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만 몰리자 여론 조작설에 북한 개입설까지…청와대 ‘누굴 답변자로 세울까’ 고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패스트트랙 처리와 함께 4월 임시국회는 몸싸움과 고성으로 얼룩졌다. ‘국회 선진화법’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국회 곳곳에서 거친 설전이 오갔고, 국민들에게 ‘정치 혐오’를 부추겼다. 분노한 민심은 청와대 국민청원을 향했다. 지난달 22일 청원 게시판에는 ‘자유한국당 정당 해산 청원’이라는 제목의 청원 게시글이 올라왔다. 이 청원에 참여한 인원의 수는 174만 1908명(3일 오후 2시 42분 기준)으로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처벌 감경 반대 청원’의 역대 최다 기록인 119만 2049명을 넘어섰다.
그리고 같은 달 29일, 이를 견제하듯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정당 해산 요구 청원도 올라왔다. ‘더불어민주당 정당해산 청구!!’라는 제목으로 29만 3919명이 청원에 동참한 상태다. 증가하는 국민청원 참여자 숫자에 양당은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특히 한국당은 음모론을 내세우며 청원 신뢰도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국당이 처음 내세운 것은 ‘여론 조작설’이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보도에 따르면 민주당 보좌진들이 학부모 모임 사이트에다가 한국당 해산청원을 같이 해달라는 글을 올린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치가 정말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심재철 의원도 “국민청원은 네이버와 카카오톡, 페이스북, 트위터 등 네 가지 계정으로 접속 가능해 서로 다른 이메일로 무한대 작업이 가능하다”고 꼬집었다.
여기에 민주당도 반박에 나섰다. 이종걸 의원은 “한국당 주장대로 한 사람이 SNS 4개의 계정으로 청원을 했다고 해도 160만 명이면 40만 명이 분노를 표출한 것”이라며 “겉으론 별 것 아니라고 무시하지만, 속으론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숫자”라고 맞섰다.
청원 참여 인원의 증가세가 꺾일 줄 모르자 한국당은 북한 배후설을 제기하며 ‘색깔론’으로 몰고 갔다. 나 원내대표는 “보수궤멸, 한국당 궤멸을 청와대 청원을 통해 가짜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지난달 18일 우리민족끼리(북한 대남선전매체)에서 ‘한국당 해체만이 답’이라고 말한 지 4일 만에 청원이 올라왔다”며 “북한에서 하라는 대로 대한민국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정용기 정책위의장도 “북한 배후설은 제가 팩트를 근거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무게를 실었다.
민주당은 여기에도 반격에 나섰다. 이해식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한국당은 민의의 중요한 바로미터이기도 한 청원 숫자를 ‘조작이다’, ‘숫자는 의미 없다’면서 애써 부인하더니 마침내 ‘북한이 개입했다’며 가짜뉴스를 흘리고 있다”며 “색깔론으로 국면 전환을 모색하는 수법은 독재 시기나 지금이나 똑같다. 자유한국당은 언제쯤이면 그 ‘만성적인 유혹’에서 손을 뗄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청와대 청원에 문제를 제기한 것은 한국당뿐만이 아니었다. 이준석 바른미래당 최고위원까지 청와대 청원에 ‘베트남 트랙픽 증가’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4월 30일 페이스북에 국제 웹 통계 사이트 ‘시밀러웹’의 청와대 홈페이지 3월 방문자 자료를 공유하며 “3월 한 달간 베트남 트래픽이 전달보다 2159% 증가했다. 이 시기 월말에는 윤지오 관련 청원이 있던 시기”라고 밝혔다. 동시에 청와대에 정확한 수치를 요구했다. 마치 청원 게시판이 조작됐다는 것을 에둘러 주장한 듯한 모습이었다.
이에 청와대는 곧바로 구글 애널리틱스 자료를 제시했다. 청와대는 “4월 29일을 기준으로 청와대 홈페이지 방문자를 지역별로 분류한 결과 97%가 국내에서 이뤄졌다”며 “미국 0.82%, 일본 0.53%, 베트남 0.17% 순”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1일 “청와대의 3월 베트남 트래픽 유입 설명에 따라 해당 트래픽이 4월 말에 진행된 정당 해산 관련 청원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은 작다”며 의혹 제기를 철회했다.
이어 “3월 윤지오 씨 청원 관련해서 베트남에서 이상 트래픽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3월이라고 명시적으로 언급했다. 제가 외부사이트에서 확인하는 건 알 수 없으니, 청와대가 서버 로그 데이터를 공개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면서 “그런데 한국당 정용기 의원이 뜬금없이 ‘청원한 사람 100만 명 중에 14만 명이 베트남 사람이라더라’고 말했다. 너무 당황스러웠다”고 밝혔다. 이어 “주장이 혼입됐다. 그래서 제가 오해하게 한 소지가 있다면 책임감을 가지겠다고 글을 올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청와대는 이 민감한 청원에 답변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들은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은 청원에 대해 청원종료일로부터 한 달 이내에 답변해야 한다. 청와대는 청원에 답변할 후보를 찾고 있는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김형연 법무 비서관, 강기정 정무수석, 복기왕 정무 비서관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한편, 정당해산심판은 법무부 장관이 정당의 목적‧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봤을 때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헌법재판소에 해당 정당의 해산을 청구함으로써 시작된다. 정당해산심판은 일반 국민이 청구할 수 없고, 정부만이 제소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정당해산 심판은 2013년 11월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으로 당시 법률상 청구 대표자는 황교안 전 법무부 장관(현 한국당 대표)이었다. 통합진보당은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해산됐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