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관도 몸수색도 없어, 손님과 소통 통해 ‘교화’…이상적 갱생법 전세계가 주목
이곳에서는 살인범, 마약 밀매꾼, 테러범 등이 요리를 하고, 주문을 받으며, 서빙도 한다. 이런 강력 범죄자들이 만드는 음식을 먹는다니 어째 기분이 묘한 것이 사실. 하지만 일단 이곳을 방문하면 금세 그런 불안과 걱정을 떨쳐버릴 수 있다. 이 안에서만큼은 모두가 평등한 한 명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현재 콜롬비아 전역에서는 물론이요, 관광객들까지 찾는 핫플레이스가 된 ‘인테르노’ 레스토랑을 독일 시사주간 ‘슈테른’이 탐방 취재했다.
아를레스 마리네즈(26)는 갈취 혐의로 징역 6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현재 그는 ‘산디에고’ 교도소 내에 있는 레스토랑인 ‘인테르노’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다. 사진출처=슈테른
때는 열대성 기후로 무더운 어느 금요일 저녁. 콜롬비아 북부 카르타헤나의 모퉁이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잘 차려입은 신사숙녀들이 하나둘 육중한 철문 앞에 모이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기업가, 예술가, 관광객들인 이들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 교도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불과 몇 미터 떨어진 육중한 철문의 반대편에는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정반대의 사람들이 있다. 머리에는 분홍색 리본을 두르고 검은색 유니폼을 입은 테러범, 살인범, 공갈 협박범 등이다. 이들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정확히 7시가 되자 경비원이 철문을 개방했고, 마침내 반대편에 서있던 양 쪽의 사람들이 서로를 마주보고 섰다. 둘 사이의 거리는 불과 3m. 하지만 교도소 안에 있는 죄수들 가운데 아무도 밖으로 뛰어가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교도소 밖에 있던 사람들이 차례로 교도소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이들을 맞는 것은 흉터와 문신이 가득한 체격 좋은 여성 죄수들이다. 바로 ‘산디에고’ 여성 교도소의 수감자들이다.
한때 교도소 쓰레기장이었던 이곳이 고급 레스토랑인 ‘인테르노’로 탈바꿈한 것은 2년 전이었다. 이로써 세계 최초의 여성 죄수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된 이곳은 현재 카르타헤나에서 가장 훌륭한 레스토랑으로 꼽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요 관광명소로도 급부상했다.
이 교도소 레스토랑의 놀라운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경비를 서는 경찰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부터가 그렇다. 또한 레스토랑에 입장하는 손님들 역시 소지품 검사를 받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남미 국가의 교도소에서 행해지고 있는 마약, 현금, 무기 소지 여부를 파악하는 검색 과정을 생략하고 있는 것이다. 특이한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손님들을 맞는 죄수들 역시 이곳에서만큼은 아무런 몸 수색을 받지 않는다. 또한 액세서리도 마음껏 착용할 수 있다.
교도소는 카르타헤나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사진출처=슈테른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그것도 민간군, 게릴라군, 마약 밀매꾼들이 활개치는 콜롬비아에서 말이다. 그 답은 이 레스토랑 안에서 펼쳐지는 생경한 풍경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찾을 수 있다.
일단 ‘인테르노’에 들어오면 이곳이 교도소라는 사실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분위기와 서비스부터 여느 도시의 고급 레스토랑 못지않게 잘 정돈되어 있기 때문이다. 벽에는 이 지역을 상징하는 정글 식물들이 그래피티로 그려져 있고, 곳곳에 거울이 걸려 있다. 깨끗한 흰색 운동화를 신고 머리에는 분홍색 리본을 두른 종업원들은 자리에 착석한 손님들에게 상냥한 어조로 이렇게 묻는다. “환영합니다. 아페리티프(식전주) 한잔 하시겠습니까?”
메뉴는 해산물 리조또, 카사바 크로켓, 코코넛 새우 등 세 가지 가운데 선택할 수 있다. 모두 콜롬비아와 페루의 유명 셰프들에게 직접 배운 레시피로 만들었기 때문에 맛도 훌륭한 편에 속한다. 레스토랑의 좌석은 모두 60석으로 결코 작은 규모는 아니지만 늘 일찌감치 예약이 꽉 차기 일쑤다.
