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내부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 이후, 법원이 엄격한 기준 적용” 불만 쏟아져
검찰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최강 화력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를 동원해 진행한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 이후, 법원이 검찰 수사에 제동을 거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검찰이 법원에 청구하는 영장에 대한 기각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이후부터, 법원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기 시작했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검찰 내에서는 ‘불만’이 적지 않지만, 대놓고 이를 드러내기는 쉽지 않다. 검찰이 그동안 수사 성공을 위해 ‘별건 수사(본래 혐의 외적인 범죄로 수사를 진행하는 것)’를 하던 것을 문제 삼는 경우, 검찰도 크게 할 말은 없다. 심지어 서울고등법원 고등 부장판사는 재판 도중 “법원의 잘못이었으면 검찰이 어떻게든 처벌했을 것”이라며 꾸짖는 일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검찰이 있기 때문에 법원이 있을 수 있다, 그래도 법원이 있기 때문에 검찰이 있을 수 있다’며 위기 때마다 서로를 ‘한 배를 탄 동료’로 생각했던 두 조직 간 갈등의 골이 그 어느 때보다 깊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고성준 기자
# 2배로 늘어난 영장 기각률
최근 법원은 검찰의 영장에 대해 ‘기각’을 늘리기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의원실이 대검찰청으로부터 받은 ‘검찰 직접수사사건 압수수색영장 기각률’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월부터 올 3월까지 최근 1년간의 압수수색영장 기각률은 6.4%로 그 전 1년(3.3%)에 비해 2배 가까이 높아졌다.
통상 압수수색 영장 기각률은 3% 내외다. 2016년에는 3.1%, 2017년에는 2.9%였다. 특별 수사에 해당하는 인지 사건의 경우, 검찰이 영장을 적극적으로 치지만 언론에 노출되지 않는 일반 사건의 경우 검찰이 신중하게 접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영장 기각률은 높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달랐다. 지난해 영장 기각률은 6.1%였고, 올해(1~3월)는 5.4%로 치솟았다. 단순 수치뿐 아니라, 굵직한 사건에서 법원이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이 두드러지게 높았다. 지난해 7~12월 서울중앙지검에서 검사가 직접 청구한 구속영장 월별 기각률은 전년 동기 대비 작게는 0.8%P, 크게는 24.2%P까지 증가했는데, 수사가 한창이던 지난해 9월(46.7%)은 전년 동기 대비 2배 이상 뛰었다.
그 외 서울동부·남부·북부·서부지검 등 재경지역 5개 검찰청에서의 검사 직접청구 구속영장 기각률 합계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2018년 하반기(7~12월) 이들 검찰청에서 청구한 구속영장 기각률은 10월 한 달을 제외하곤, 다섯 달 모두 전년 동기 대비 10.2~20.2%P 늘었다.
검사들 사이에서 “법원이 까다로워졌다”는 불만이 나온다. 재경지역의 한 검사는 “법원에 대한 수사를 할 때부터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기각을 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전에는 받아줬을 법한 영장이 기각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고, 압수수색 영장 역시 요청한 내용 모두를 잘 받아주지 않는다. 휴대폰 등 개인 정보가 예민한 부분은 제한된 허가가 많다”고 토로했다.
자연스레 검찰 수사는 차질이 생기고 있다. 범죄 혐의점이 있을 때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명확한 증거를 확보하는 기존의 검찰 수사 방식이 통하지 않기 때문. 실제로 서울동부지검의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의 경우, 검찰은 청와대 인사수석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이 이를 기각하면서 더 수사를 확대하지 못했다.
최근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수사권고 관련 수사단(단장 여환섭 청주지검장)은 핵심 피의자 윤중천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별건 수사’라는 윤 씨 항변을 받아들여 이를 기각하기도 했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및 서울중앙지검. 최준필 기자
# 법원의 습격? 재판 중 검찰 꾸짖기도
법원 안에서는 ‘당해보고 나니 바뀐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익명의 법원 고위직 관계자는 “그동안 검찰이 ‘특수 수사를 어떻게 한다더라’라고 하면서 언론에서 별건 수사 등을 문제 삼을 때 지켜만 보고 있다가 막상 당하고 나니 ‘우리도 잘한 건 아니지만 검찰도 심했다’는 불편한 심기가 어느 정도 생긴 건 맞다”며 “우리 판사들이 그런 의견들을 중론으로 모아서 움직이는 조직은 아니지만, 같이 일하던 동료가 검찰에게 수사를 당해 재판에 넘겨지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부적절한 부분을 직접 보면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형사 재판에는 조금씩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다”고 토로했다.
검찰의 무리한 압수수색 영장을 비판하는 구체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영장전담 재판부에 근무한 적이 있는 한 판사는 “옛날에만 해도 검찰이 휴대폰 영장을 발부받으면 범죄와 상관없는 내용을 가지고 피의자를 겁박하다시피 해 범죄 사실을 토로받기도 하지 않았냐”며 “꼭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한 반발이라기보다는 원래 필요 이상으로 광범위한 압수수색이 있었던 점, 최근 들어 개인에 대한 프라이버시가 중요해진 만큼 압수수색을 통제해야 한다는 점 등이 법원 내 우려처럼 퍼진 것도 반영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단순한 갈등으로 보기에는 골이 깊다는 게 법조계 내 공통된 의견이다. 검찰의 공소장을 문제 삼는 것은 물론, 별개의 사건에서 검찰을 꾸짖는 일도 있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박남천 부장판사)는 첫 공판준비기일이 열린 지난 3월 25일 오전, 검찰의 공소장을 문제 삼았다. “공소장을 읽다 보면 피고인에 대해 부정적인 선입견이나 편견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공소장 변경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한 것. 이에 검찰은 법원의 지적을 받아들여 공소장 변경 신청을 냈지만, 법원은 추가로 열린 2차, 3차 공판준비기일에서 이에 대한 확답을 하지 않았다.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이 후배 검사들에게 돈 봉투를 건넸다가 면직 처분을 받은 것에 대해 ‘징계가 과하다’며 면직 취소 청구를 한 소송에서는 재판장이 검찰 조직을 대놓고 비판하기도 했다.
서울고법 행정6부(박형남 부장판사)는 지난 1일 안 전 국장이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낸 면직 취소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안 전 국장이 2017년 4월 21일 이영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 등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한 검찰 특별수사본부 소속 검사들과 저녁을 먹은 자리에서 후배 검사 6명에게 70만∼100만 원이 든 봉투를 건넸다가 면직 처리된 것이 ‘관행’이라고 해명하는 안 전 국장의 변호인에게 비판의 날을 세웠다.
재판장은 “비유는 적절하지 않지만 요새 검사들이 판사들을 기소한 사례에 비춰보면, 마치 재판이 끝난 이후에 법원행정처 차장이 소속 법원장과 재판장을 만나서 밥 먹은 뒤 ‘재판 잘했다’며 격려금을 준 것과 같다”며 “만약 판사들이 이렇게 했다면 검찰은 횡령이든 뭐든 걸어서 수사한다고 할 것이다. 법원에 대해서는 추상같이 수사하면서, 자기들에 대해선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태도는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법원을 향해 ‘불필요한 영역까지 억지로 털었다’며 날을 세운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과거에는 대검과 대법원이 몇몇 영역을 통해 정보 등을 공유하는 등 약간의 교류가 있었지만 최근 수사 이후 매우 소원해진 게 사실”이라며 “서로 조심하는 흐름이 한동안 계속되지 않겠냐”고 토로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