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량 이렇게 적다니…법이 왜 이런가” “반성도 없이 ‘합의하자’ 요구한 가해자에 분노”
인천 중학생 추락사 사건 가해자 4명.
5월 14일 인천지법에서 동급생을 폭행해 죽음으로 몰아넣은 인천 중학생 추락사 사건 가해자에 대한 선고 공판이 열렸다. 이날 재판에는 피해자의 어머니인 B 씨도 참석했다. 재판이 끝난 뒤 많은 취재진이 B 씨의 뒤를 쫓았지만, 그는 눈시울만 붉힌 채 말없이 법원을 떠났다. ‘일요신문’은 이날 자정 무렵이 되어서야 어렵게 유가족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러시아 출신의 B 씨의 첫 마디는 “어디서 판결문을 볼 수 있느냐”였다. B 씨는 판결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의 양형 이유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선고 공판에서 “피고인들이 나이가 만 14~16세에 불과한 점, 반성의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점, 뒤늦게나마 피고인의 부모들이 보호 의지를 피력하고 있는 점”등을 양형 이유로 밝혔다. 가해자 C 양의 경우 A 군의 바지를 벗기고 성기를 노출시키는 등의 성추행을 했지만 이후 피해자의 용서를 받은 점 등을 고려했다고도 밝혔다.
B 씨는 “그 누구도 용서한 적이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는 “합의한 적도 없고, 용서한 적도 없다. 판결문을 듣다가 ‘용서’라는 단어가 들려서 깜짝 놀랐다. 가해자 부모로부터 ‘합의를 하자’고 자꾸 연락이 오는데 나는 절대로 그럴 생각이 없다”고 했다.
실제로 가해자 4명은 4월 23일 예정된 선고 공판을 앞두고 피해자 유가족과 합의를 하겠다며 선고 기일을 미뤘다. 성추행 혐의가 추가된 C 양의 경우 반성문을 43차례 제출하기도 했다. 범행을 반성하는 점을 호소해 형량을 줄여보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이들이 실제로 반성을 했는지는 미지수다. 가해자 4명이 구치소에 수감된 동안 면회를 다녀온 지인에 따르면 가해자들은 과자를 먹거나 누워서 TV를 보는 등 해당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가해자 4명 가운데 2명은 조사 기관 조사 때부터 줄곧 피해자 사망과 관련한 책임은 자신들에게 없다며 상해 치사 혐의를 부인하기도 했다. 이들은 현재까지도 상해 치사죄는 인정하지 않은 채 유가족과 합의를 하려고 하고 있다.
B 씨는 ‘합의하자’며 연락해오는 가해자 부모의 태도에서 반성의 기미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반성이라기보다는 요구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또, “가해자 부모가 ‘생활도 어려운데 합의를 하시는 게 낫지 않냐’ ‘앞으로 재판이 시작되면 합의를 하실 수 없다’ 등의 말로 합의를 요구했다. 합의 의사가 없음을 거듭 밝혔지만, 선고 공판 직전까지도 합의 금액을 올려주겠다는 내용의 문자가 왔다. 자기 죄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무작정 합의를 하자고 한다. 사람 목숨 가지고 돈으로 환산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형량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4명 가운데 누구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으나 재판부는 가해자 4명에게 각각 징역 장기 7년 단기 4년, 장기 6년 단기 3년, 장기 3년 단기 1년 6월, 장기 4년 단기 2년을 선고했다. 앞서 검찰이 구형한 소년법상 최고형인 징역 10년에도 미치지 못했다. 소년법에 따르면 범행을 저지른 미성년자에게는 장기와 단기로 나눠 형기의 상·하한을 둔 부정기형(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복역 성적을 보아 석방을 결정하는 것)을 선고할 수 있다. 단기형을 채우면 교정 당국의 평가를 받고 조기에 출소할 수도 있다. 가장 적은 형량을 받은 가해자는 1년 6개월 만에 출소할 수도 있는 셈이다.
B 씨는 “왜 이렇게 (형량이) 조금 나왔는지 모르겠다. 대한민국에 소년법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렇다고 하던데 너무 화가 난다. 아마 가해자들은 7년 뒤에 잘 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옥상에서 이어진 78분은 지옥이었다. 이미 새벽까지 공원 두 곳을 돌며 폭행을 당한 상태였다. A 군이 한 가해자 아버지의 외모를 험담하고 “너희들과 노는 것보다 게임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 것이 폭행의 이유였다. 판결문에 따르면 가해자들은 옥상에 들어서자마자 A 군에게 “30대만 맞자. 피하면 10대씩 늘어난다”고 협박했다. 이들은 A 군의 종아리를 걷어차 넘어뜨린 뒤, 배 위에 올라타 주먹으로 온몸을 때렸다. 가해자 가운데 한 명은 “시간은 많고 사람은 없었다. 아마 밤새도록 때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진술하기도 했다.
A 군이 “이렇게 맞을 바에는 죽는 것이 낫겠다”고 호소하자 가해자들은 옥상 난간 쪽으로 끌고 가 떨어뜨리려는 시늉을 하며 위협했다. 무릎을 꿇게 한 상태에서 뒤통수를 발로 차기도 했다. 극도의 공포심을 느낀 A 군이 잠시 기절한 척하기도 했으나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인기척이 느껴져 “살려달라”고 외쳤으나 소리를 질렀다는 이유로 더 심한 폭행을 당했다.
끝나지 않는 구타 속에서 A 군이 선택한 것은 목숨을 건 탈출이었다. 옥상 난간 3m 아래에 위치한 에어컨 실외기로 도망치려 한 것이다. 재판부는 A 군이 그 과정에서 중심을 잃고 추락한 것으로 보았다. 실외기에서는 A 군이 발을 디딘 흔적이 나왔다. 발자국은 1개였다.
재판부는 “키 158cm의 피해자가 시도하기에 다소 극단적이고 무모한 탈출 방법이었으나 장시간 성인도 견디기 힘든 육체적 고통을 겪는 상황에서 달리 방법이 없었다“고 밝히며 4명에 대한 상해 치사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한편 가해자 4명 모두 선고 공판 다음 날인 5월 15일 항소장을 제출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