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본부에 가지 않았던 것은 대통령이 가면 일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부담이 될 것 같았다는 얘기였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이번에는 사석에서 당시 관련된 장관의 이런 얘기를 들었다.
“저는 삼십 년 동안 관료생활을 하면서 장관으로 올라간 사람입니다. 어떤 사고가 터졌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때 책임을 지는 공직자의 위치가 어디였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둘째로 어떤 조치를 했느냐로 책임을 다 했느냐 평가할 수 있을 겁니다. 나는 현지에서 상황을 보고 바로 전화를 걸어 대통령을 바꾸어 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비서실장이 자기가 알아서 보고하겠다고 하면서 중간에서 차단시키더라구요. 도대체 장관이 대통령에게 전화보고도 직접 할 수 없는 나라였죠. 대통령이 관저에서 서류로 보고 받았다는 것도 말이 안돼요. 급한 상황이면 대면보고를 받고 전화도 받아야지 왜 그렇게 하지 않은 겁니까? 또 현지에 내려갔던 공직자들도 반성해야 합니다. 정말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고 애도를 한 건지 아니면 기자들을 의식해 슬픈 연기를 하면서 사진을 찍은 건지 저는 모릅니다.”
비서실장이 왜 장관의 전화를 중간에서 차단했을까 의문이었다. 장관은 대통령보다 당시 비서실장에게 더 분노했다. 내가 변호를 맡고 있던 국정원장과 구치소 안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이런 말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정치적 감각을 가지고 대통령을 이끌어 가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김기춘보다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정무감각이 뛰어났어요. 휴전선에서 북괴가 설치한 목함지뢰가 터져 병사가 다쳤을 때죠. 그날 박근혜 대통령은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어요. 정치적으로 목함지뢰 사건은 안보와 관련된 사안이었죠. 서문시장은 방문해 뭘 하겠어요. 손을 흔들면서 미소 한번 짓는 쇼를 하는 거죠. 비서실장이 대통령을 목함지뢰 사건 쪽으로 돌렸어요. 비서실장은 그렇게 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세월호 사건에서는 실수가 있었어요. 비서실장은 처음에는 교통사고로 인식했어요. 그렇지만 학생 250명이 차디찬 물속에 수장되는 그 순간 그건 교통사고가 아닙니다. 정치문제로 변한 겁니다. 비서실장이 사건의 성격이 변질된 걸 캐치하고 대통령을 제대로 끌지 못한 거죠. 비서실장은 국회에 나가서도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시간 대통령이 뭘 했는지 모르겠다고 대답을 했어요. 그러면 안 되는 거죠. 진상조사 위원회나 장관 중에는 사고 당시 대통령이 어디 있었느냐를 중요시하는 것 같은데 저는 다릅니다. 대통령이 어디에 있는지는 관계없어요. 트럼프는 맨날 골프장에 있으면서도 바로 결정을 하잖아요? 즉각적인 대통령의 판단과 결정이 중요합니다.”
정치란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따뜻한 마음이다. 지도자의 막대기 같은 딱딱한 마음과 쇼에 국민들이 분노했는지도 모른다.
엄상익 변호사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