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값 시비 휘말린 장애인 경찰 진압 과정서 전치 16주 부상…경찰 “부당한 폭행 없었다”
서울 송파경찰서 B 지구대 경찰 4명은 3월 24일 오전 12시 47분경 서울 송파구의 한 단란주점 업주 C 씨의 112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 C 씨와 술값 실랑이를 벌이던 A 씨가 유리잔을 깨는 등 소란을 피운다는 신고내용이었다.
A 씨는 송파경찰서 지구대의 과잉진압을 주장하며 5월 16일 항고장을 접수하고 법적 공방을 준비하고 있다.
출동한 경찰은 술값을 지불하라며 A 씨를 설득했지만 A 씨는 당일 먹은 술값만 내겠다며 다시 시비가 붙었다. 끝내 A 씨가 자리를 피하려 하자 경찰이 진압에 나서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경찰이 A 씨를 잡아채고 넘어뜨린 뒤 수갑을 채우는 과정에서 A 씨의 오른쪽 다리가 부러진 것. 그럼에도 경찰은 A 씨를 사기(무전취식) 및 특수폭행 혐의로 입건했다.
오전 1시 4분 경찰차를 타고 5분 거리의 B 지구대에 도착한 A 씨는 계속 고통을 호소하며 119구급대를 불러줄 것을 요청했다. A 씨의 다리 상태가 심상치 않은 것은 알게 된 경찰은 오전 1시 32분경 119구급차로 A 씨를 경찰병원에 후송시켰다. 이 과정에서 30여 분 동안 A 씨는 다리 골절의 심각한 고통에 방치되었다.
경찰병원에서 검사를 받은 A 씨는 다리 상태가 좋지 않아 다음날 수술(비관혈객 점복술 및 골수강내 고정술)을 받았다. 전치 16주 진단을 받은 A 씨는 현재까지 병원 치료를 이어가고 있으며 다니던 직장에도 나갈 수 없는 상태다.
A 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정말 두려웠다. (경찰에게) 제발 살려달라고 빌었다”며 눈시울 붉혔다. 이어 “더 비참한 것은 (경찰에게) 연행되는 동안 지하 단란주점에서 좁은 계단을 거쳐 경찰차까지 정말 개처럼 질질 끌려 다녔다는 것이다. 경찰차에 처박히듯 탄 상태에서 다리가 붓고 아예 반대방향으로 젖혀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저 살려 달라. 119를 불러달라는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A 씨 가족은 “동생이 소아마비 장애인이다. 분명 걸음걸이만 봐도 알아볼 수 있는데 경찰이 이를 몰랐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 술 취한 걸음걸이와 장애는 엄연히 다르다”면서 “그런데도 건장한 경찰 4명이 에워싸 수갑을 채우고 상해를 입힌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 뻔히 불편해 보이는 다리를 걷어차 부러지게 한 것은 더 이해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고소장과 수사자료 등에 따르면 경찰은 “과격한 행동을 한 A 씨에게 미란다원칙을 지키고 적법한 절차에 따랐다”고 강조했다. 이어 “수갑을 채우는 과정에서 A 씨가 소아마비 장애인이라거나 오른쪽 다리가 부자연스럽게 꺾여 있는 상태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다. 대퇴골 골절은 더더욱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A 씨의 가족들은 A 씨 수술과 동시에 B 지구대 경찰 4명을 상대로 독직폭행(경찰의 직무상 폭행) 혐의로 형사 고소했다. B 지구대를 찾아 CCTV영상을 본 가족들은 경찰의 과잉진압을 더 의심하게 되었다. 특히, 당시 경찰 중 한 명이 A 씨 체포 장면을 촬영한 휴대폰 영상을 가지고 있는데 뼈가 골절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소리와 A 씨의 비명소리가 모두 담겨 있었다. 경찰은 당시 업소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소리가 커 이 같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해명했지만 휴대폰 영상에는 촬영자 주변까지 소리가 선명히 들렸다.
경찰의 진압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A 씨의 오른쪽 다리 x-ray 이미지. A 씨 제공
다만, 검찰은 A 씨 체포 과정에서 A 씨의 다리가 골절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며 이에 대한 과실은 별론(민사)으로 한다고 의견을 나타냈다. 법조계 관계자는 폭행에 대한 범주가 때린 것이 아닌 세게 뿌리치는 등의 행위도 해당되는 만큼 이 부분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A 씨는 경찰이 자신에게 연락해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지 않느냐. 폭행은 없었지 않느냐” 등 스스로 문제점을 감추는 듯 회유성 발언을 자주했으며, “병원비는 경찰병원이라 할인되도록 손을 써주겠다”고 했다며 경찰 수사를 100%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A 씨는 경찰의 수사 방해 의혹도 제기했다. 수술 중이던 A 씨를 대신해 A 씨 가족들은 사건 현장 CCTV 영상 확보를 위해 C 씨를 찾아갔다. C 씨는 A 씨의 상태 등 전후 사정을 듣고 USB를 가져오면 CCTV 영상을 담아주겠다고 했다. 경찰이 심했다는 말과 함께 A 씨가 질질 끌려간 모습과 A 씨의 걸음이 부자연스러운 점 등 사건 당시 증언들을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전화를 걸고 업소에 찾아온 한 남성과 잠시 얘기를 나눈 뒤 C 씨는 CCTV 영상을 못 보여 준다며 나중에 다시 오라고 입장을 번복했다. A 씨 가족은 당시 C 씨와 얘기를 나눈 남성이 B 지구대 경찰 중 한 명으로 A 씨를 가장 먼저 제압했던 당사자였다고 주장했다. 결국 A 씨 가족은 영상을 얻을 수 없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경찰은 ‘버닝썬 사태’ 등 최근 경찰 내 제 식구 감싸기와 관할 내 유착의혹 등을 지적받자 공정수사 차원에서 경찰 수사 시 관할 외 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에 B 지구대 고소가 접수돼 1차 수사를 마친 송파경찰서에서 관할이 다른 강동경찰서로 수사가 넘겨졌지만 A 씨에겐 사건을 넘겨받았다는 안내 전화가 걸려왔을 뿐 추가 사건 조사나 직접 출석해 진술할 기회조차 없었다. 경찰 수사에 대한 비판이 여전한 이유다. 결국 A 씨는 5월 16일 항고장을 접수하고 법적 공방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 송파경찰서 B 지구대에 몇 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송파경찰서와 강동경찰서는 “이미 검찰에 송치해 처분이 난 사건이기 때문에 수사가 미진해 보이는 것들은 검찰에서 판단할 사안”이라면서 “A 씨에 대한 조사는 적법한 절차대로 처리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강동경찰서 관계자는 “송파경찰서 조사를 모두 확인(현장조사 등)했으며, A 씨가 병원 진료 중이라 직접 출석하진 않았지만 A 씨와 그의 가족 등에게 수차례 연락을 취해 관련 진술을 다 받았다”고 밝혔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체포에 항거하고 주취상태였던 피의자를 경찰관 3명이 부축하여 순찰차로 탑승 후 지구대로 이동한 것으로 음주상태 현행범 체포 여건에 부합한 피의자 체포 등 통상적인 연행 과정이다”고 해명해왔다.
이어 “출동당시 업소는 어두웠으며, 대상자는 술을 마신 채 착석한 상태였으므로 장애 여부를 식별 할 수 없었으며, 현재까지 경찰 수사 및 검찰 조사에 의하면 폭행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 수사 중이므로 최종 수사결과를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