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풀리지 않는 문제와 정면으로 부딪치는 과정” “부산 총선에 다음 정권 운명 걸렸다”
이상호 민주당 사하을 지역위원장. 사진=김상문 객원기자
그가 ‘노사모’라는 정치인 팬클럽에 가입한 지 18년이 지났다. 당시 성공한 사업가였던 이 위원장도 긴 세월 동안 시민운동과 정당 생활을 보내며 정치인으로 거듭났다. 그는 ‘2002년 선거에서는 대통령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단지 노 전 대통령을 꼭 당선시키고 싶다는 의욕으로 뛰었다’고 고백한다. 17년이 지난 지금 이 위원장은 누군가의 당선이 아니라 ‘뿌리 깊은 사회 문제를 풀어보고 싶다’고 정치의 이유를 말한다. 다음은 일문일답.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가 다가왔다. 어떤 기분인가.
“노무현 대통령을 가까이 모시는 분들은 어떤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가까이 있었던 적은 별로 없었다. 지금도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 늘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노무현과 바보들’이란 다큐 영화에 출연했다. 보고 나니 어떤가.
“다른 사람들은 진지하게 나오는데 나만 좀 우습게 나오는 것 같아 걱정이다. 영화는 생각보다 흥행이 안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아쉽다. 이번 영화가 ‘노무현입니다’보다 영화적 메시지가 명료하고 전달력도 좋다고 생각한다. 보수정권이 아닌 문재인 정부 반환점을 도는 시기상 흥행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 반환점을 도는데 오랜 친노로서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을 평가한다면.
“먼저 ‘친노’라는 단어가 적절한가 묻고 싶다. 민주당 내에서 친노로 불리면 정치적으로 유리한 지점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그렇게 분류되는 게 나하고 잘 안 맞는다. 친노로서 정치 활동을 했다기보다는 노무현 대통령 팬으로서 활동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친노 이상호’로 불리는 게 정치인으로서는 나쁘지 않지만 그 프리미엄에 올라타는 느낌이 들어서 마음 속에서 탁 걸린다. 친노 주류, 친노 비주류, 비노 비주류 등으로 정의되는 게 우리 당에도 크게 도움 되지 않는다는 생각도 있다. 친노가 아닌 한 명의 정치인으로서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 돌아보면 점수를 매기거나 이렇게 하기 좀 어렵다. 워낙 어려운 상황에서 많은 과제를 안고 출범했다. 세 가지 중요한 과제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남북 문제, 다음은 적폐 청산, 마지막으로 경제다. 경제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가피한 상황이 너무 많다. 기업 하나 창업을 해도 3년간 흑자 내기가 어렵다. 3년은 준비하고 투자하는 시간이다. 이명박 정권, 박근혜 정권 때 너무 경제의 체질을 나쁘게 만들어뒀다. 경제 성장과 분배 두 개의 톱니바퀴를 어떤 철학을 갖고 움직일 것인가 고민해봐야 한다. 소위 ‘4차산업혁명’이라면서 AI, 에너지, 공유경제 등 전 세계 산업구조가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데 우리는 지난 9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했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바통을 넘기고 받는 이어달리기와 비슷하다. 이어달리기 중에 앞서 정권이 바통을 분실했다. 그런 점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있지만 나머지 적폐 청산이나 남북 문제에서는 90점 이상을 주고 싶다.”
―‘미키 루크’라고 하면 정치권에서는 ‘조직의 귀재’로 불린다. 또 2002년 대선에서 ‘희망돼지’, ‘노란손수건’ 등 기획을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비결이 있다면.
“조직의 귀재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선거의 달인이란 표현도 선거가 마치 기술처럼 비쳐서 싫다. 한 정치인이 내게 ‘내가 정치 입문한 이후 수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미키만한 지략가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소개가 나는 제일 마음에 든다.”
이상호 민주당 사하을 지역위원장. 사진=김상문 객원기자
―전문건설공제조합 감사가 되면서 논란이 많았다.
“규정은 전문건설공제조합 내에 운영위원회란 곳이 있다. 운영위원회가 추천해서 총회에 상정하고 통과되면 감사가 된다. 논란이 있었지만 곧 조용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에 가장 큰 공을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참여정부에서는 공직에 있진 않았다.
“그때는 갈 인격이 안 됐기 때문에 안 간 거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고 약 1주일 지나 서울로 불렀다. 내가 15분인가 늦었다. 복장도 등산복이었다. 복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식도 없었고 대통령 권력이란 게 뭔지 개념도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이 내게 ‘뭐 하고 싶냐’고 했다. 그때 보자고 한 건 한 자리 주려고 부른 것일 텐데 내가 ‘언론개혁과 유권자 운동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노 전 대통령이 ‘그럼 너는 신경 안 써도 되네?’라고 물었다. 그 이후 ‘국민의 힘’에서 시민운동을 1년간 열심히 했다.”
