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송진우의 조카 LG 왼손 투수 이우찬... KIA 투수 고영창-임기준은 사촌 지간
LG 투수 이우찬은 최근 외삼촌 송진우 코치의 소속팀 한화를 상대로 데뷔 첫 선발승을 기록했다. 연합뉴스
아들은 자신의 생각보다 더 일찍 그 꼬리표를 뗐다. 데뷔 첫 해 역대 신인 최다안타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압도적인 신인왕에 올랐다. 천재적 야구선수였던 아버지의 현역 시절 통산 기록을 대부분 넘어설 기세다. 이제는 천하의 이 코치도 ‘이정후 아버지’로 불리는 일이 더 많다. 물론 아버지는 “어디서 ‘이정후가 이종범보다 낫다’는 얘기를 들어도 전혀 기분 나쁘지 않다”며 남몰래 웃음을 짓고 있다. 그게 부정(父情)이다.
박철우 두산 코치-두산 포수 박세혁 부자도 성공한 야구 가족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팀 1군에 함께 몸담고 있어서 더 그렇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들 외에도 숨겨진 혈연관계가 아주 많다. ‘프로 입문’이라는 바늘구멍을 통과한 것만으로도 ‘야구 유전자’의 위대함을 직접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최근에도 전설적인 외삼촌과 이제 막 꽃을 피운 조카의 남다른 인연이 화제에 올랐다.
#외삼촌 앞에서 프로 첫 승을 올린 조카
LG 왼손 투수 이우찬에게는 무척 유명한 외삼촌이 있다. KBO 리그 역대 최다승 투수이자 유일한 200승 투수인 송진우 한화 투수코치다. 송 코치의 바로 위 누나가 다름아닌 이우찬의 어머니. 어린 시절 이름이 ‘영재’였던 조카는 한국 야구를 주름잡던 외삼촌을 바라보며 프로야구 선수의 꿈을 품었고, 천안 북일고를 졸업하던 2011년 신인 2차 2라운드에서 LG에 지명돼 첫 번째 목표를 이뤘다. 외삼촌은 그런 조카에게 종종 원 포인트 레슨을 해 주고 프로야구 선수의 자세에 대해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프로에서 실력으로 두각을 나타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조카는 경찰 야구단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한 2016년 단 1경기에 나왔고, 2017년엔 아예 1군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채 육성선수 신분으로 2군 3경기를 뛴 게 전부다. 결국 아버지의 권유로 이름을 ‘영재’에서 ‘우찬’으로 바꿨다. 과거의 부진과 불운을 떨쳐 내고 새로 출발하겠다는 의지였다.
다행히 이우찬은 개명 2년 만인 올해 마침내 1군에서 자리 잡을 기회를 얻었다. LG 불펜의 핵심 멤버로 활약하면서 조금씩 꿈을 키워갔다. 이어 지난 4월 2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오랜 희망도 하나 이뤘다. 처음으로 외삼촌 눈앞에서 마운드에 올라 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승패는 기록하지 못했지만, 눈부시게 성장한 조카의 모습을 외삼촌에게 보여 줬다.
KBO 리그 대표 ‘야구인 가족’ 이정후. 데뷔 전부터 이종범 LG 코치의 아들로 유명세를 탔다. 사진=좋은스포츠
결과적으로 이우찬은 그 어느 때보다 당당하고 침착한 피칭으로 삼촌의 소속팀에 일격을 날렸다. 3년 전 데뷔 첫 선발 등판에서 아웃 카운트 하나를 채 잡지 못한 채 4점을 내주고 내려갔던 ‘애송이 투수’는 온데간데 없었다. 5이닝 동안 공 79개를 효과적으로 던지면서 1피안타 2볼넷 2탈삼진 무실점으로 역투했다. 조카는 그렇게 외삼촌의 눈앞에서 고대하던 프로 데뷔 첫 승을 신고했다.
이뿐만 아니다. 송 코치의 둘째 아들이자 이우찬의 이종 사촌 동생인 송우현은 키움 내야수로 몸 담고 있다. 현재는 경찰 야구단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다. 이우찬이 꾸준히 1군에서 자리를 지키고 송우현이 전역 후 1군 출전 기회를 얻는다면, 사촌 간 맞대결도 충분히 성사될 수 있다.
#고향팀에서 한솥밥 먹는 꿈 이룬 사촌 형제
KIA 투수 고영창(30)과 투수 임기준(28)도 사촌 지간이다. 초등학교 때 몸이 자주 아팠던 고영창이 건강을 위해 먼저 야구를 시작했고, 즐겁게 야구를 하는 사촌 형을 보고 임기준도 같은 길을 걷게 됐다. 고향이 같은 둘은 출신 학교도 광주서림초-진흥중-진흥고로 모두 같다. 두 살 터울이라 중·고교 시절에는 1년씩 한솥밥을 먹었다. 어린 시절에는 외모가 서로 많이 닮았던 데다 늘 붙어 다녔던 터라 둘을 형제로 착각하는 주변 사람들도 많았다는 후문이다. 프로 생활은 2010년 2차 2라운드 전체 14순위로 입단한 임기준이 2013년 2차 6라운드 전체 53순위로 입단한 고영창보다 3년 먼저 시작했다. 임기준은 고교 졸업 후 바로 프로에 왔고, 고영창은 연세대를 졸업해서다.
