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점과 본사 계약관계 더 공정하게 유도...공정위 “상생의 거래질서 정착될 수 있도록 널리 확산”
로고=공정거래위원회 제공
[일요신문] 대리점주들을 울렸던 ‘물량 밀어내기’, ‘리뉴얼 공사 강요’ 등이 사라질 전망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대리점과 공급업자 사이 공정 계약을 위해 ‘식음료·의류업종 표준대리점 계약서’를 개정했다.
6월 4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식음료·의류업종 표준대리점 계약서를 실효적으로 대폭 개정했다”고 밝혔다. 표준계약서의 내용을 개정해 대리점과 본사의 계약관계를 더 공정하게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특히 식음료 업계 관련 규정은 눈여겨볼 만 하다. 반품 조건을 본사와 대리점이 협의하고 부당하게 반품을 제한하면, 공급업자가 비용을 부담하게 규정했다. 2015년 ‘남양유업 밀어내기 사태’처럼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을 대리점으로 밀어내고 반품을 차단하는 등의 분쟁이 줄어들 전망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2018년 11월, 실태조사를 해보니 식음료 대리점이 가장 어려움을 호소하는 부분이 밀어내기였다”며 반품조건 협의 요청권을 계약서에 명시한 배경을 설명했다.
의류업종에는 ‘인테리어 시공 및 리뉴얼’ 관련 사항이 개정됐다. 특정 시공업체를 지정하는 과정에서 본사와 대리점 사이에 빈번하게 발생하는 분쟁을 막고자 새로 기준을 만든 것이다. 대리점은 “통일된 인테리어 양식이 필요하지만, 본사가 비싼 가격으로 시공하는 업체를 지정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본사 측은 “시공 품질 관리를 위해서 부득이 시공업체를 지정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바뀐 계약서에는 공급업자가 단독으로 시공업체를 지정하는 것을 막고 대리점이 선택할 수 있게 2개 이상의 시공업체를 제시하도록 했다. 이 경우 대리점에 시공 견적을 제공하도록 했다. 시공 비용이 높게 나오면 대리점이 다른 시공업체 제시를 요청할 수 있게 했다.
계약기간이 안정적으로 정해지는 것도 계약서의 중요한 변화다. 이번 개정에 따라 식음료와 의류업종 대리점은 공통적으로 계약기간을 최소 4년으로 설정할 수 있게 된다. 표준계약서 내용에 대리점에 ‘계약 갱신 요청권’을 부여하는 규정이 생겼기 때문이다. 4년이란 기간은 공정위가 공급업자와 대리점 사이 평균 거래 유지기간, 투자한 비용 규모와 회수 기간 등을 토대로 양측의 의견을 수렴해 결정했다. 공급업자는 대리점이 중대한 계약위반 등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대리점의 계약갱신 요청을 수락하도록 했다.
대리점이 본사에서 인기 제품을 받지 못해 발을 구르는 상황도 줄어들 전망이다. 이번 표준계약서는 공급업자가 합리적인 이유 없이 대리점이 요청한 상품 공급을 거절할 수 있게 규정했다. 공급업자가 특정 대리점이나 직영점, 온라인몰에 인기 제품을 몰아주고 다른 대리점에는 물량을 주지 않는 행위를 막는 것이다. 바뀐 규정은 대리점이 공급업자에게 공급거절 이유를 물으면 이에 대해 30일 이내 본사가 답변하도록 소명을 의무화했다.
오프라인 대리점이 쇠락하는 원인 중 하나로 ‘쇼루밍(showrooming)’이 꼽힌다. 쇼루밍이란 소비자들이 제품을 살 때, 상대적으로 저렴한 온라인에서 구매하고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상품을 구경하기만 하는 것을 말한다. 마케팅 신조어가 등장할 만큼 오프라인 대리점은 온라인몰과 본사의 직영 점포와의 가격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다.
이런 사정을 고려해 이번 계약서 개정에는 온라인몰과 직영점이 대리점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을 판매할 시, 대리점이 공급가격 조정을 요청할 수 있게 했다. 바뀐 유통 환경에서 대리점이 온라인몰과 직영 점포와 가격경쟁을 해볼 수 있게 됐다.
이미 자리 잡은 대리점 인근에 같은 공급업자와 계약한 다른 대리점이 들어오거나 다른 지역에 있던 대리점이 영업지역을 바꿔 들어오는 경우, 본사가 기존에 자리 잡은 대리점에 미리 알리고 협의해야 한다. 공정위는 “엄격한 영업지역 제한은 공정거래법상 위법이지만, 인근에 대리점 출점은 기존 사업자의 매출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사전통지와 협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보았다”는 말로 이 규정의 필요성을 짚었다. 더불어 “신규 사업자도 새로 대리점을 출점할 때 기존 대리점이 어디에 있는지 공급업자로부터 정보를 제공받게 된다”는 것이 공정위의 설명이다.
이번 표준대리점 계약서에 식음료·의류업종 공통으로 신설된 내용은 ▲최소 계약 기간의 보장 ▲불합리한 공급거절 금지와 소명 의무화 ▲공급가 조정 요청 ▲영업지역 설정 시 사전안내 및 인근 대리점 개설시 사전통지 ▲판촉 행사 비용 분담 등 5개 항목이다. 개정 내용은 ▲계약해지 시 절차요건 강화 ▲불공정거래행위 유형 추가 등 2개 항목이다.
식음료는 개별항목으로 ▲반품 조건의 협의 요청권 부여 규정이 추가됐고, 의류업종은 ▲인테리어 시공 및 리뉴얼 규정이 신설됐다.
공정위는 “표준대리점계약서가 거래 과정상 분쟁 예방에 큰 효과가 있는 만큼 상생의 거래질서가 정착될 수 있도록 널리 확산시키겠다”고 말했다.
박광주 인턴기자 park9212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