룡이라는 캐릭터를 만드는 데 본인도 많은 아이디어를 냈을 것 같다.
“제가 처음 서울 올라올 때 지방에서 온 티를 안 내려고 원색 옷을 많이 입었었다, 튀어 보이려고. 촌스러운 거 세 겹 씩 입고 색도 흰색, 노란색, 빨간색이고… 그런 원색 옷인데 실크 재질 정장, 컬러풀한 남방 같은 걸 걸치면 좀 더 장룡스러울 것 같더라. 이에 금니도 6개월 간 붙이고 있었다. 참고로 제가 극중에서 금목걸이도 하고 나오는데 가짜다. 자세히 보시면 극이 진행되면서 금목걸이 색도 점점 바래고 있다.(웃음)”
‘장룡’의 단발머리를 설명하고 있는 배우 음문석. 사진=최준필 기자
–감독님이 음문석 씨를 처음부터 ‘장룡’ 역으로 생각하고 있었나.
“제가 준이 형(고준) 보다 먼저 캐스팅이 됐었는데, 드라마 ‘귓속말’에서 제가 좀 과묵한 역으로 나오는 걸 보고 다들 이번엔 훈석이로 캐스팅 된 거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원래는 감독님하고 먼저 (장룡 역) 리딩을 하는데 감독님은 이미 다른 누군가를 염두에 두신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날 저녁에 동대문에 가서 옷도 사고 단발 가발도 사서 다 입고 셀카를 찍어서 감독님께 보내드렸더니 ‘ㅋㅋㅋㅋ’ 하고 답장이 오더라. 그걸로도 안 될 거 같아서 아예 영상까지 찍어서 보내드렸더니 ‘그래, 같이 가자’ 이렇게 된 거다.”
–아무래도 뼛속까지 나쁜 ‘빌런’보다는 미워할 수 없는 ‘개그 캐릭터’에 가깝다 보니 후반부에 갈수록 망가지는 장면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특히 ‘설사화’ 장면은 시청자들로부터도 많은 동정을 받았는데.
“저는 그 장면 정말 열심히 찍었다. 어떻게 하면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해서 제가 어릴 때 배가 너무 아픈데 주변에 화장실은 없고, 참을 수가 없는데 참을 수밖에 없는 그 경험까지 총동원해서 찍었다.(웃음) 사실 그날 장룡이 입은 옷이 극중에서 장룡도 처음 입었지만 음문석도 처음 입은 옷이었다. 돈 많이 들였는데… 처음엔 스태프분들도 옷이 망가지는 씬이니까 좀 어두운 색으로 입자고 하셨는데 제가 설득했다. 백 정장에 그런 사태가 벌어지면 반응을 더욱 극대화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버리더라도 입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결국 그 옷 버렸다.(웃음)”
–동료 배우들과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듣고 싶다.
“성균이 형(구대영 역)하고 촬영하는데 왕맛푸드에서 같이 싸우는 씬에서, 원래 대본에서는 성균이 형이 박치기를 하고 저는 쓰러지는 것으로 끝이었다. 그런데 누워서 둘이 마주 보려니까 너무 웃긴 거다. 그러다 둘이 계속 투닥투닥 싸우고 있으면 웃길 것 같아서 추가 씬으로 서로 원심력을 이용해서 때리는 씬을 넣었다. 그런데 형이 힘 조절이 안 돼서 엄청 세게 때리는 바람에 둘 다 웃음이 터진 거다. 그 장면도 자세히 보시면 제가 혼신의 힘을 다 해 웃음을 참고 있는 게 보인다. 그리고 성균이 형과 찍은 또 다른 씬 중에 장룡이 구대영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자백하는 게 있는데 술 취해서 하는 대사들은 전부 애드립이다.(웃음)
배우 음문석. 사진=최준필 기자
남길이 형(김해일 역)하고는 그 ‘굉장히 우아한 몸동작이니께’ 씬이 기억에 남는다. 사실 그 씬에서 대사 애드립은 하나도 없는데 ‘피지컬 애드립’은 있었다. 단발머리를 휘날리는 것이라든지 카포에라 동작이라든지. 그 당시 남길이 형이 정말 고통과 슬픔에 잠긴 한 남자, 사제로써 걸어오고 있는데 저는 카포에라를 하고 있으니 얼마나 웃겼겠나. 형이 아예 저와 눈을 못 마주쳤던 기억이 난다. 준이 형(황철범 역)하고 제가 같이 나오는 씬은 대부분 진지한 씬이라 웃을 수 있는 씬이 거의 없었다. 형과는 항상 진지하게 캐릭터 이야기, 어떻게 연기하는 게 좋을까 하면서 의논했던 것 같다. 그런데 사실은 정말 재밌는 형이다. 제가 10년 알고 지냈는데 엉뚱한 면이 정말 많다. 갑자기 춤추지 않나 노래를 부르지 않나… 저랑은 코드가 정말 잘 맞는데 (대중들도) 언젠가 형이 재밌는 사람이라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웃음)”
–배우가 실제로 충청도 출신이었다는 것에도 대중들이 많이 놀랐던 것 같다.
“저 온양 출신이다. 충청도 사투리의 그 뉘앙스는 배운다고 나오는 게 아니다. 네이티브 아니면 못한다.(웃음) 어르신들이 쓰는 말투를 섞어서 해서 더 자연스럽지 않았나? 이번에 장룡이란 캐릭터로 충청도 사투리를 알게 되신 대중들이 충청도 사투리가 절대 느린 것만이 아니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사실 장룡의 충청도 사투리도 제가 하자고 말씀드렸었다. 극중에 팔도 사투리가 다 나오는데 충청도 사투리가 나와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배우 음문석. 사진=최준필 기자
–현재는 소속사 없이 단독으로 움직이고 있어 스케줄 조정에 어려움이 있지 않나.
“사실 드라마가 끝나고 소속사 제안이 정말 많이 들어왔다. 다만 조금 신중하게 결정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제 나이가 이제 서른여덟이고, 계약을 해서 활동하게 된다면 곧 마흔이 되지 않겠나. 저와 맞는 색깔, 제가 함께할 수 있는 코드 등을 신중하게 보면서 천천히라도 오래 함께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싶다”
–대중들에게 어떤 배우로 각인되고 싶나.
“장룡을 보고 대중들이 저를 찾아주신다면 그 연기를 좋아해주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중들이 좋아하는 연기인데 백 번인들 하면 어떻겠나. 이미지가 고정될 수 있다는 걱정은 하고 있지 않다. 저는 지금이 시작이고, 뭘 해도 처음일 수밖에 없다. 만일 대중들이 ‘음문석이란 배우가 이런 걸 하면 괜찮겠다’라고 하신다면 또 해보겠다. 지금 너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서 감사하면서도, 어떤 작품으로 보답할 수 있을까 고민도 든다. 어디에서든 정말 지금 사랑해주시는 만큼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그만큼 고민도 많이 하고 밀도 있게 훈련해서 빠른 시일 내에 찾아뵙도록 하겠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