일반적인 고급 레스토랑과 유일한 차이점이 있다면 이곳에서 요리를 하고 서빙을 보는 종업원들이 모두 테러범이거나 살인범이거나 강도라는 사실이다. 반면, 자리에 앉아있는 손님들 대부분은 유혈이 낭자한 콜롬비아의 역사 속에서 직접 강력 사건(납치, 습격, 협박 등)을 경험한 사실상 피해자들이다. 이곳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양 측은 범죄현장에서나, 혹은 법정에서나 만났을 사람들이다. 아니, 적어도 이런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마주칠 일이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레스토랑 안에서는 곧잘 낯선 풍경이 펼쳐지곤 한다. 가령 이런 대화들이 오간다. 한 손님이 요리사인 산드라에게 “교도소에는 어떻게 들어오게 됐나요?”라고 묻자, 산드라는 “공갈협박을 도왔어요. 그래서 2년 형을 선고받았죠”라고 답했다. 그런가 하면 교도소에서 가장 미인으로 꼽히는 웬디는 “택시 운전사의 돈을 훔쳤어요. 전 절망적인 상태였거든요. 집에는 굶주린 애들 세 명이 있었죠”라고 말했다. 가장 나이가 많은 왕언니인 이사벨(64)은 “전 나라를 위해 싸우는 테러범이었어요. 처음에는 게릴라군을 지지했지만, 그들은 우리 땅을 빼앗아갔아요. 그래서 다시 민간군을 도왔죠”라고 말했다.
죄수인 이사벨 볼라뇨(오른쪽)는 레스토랑의 총주방장인 루즈 아드리아나 디아즈의 비서로도 일하고 있다. 사진출처=슈테른
반대로 손님들은 죄수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펜트하우스에서 사는 기분은 어때요?” “마이애미는 어떤 곳인가요?” “실리콘 가슴은 느낌이 어때요?”
밤늦게까지 이들의 대화는 계속되고, 모두들 대화에 몰입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이 몇 시간 동안 그들은 범죄자들도 아니요, 또 부자들도 아니다. 그저 한 명의 사람일 뿐이다. 이에 대해 ‘슈테른’은 관계에 있어 성공의 공식은 늘 한결같다고 말했다. 우선 대화를 하고,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아간 다음, 장벽을 허물면 된다는 것이다.
이사벨은 사람들이 단순히 호기심에 이곳을 찾는 것 같지 않느냐는 질문에 “나는 이것을 관음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손님들 역시 이런 기회를 통해 우리의 배경을 알게 된다. 또한 우리가 저지른 폭력의 배경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이것은 재사회화의 과정이다. 사회가 나를 받아준다는 의미다”라고 말했다.
현재 ‘인테르노’에서 일종의 총감독 역할을 맡고 있는 이사벨은 이밖에도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고 있다. 접수도 담당하고 있으며, 회계, 판매 외에 가방 디자이너로서도 일하고 있다. 레스토랑 입구에는 그가 직접 디자인한 손가방을 판매하는 가판대가 마련되어 있으며, 이 가방들은 모두 콜롬비아의 유명 디자이너인 에르난 사하르에게서 배운 솜씨로 만든 것들이다. 현재 자신만의 회사를 차리기도 한 이사벨은 가방을 판 돈을 모두 가족에게 보내주고 있다.
이사벨은 ‘인테르노’의 기획 단계부터 참여한 그야말로 레스토랑의 산증인과 다를 바 없다. 현재는 남편인 호세 역시 ‘인테르노’에서 일하면서 아내 곁을 지키고 있다. 레스토랑의 주방시설과 환풍기를 설치한 호세는 교도소 안에서 통제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일한다. 죄수들 사이에서 ‘삼촌’이라고 불리고 있는 그는 레스토랑에서 매일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고 말했다. “27년 동안 은행 매니저로 근무했었지만, 지금은 이곳의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다. 일종의 명예직이다. 교도소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내가 사비를 들여서 케이블과 부품을 사오고 있다. 내 보수는 내 아내를 매일 볼 수 있다는 것이다”라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이처럼 죄수인 아내 곁에서 함께 일하는 남편의 모습 역시 생경하긴 마찬가지다. 일종의 자유로운 수감 생활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자유로운 수감 생활은 죄수들의 갱생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과연 전세계 교도소에 롤모델이 될 수 있을까.