―많이 안 알려졌지만 탄핵 국면에서 ‘탄핵 반대 촛불집회’를 진두지휘했다.
“1년간 열심히 하던 ‘국민의 힘’에서 탄핵 반대 촛불집회를 주도했다. 당시 청와대까지 절대 탄핵 안된다고 했다. 그래서 ‘만약 되면 어떡할 거냐’, ‘탄핵 된 이후 아침에 아무 일 없이 출근하는 시민들이 표정, 외신들 한국 아무 이상 없다고 평가한다’는 보도가 나가면 그땐 노무현 대통령 정말 죽는다. 그래서 나 혼자 바보 되더라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정작 탄핵 반대 집회에서는 내가 떠들면 ‘노무현 팬’이 반대한다는 프레임이 나올까봐 마이크를 놓아버렸다. 내 얼굴이 나가면 시민 총집회가 노사모 집회로 왜소화된다. 전략적으로도 맞지 않다. 나도 광 팔고 싶고 도드라지고 싶은 마음이 큰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화면에 나가버리면 수십만이 모인 분노한 시민의 촛불 집회와 옆에 탄핵 찬성하는 몇천 명이 똑같은 크기로 보도된다. 그래서 탄핵 반대 집회 관련해서 내 사진이 없다. 내가 절대 못 찍게 했다. 또 당시 촛불집회를 보면 최근 촛불집회와 달리 화장실 가기 편하게 구획을 정해놨다. 빨랫줄로 간격을 잘 맞춰 놨다. 노란 손수건 들고 돼지 저금통 들고 춤추면서 대통령을 당선시켜야 하는 것처럼 대통령 탄핵 됐을 때도 춤추면서 탄핵을 이겨내야 한다. 재미 없는 기획은 자체가 죄악이라고 생각한다. 시민의 참여는 늘 즐거워야 하고. 즐거운 에너지는 민주주의에 엄청난 진전을 갖고 온다고 생각해서 기획했다.”
이상호 민주당 사하을 지역위원장. 사진=김상문 객원기자
―지난해 부산 사하을 지역위원장이 됐다. 부산 최다 득표율을 기록한 조경태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을 상대해야 한다.
“조 의원은 경쟁력 있는 정치인이다. 민주당 간판 달고 부산에서 3선을 했다. 선거에 센 사람이다. 조 최고위원은 2016년 자신과 함께했던 동지를 배신하고 한국당으로 입당했다. 당시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시대의 요구에도 관심 없었다. 내가 선거를 잘 치른다는 평이 있어서인지 주변에서 ‘조경태를 이겨달라’는 요구가 모였다. 그래서 사하을로 왔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에게 부산은 정치적으로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 도시다. 예를 들어 누구보다도 사투리가 강하고, 또 스타일을 놓고 보면 딱 부산 스타일이다. ‘마 됐나? 치아라! 디비라!’ 이런 게 딱 부산 ‘머스마’ 스타일이고 부산으로부터 늘 애정이나 인정에 목 말라 했다. 그런 의미에서도 부산에서 꼭 승리하고 싶다.”
―2020년 부산 판세를 예측해본다면.
“다음 정권의 분수령이 부산이라는 각오로 열심히 뛰고 있다. 내가 이기면 정권재창출이 되는 거고, 내가 지면 다음 정권이 어려워진다는 각오다. 부산은 전략적 요충지기 때문에 민주당이 부산에서 꼭 좋은 성적표를 손에 쥐었으면 한다. 현재 상황은 녹록지 않다. 그럼에도 사하을뿐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지원해서 부산에서 여러 의원과 동반 당선되고 싶다.”
―양말사업으로 큰 돈을 벌었고 볼리비아에서 광산도 운영했다. 그럼에도 다시 돌아오게 만든 정치의 매력은 무엇인가.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두 가지 마음이 있다. 외면해 버리고 싶은 마음과 그 문제를 풀고 싶은 마음이 있다. 정치는 풀리지 않는 문제와 정면으로 부딪히는 과정이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안 풀릴 것 같으면, 외면해버리고 싶은 게 아니라 너무 매력적이라 부딪치고 풀어내고 싶다. 그런 마음이 올라오기 때문에 정치가 매력적이다.”
―뭘 풀고 싶나.
“시민 운동을 하면서 이상한 사회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닌 걸 알았다. 극단과 모순의 비합리적 사회였다. 시민 운동으로는 한계를 느꼈다. 결국에는 정치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나는 정치를 잘하는 사람이 사회 문제들을 해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모순과 극단을 이겨서 내일은 합리적인 사회를 만들어 주기를 바랐다. 오늘은 노 전 대통령이 갖고 있던 과제였고 내일은 노 전 대통령의 꿈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마음을 먹었다. 내가 직접 선수가 돼서 평가자가 아닌 평가 받는 자가 되고, 남들 욕 하는 위치보다는 욕 먹는 쪽에 가자고, 내가 직접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게 정치를 하는 이유고, 정치가 아니면 풀 수 없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