둘 다 투수가 된 터라 늘 프로 무대에서 선발 맞대결을 하거나 고향팀에서 함께 뛰고 싶다는 희망을 품었다. 입단 시기는 달라졌어도 결과적으로 KIA에서 한솥밥을 먹게 돼 최상의 시나리오대로 됐다. 임기준은 “학창 시절 같은 팀에 몸 담았으니 나중에 같은 기간에 프로에서 뛰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그런데 같은 팀에 입단해 더욱 좋다”고 말했다.
사촌형 고영창과 함께 KIA 불펜에서 활약중인 임기준. 연합뉴스
이들에게 남은 또 하나의 소원도 있다. 임기준의 동생 임주찬(16)이 광주 동성고 야구부에서 유격수로 뛰고 있다. 현재 1학년이라 2년 뒤 진로가 결정된다. 임기준은 “앞으로 동생 주찬이가 프로에 올 때까지 우리 둘 다 부상 없이 잘 버텨서 세 명이서 KIA 1군에서 함께 뛸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말했다.
#아버지 눈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했던 아들
김민호 KIA 총괄코치와 한화 투수 김성훈도 지난해부터 유명세를 탄 아버지와 아들이다. 김 코치는 두산 선수 시절이던 1995년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로 뽑히는 영예와 함께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한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다. 아들이 본격적으로 1군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요즘에는 ‘김성훈 아버지’라는 타이틀을 하나 더 갖게 됐다.
경기고를 졸업한 김성훈은 2017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2라운드(전체 15순위)에 지명돼 한화 유니폼을 입었다. 입단 2년째인 지난해 퓨처스리그에서 꾸준히 선발 수업을 받으면서 2군 올스타로 뽑혔고, 7월 22일 대구 삼성전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러 ‘가능성 있는 선수’라는 눈도장을 받았다. 당시 광주에서 소속팀 KIA의 경기를 치르느라 아들의 역사적인 프로 첫 등판을 보지 못한 아버지는 경기가 끝난 뒤 스마트폰을 열어 아들의 성적과 ‘김성훈 호투’라는 제목이 달린 기사들을 확인하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고 한다.
김 코치는 “정작 내가 야구장에 나가서 다른 선수들을 지도하느라 아들과는 야구에 대한 얘기를 전혀 해본 적이 없다”며 “성훈이의 학창 시절에도 공을 던지는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제 ‘다시보기’로 투구 장면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돼 그것만으로도 좋다”고 뿌듯해 했다. 김성훈의 1군 등판은 온 가족의 기쁨이기도 하다. 김 코치는 “나보다도 성훈이 외할머니(김 코치의 장모)와 성훈이 엄마(김 코치의 아내)가 다시 누군가의 경기를 기다리고 응원할 수 있게 됐다는 게 더 기분이 좋다”고 귀띔했다.
올 시즌에는 마침내 김 코치가 맞은편 더그아웃에서 아들의 피칭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도 왔다. 스프링캠프에서 선발진 한 자리를 꿰찬 김성훈이 지난 3월 27일 광주 KIA전에서 시즌 첫 등판에 나섰다. 문제는 하필이면 KIA가 개막 3연패에 빠져 있던 상황이라 아버지와 아들 모두 마음이 편치 않았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김성훈은 이날 첫 회부터 제구가 잘 되지 않아 3⅓이닝 동안 볼넷 6개를 내주고 4실점으로 고전했다.
