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정권의 눈치를 보며 권력의 입맛에 맞는 수사’라고 고백했다. 변호사를 하면서 현장에서 목격한 사실이 많다. 박근혜 정권 시절이다. 청와대 비서관이 후보로 나온 선거에서 상대방 후보의 사무실이 투표 전날 압수수색을 당하고 그 후보는 구속됐다. 검찰이 불공정한 선거에 이용된 것 같았다.
담당 검사는 수사상황을 수시로 높은 곳에 보고하고 그 지침을 따른다고 하면서 자신은 정무를 하고 있는 것이지 수사를 하는 게 아니라고 자조 섞인 고백을 했다. 정치검찰의 모습이었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섰다. 검찰은 전 정권의 국정원장들을 구속했다. 국정원 예산의 일부를 청와대에 보낸 걸 뇌물과 횡령으로 무리하게 법을 적용했다. 심지어는 급한 나머지 국정원장을 회계공무원이라고 했다.
그런 논리라면 대법원장이나 장관들 모두가 회계공무원이어야 했다. 법정에 정치를 올리는 마찬가지 행태라는 생각이다. 공수처의 설치와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문제가 국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검찰개혁의 의지가 이제 작동되는 것일까. 그렇게 하면 정치검찰은 없어지는 것일까.
그 본질은 수사권조정이 아니라 대통령의 인사권이다. 왜 검찰이 권력의 시녀가 됐을까? 그건 출세의 길을 청와대에서 잡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도 마찬가지다. 경무관으로 진급하고 싶던 친구가 있었다. 그는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줄을 대고 치안비서관에게 무릎을 꿇었다.
진급만 된다면 어떤 짓도 할 것 같았다. 국정원이나 국세청 등 소위 힘쓰는 기관은 대개 마찬가지다. 권력은 그들의 목줄인 인사권을 틀어쥐고 그들을 도구로 사용한다. 한 기관만을 사용할 수도 있고 여론이 좋지 않으면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무게중심을 바꾸기도 한다.
진짜 개혁을 하려면 청와대가 인사권을 장악하지 말아야 한다. 법적으로 인사권은 해당 기관장에게 있다. 그동안의 인사개입은 청와대의 직권남용이었다. 권한쟁의 소송의 대상일 수도 있다.
검찰개혁에서 그 다음은 사람이다. 법학 교과서는 검사를 인격과 교양을 갖춘 준 사법관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래서 기소에 대한 독점권을 주고 수사지휘권도 부여했다. 그러나 현실의 검사들 중에는 함량미달이 많았다.
사회의 대접에 젖어 턱없이 교만한 인간이 되고 신문에 이름 석자 박히는 게 수사의 목적인 공명심을 봤다. 기회를 틈타 수사권 조정이라는 명목으로 권한을 확대하려는 경찰은 어떤 인간들의 집단일까. 신분증을 까 보이고 상대방을 굴복시키고 싶은 완장 의식이 팽배한 집단이다.
그런 3류들이 우글거리는 걸 목격하며 살아왔다. 개에게라도 권력의 옷을 입히면 그들은 그 말을 들을 것 같았다. 대통령이 진실로 개혁을 하고 싶다면 먼저 인사권을 해당 기관장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 그냥 법대로 하는 것이다. 어려울 것 없다. 그리고 다음에는 완장이 아닌 사람들을 그 기관에 채우는 것이다.
엄상익 변호사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