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박 씨, 상장사 공동 인수자와 이권 다툼…유력 피의자 조 씨가 ‘갈등 중재자’로 나서
# 10억 원도 없던 박 씨가 ‘상장사’ 인수
코스닥 상장사 H 사의 대표는 A 씨이지만, 실질적인 오너는 박 씨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내용을 잘 아는 관계자는 “H 사의 실질적인 오너는 (숨진) 박 씨였다”며 “언론 기사에선 부동산 업자로 알려졌지만 숨진 배경은 부동산 거래가 아닌 H 사 인수 과정의 갈등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용의자 가운데 한 명이 지인의 영업장 주차장에 용의 차량을 주차하고 들어가는 장면 . 사진 제공 = 경기북부경찰청
H 사는 지난해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H 사의 경영권은 창업주에서 의사가 중심이 된 컨소시엄으로,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A 씨가 대표로 있는 기업으로 넘어갔다. 지난 3월 최대주주였던 의사 중심 컨소시엄으로부터 지분을 인수한 것. 하지만 이는 박 씨의 ‘무자본 M&A’라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박 씨는 이 아무개 씨 등 2명과 함께 H 사 인수에 나섰다. 하지만 박 씨는 실질적인 자금이 없었고, 이 아무개 씨 등이 200억 원가량의 돈을 각각 갹출해서 인수하는 형식이었다. 결국 A 씨는 표면적인 대표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실제 박 씨 측의 인수를 반대한 H 사 일부 주주들은 금융위원회 등에 “A 대표 뒤에는 박 씨가 있고, 박 씨는 전 최대주주 등과 함께 무자본으로 경영권을 인수한 당사자”라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또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강력부에 “H 사 전 대표가 사기와 사기적 부정거래 등의 혐의를 저질렀다”며 철저한 수사도 촉구했다. 결국 이 과정에서 H 사는 거래정지 상태가 됐다.
2016년 매출 1000억 원을 넘었던 H 사를 무자본으로 인수하는 데 성공한 박 씨. 하지만 인수 이후 박 씨는 공동 인수자인 이 씨 등과 갈등이 불거졌다. 이 씨에게 회사 경영 관련 이권을 나누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 그리고 여기서 이번 납치살인 사건의 유력한 피의자 조 아무개 씨가 등장한다.
용의자 2명이 용의차량을 공용주차장에 유기한 뒤 인근 사거리에서 택시에 승차하는 장면. 사진 제공 = 경기북부경찰청
국제PJ파 출신 조직폭력배 조 아무개 씨는 사건 해결사 역할로 박 씨를 만나기 시작했다. 앞선 관계자는 “박 씨가 약속을 지키지 않자, 이 씨 등이 화가 났고 이 씨와 인연이 있던 조 씨가 ‘갈등 조정자’로 나서 박 씨를 만난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박 씨는 이 씨 등에게 약속을 했고 조 씨에게도 4억 원가량을 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하지만 박 씨가 결국 500만 원, 1000만 원 정도만 주면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시간을 끌자 이런 범행을 계획한 게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 그렇다면 범행은 어떻게? 살인 의도 ‘불확실’
그렇다면 범행은 어떻게 이뤄졌을까. 박 씨가 가족에게 “조 씨를 만난다”며 집을 나간 것은 5월 19일. 조 씨는 오후 2시 20분 친형과의 통화를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겼다. 그리고 이튿날인 20일 오전 7시쯤, 서울 한강 성수대교 인도에서 박 씨 휴대전화가 행인에게 발견되면서 가족들은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고 수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범행은 이미 발생한 뒤였다. 두 사람은 19일 정오쯤 광주 터미널 앞 일식집에서 술을 마신 뒤 노래방으로 이동했고, 이 노래방에는 조 씨가 불러놓은 공범 2명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용의자들이 범행 후 모텔로 들어가는 장면. 사진 제공 = 경기북부경찰청
이 자리에서 조 씨는 박 씨를 납치하고 폭행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박 씨와 조 씨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 용의 차량으로 수배했고 경기도 의정부시와 양주시를 통과한 사실을 확인, 일대를 수색한 끝에 21일 오후 10시 30분쯤 경기도 양주시청 부근 한 주차장에 주차된 BMW 승용차에서 숨진 박 씨를 발견했다. 발견 당시 박 씨는 얼굴 등 온몸에 둔기 등에 폭행당한 흔적이 있었으며, 재킷과 무릎담요로 덮인 채 뒷좌석에 쓰러져 있었다. 핏자국이 시트에 남아 있었다.