KIA는 개막 첫 승을 신고했고, 김성훈은 선발진에서 탈락해 2군으로 내려갔다. 김 코치는 담담한 표정으로 아들의 시련을 지켜봐야 했다. 하지만 김성훈을 향한 한화의 기대와 아버지의 응원에는 변함이 없다. 김성훈은 곧 1군으로 올라와 불펜에서 제 몫을 해 나가고 있다. 김 코치 역시 아들이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멀리서 묵묵히 바라보고 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메이저리그에 등장한 ‘괴수의 아들’ 게레로 주니어 2년 전 KBO 리그가 ‘바람의 손자’ 이정후에게 열광했다면, 올해 메이저리그는 ‘괴물 주니어’의 등장으로 들썩이고 있다. 현역 시절 ‘괴수’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블라디미르 게레로의 아들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20·토론토)가 그 주인공이다. 아버지 게레로 시니어는 어떤 공이든 눈앞으로 날아오면 다 쳐내는, 마성의 타자로 유명했다. 바운드 된 공을 때려내 안타로 연결하는 장면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 통산 타율 0.318에 통산 홈런 수가 무려 449개인 전설적 타자다. 지난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게레로 주니어는 그런 아버지의 위상을 뛰어넘을 수도 있는 재목으로 꼽힌다. 16세 때 이미 토론토와 계약금 390만 달러에 사인했고, 지난해 루키리그부터 트리플A까지 초고속으로 단계를 밟아 올라가면서 타율 0.381에 홈런 20개를 기록했다. 장타율과 출루율을 합한 OPS는 무려 1.073.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닷컴과 베이스볼 아메리카를 포함한 현지 유력 매체는 일제히 마이너리그 유망주 1순위로 게레로 주니어를 꼽았다. 그는 올 시즌 개막 후에도 트리플A에서 타율 0.367로 맹타를 휘두르면서 화려한 메이저리그 콜업을 준비해 왔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날이 왔다. 찰리 몬토요 토론토 감독은 4월 25일(한국시간) 샌프란시스코전을 마친 뒤 “이틀 뒤 오클랜드와 홈 경기에서 게레로 주니어가 데뷔한다”고 선언했다. 게레로 주니어가 마이너리그 통산 288경기에서 타율 0.331, 홈런 44개, 209타점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쌓아올린 뒤였다. 동시에 미국 전역의 야구 매체가 게레로 주니어의 데뷔 예정 소식을 속보로 전했다. 게레로 시니어는 자신의 SNS에 현역 시절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면서 “네가 어떻게 자랐는지 온 나라가 볼 수 있게 됐다. 최선을 다해라.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는 글을 남겼다. 게레로 주니어는 감독의 말대로 4월 27일 홈 구장인 캐나다 토론토 로저스센터에서 마침내 메이저리그 타석에 섰다. 노란색 레게머리로 한껏 멋을 낸 그가 2회말 첫 타석으로 걸어가자 경기장에 모인 2만 8688명의 관중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진풍경까지 펼쳐 졌다. 토론토의 ‘예비 레전드’에게 보내는 기대와 격려의 환영 인사였다. 게레로 주니어도 기대에 화답했다. 첫 타석에서는 침묵했지만, 2-2로 맞선 9회말 선두타자로 나와 우익선상을 타고 흐르는 2루타로 빅리그 첫 안타를 신고했다. 토론토의 끝내기 승리에 발판을 놓은 값진 장타였다. 이 장면은 즉시 메이저리그 공식 야구카드로 제작됐다. 이어 사흘 뒤인 4월 30일 판매를 시작했는데, MLB닷컴은 “이날 게레로 주니어의 카드는 하루만에 1만 9396장이 팔려 역대 야구카드 일간 판매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고 전했다. 종전 기록은 1만 7323장. 지난해 투타 겸업 선수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가 남긴 판매량이다. 역대 3위는 최고 인기 구단 뉴욕 양키스의 신예 거포 에런 저지(1만 6138장)다. 데뷔한 지 고작 사흘이 지난 루키 선수가 벌써 하늘을 찌를 듯한 인기를 과시한 셈이다. 다만 천하의 게레로 주니어도 초반 적응에 애를 먹었다. 빅리그 첫 13경기에서 타율 0.191에 1타점만 올리면서 침체에 빠졌다. 볼넷은 6개 골라 냈고, 삼진이 12개였다. 끝내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되는 아쉬움도 맛봤다. 하지만 다행히 천재 타자의 부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는 데뷔 14번째 경기인 5월 15일 샌프란스시스코와의 원정 경기에서 마침내 메이저리그 데뷔 홈런과 2호 홈런을 한꺼번에 터트렸다. 2번 타자 겸 3루수로 선발 출장해 홈런 2개 포함 4타수 3안타 4타점 1볼넷으로 맹활약했다. 첫 홈런은 1회 초 첫 타석에서 나왔다. 상대 선발 닉 빈센트의 바깥쪽 직구를 걷어 올려 가운데 담장을 넘기는 큼지막한 솔로포를 쏘아 올렸다. 나이가 20세 59일에 불과해 토론토 구단 사상 최연소 홈런 기록도 세웠다. 1979년 6월 대니 에인지가 기록한 20세 77일 기록을 40년 만에 갈아 치웠다. 마침내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게레로 주니어는 더 불타 올랐다. 2회 좌전 안타로 멀티히트에 성공한 뒤 4-2로 앞선 6회 공격에서 두 번째 홈런을 쳤다. 이번엔 무사 1·2루서 바뀐 상대 투수 례예스 모론타를 상대로 초구 가운데 몰린 체인지업을 공략해 좌중월 3점 홈런으로 연결했다. 토론토는 게레로 주니어의 장타쇼를 앞세워 7-3으로 이겼다. 모든 야구팬의 관심을 받아온 슈퍼 루키의 연속 홈런쇼에 메이저리그는 열광했다. 이날 친 홈런 두 개가 모두 시속 110마일(177㎞) 이상의 속도로 130m 넘게 날아간 아치여서 더 그랬다. 본격적인 폭발을 시작한 슈퍼 루키는 앞으로 어떤 발자취를 남기게 될까. 기다렸던 홈런 소식과 함께 관심은 더 고조되는 모양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