조 씨의 범행을 도운 공범들은 인근 모텔에서 발견됐다. 이들 공범 2명은 발견 당시 수면유도제를 복용하고 의식을 잃은 상태였는데, 양주경찰서장 앞으로 가족에게 남기는 메시지 외에 시신 유기 장소와 범행을 시인하는 내용 등이 유서를 남긴 점을 감안할 때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이들을 곧바로 병원으로 옮겼는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유기 등에 관여한 조 씨 동생까지, 범행 관여자 3명의 신병을 확보한 경찰은 조 씨 행적을 쫓고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살인까지는 의도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기자 브리핑에서 “감금과 상해치사 혐의로 보고 있다. 현재 살해의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50대 사업가를 납치·살해한 혐의를 받고 도주 중인 조직폭력배 국제PJ파 부두목 조 아무개 씨는 2007년에도 광주 남구의 한 사우나에서 건설사주를 납치한 혐의를 받고 5개월 여의 도피 끝에 붙잡힌 바 있다. 2007년 검거될 당시의 모습. 연합뉴스
# 첫 범행 아닌 조 씨, 이 씨와 폭행으로 인연 맺어
사실 조 씨가 납치 사건에 연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3년 2월에는 범서방파 실세인 나영노 씨가 국제PJ파에 납치됐는데, 이때 조 씨가 관여했다. 조 씨는 당시 납치 등의 혐의로 3년여를 감옥에서 살고 나왔는데, 석방 3년여 만에 다시 범행을 저질렀다.
특이한 점은, 박 씨와 손잡고 H 사 인수에 나섰던 이 씨와도 ‘폭행’을 인연으로 알게 됐다는 것. 조 씨는 서울 강남의 고급 한식당에서 일행 2명과 함께 식사를 하던 이 씨에게 폭력을 행사토록 한 혐의로 구속됐는데, 당시 이 씨는 조 씨 등이 휘두른 흉기에 전치 3주의 부상을 입은 적이 있다.
앞선 사건 흐름에 정통한 관계자는 “결국 멀쩡한 회사 하나를 가지고 무자본으로 인수하는 과정에서의 갈등이 살인까지 이어진 것”이라며 “숨진 박 씨도 안타깝지만 그 회사 직원들, 그리고 그 회사에 투자한 주주들 역시 피해자”라고 지적했다.
서환한 객원기자
“대중교통 이용, 신용카드 사용 안 해” 경찰의 조 씨 검거 늦어지는 까닭 지난 5월 21일 경찰은 언론사를 상대로 사건에 대해 범인인 조 아무개 씨가 잡힐 때까지 ‘엠바고(보도를 하지 않는 것)’를 요청했다. 언론 보도가 나올 경우 조 씨가 더 숨을 것을 우려한 결정이다. 하지만 이미 공범 등이 검거된 점, 조 씨가 휴대폰을 끄고 움직이는 점 등을 감안해 보도를 결정했다. 그만큼 조 씨 검거는 쉽지는 않아 보인다는 전망이 나오는 대목이다. 수차례 경찰 수사를 받아본 조 씨는 수사기관의 추적이 어려운 방식만 ‘골라서’ 도망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조 씨는 택시와 버스 등 대중교통으로 도주 중이다. 또 기록이 남을 수밖에 없는 휴대전화와 신용카드 등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추적에 애를 먹는 이유는 (조 씨가) 전문가이기 때문”이라며 “도주 전문가라 휴대전화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신용카드 등 은행 거래도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건 범행 전까지는 휴대전화도 켜놓고 있다가, 범행 후에는 끈 뒤 전원을 켜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수사기관은 위치를 추적해야 할 때 통신기록 및 신용카드 사용 내역 등을 통해 짧게는 몇 시간 전 위치 등을 파악한다. 특히 휴대전화는 전화 기록이 없어도 경찰은 전파 기록 등을 통해 대략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데, 조 씨가 이를 알고 기록을 전혀 남기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도망칠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경찰 수사를 애먹이는 방법 중 하나다. 대중교통 승하차 기록을 일일이 찾아야 하는데, 인근 CCTV를 확보해 하차 여부 등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30분 이동 경로를 파악하는데 길게는 이틀도 걸릴 수 있다. 게다가 조 씨는 수중에 자금도 어느 정도 있어, 조 씨 추적이 장기화될 여지도 있어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숨으려면) 도피자금 있어야 하는데 조 씨는 수중에 돈이 있는 걸로 안다”고 덧붙였다. 조 씨는 지난 2007년에도 광주 남구의 한 사우나에서 건설사주를 납치한 혐의를 받고 5개월여의 도피 끝에 붙잡힌 바 있다. 때문에 경찰은 이미 검거한 조 씨 동생 등 공범 등을 통한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자해를 시도한 2명에 대해서) 건강상태를 봐서 최대한 빨리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환한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