이곳에서 창살은 그저 장식일 뿐이다.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모든 죄수들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 아를레스가 도착한 손님들을 맞고 있다. 사진출처=슈테른
처음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린 사람은 콜롬비아의 배우인 요하나 바하몬이었다. 그는 “레스토랑은 내가 낳은 자식과도 같다. 지금껏 내가 한 일 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이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가 이 아이디어를 처음 생각한 것은 6년 전 ‘부엔 파스토르’ 교도소에서 재능을 겨루는 쇼프로그램의 심사위원으로 초대되었을 때였다. “나는 당시 교도소의 끔찍한 상황을 목격했다. 모두들 절망적이었다. 교도소는 죄수들을 더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더 과격해진 상태로 다시 사회로 돌아가고 있었다”며 안타까워했다.
당시 충격을 받았던 바하몬은 연기를 그만두고 후원자, 유명 요리사, 상류층 인사들을 불러 모아 도움을 요청했다. 심지어 법무장관과 상공회의소를 상대로 자신이 구상한 ‘전쟁국의 평화 프로젝트’에 협조해달라고 설득했다. 바하몬은 “현재 우리는 콜롬비아에서 3만 3000명의 죄수들을 돕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치료 및 훈련을 제공하고 있다. 이 교도소 레스토랑의 아이디어는 현재 유럽을 포함한 전세계 국가에서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의 말처럼 교도소는 수감자들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이곳 수감자들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인테르노’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은 현재 14명이지만, 2016년부터 지금까지 이곳을 거쳐간 여성들은 60명이 넘는다. 놀라운 점은 이 가운데 대부분이 모범수로 감형을 받아 일찍 풀려났다는 사실이다.
실제 종업원들은 영업 외 시간에도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고, 주방에는 칼과 술이 가득하지만 지금까지 이 자유를 남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복장도 자유롭다. 모두 평소에도 죄수복이 아닌 검은색 티셔츠와 샌들을 신고 생활한다.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죄수들의 급여는 230유로(약 31만 원)로, 이는 업계가 정한 최저임금 수준이다. 다른 교도소의 수감자들이 노역을 해서 벌어들이는 것보다 10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이사벨은 “나는 1999년부터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내가 법을 어긴 것은 맞다. 하지만 나는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나는 여기에서 일하면서 내 죗값을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부드럽지만 분명한 어조로 “‘인테르노’는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다. 여기 있으면 교도소에 들어와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곳에서 우리들은 모두 한가족이다. 우리는 여기서 인생을 배운다. 모두가 함께하고 싶어한다. 무엇보다 이 일은 우리에게 존엄성을 가져다 준다. 레스토랑을 오픈한 후에는 교도소 안의 분위기도 좋아졌고, 싸움도 덜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죄수들이 텃밭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출처=슈테른
하지만 물론 ‘인테르노’가 생겼다고 해서 열악한 교도소 환경이 갑자기 완전히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이사벨은 “이곳에서의 삶은 힘들다. 특히 여성 죄수들에게는 그렇다. 학대가 있고, 성폭력도 벌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인테르노’ 안에서만큼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 한 차례도 모욕을 주거나 욕설을 하거나 시비가 붙은 적이 없었다. ‘인테르노’에서 책임자로 일하고 있는 전직 TV 감독인 루즈 아드리아나 디아즈(43)는 “이곳을 방문한 손님들 가운데 ‘그곳은 쓰레기 같은 곳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출소 후에 일자리를 주겠다고 제안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고 말했다.
죄수들이 성공적으로 사회로 돌아가도록 만든는 비법이 있냐는 질문에 디아즈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애정’과 ‘훈련’이 바로 그것이다. 디아즈는 “많은 여성들이 수감 생활을 하면서 외로움과 우울증,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먼저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하나씩 단계적으로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때문에 디아즈는 무엇보다도 죄수들이 출소한 후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한 준비도 하고 있다. 먼저 죄수들에게 교육을 시키고 자격증을 준 다음 일자리를 알선해준다. 출소한 후에도 돌봐주는 것이다. 하지만 큰 발걸음은 스스로 내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얼마전 출소한 리비스 알바레즈(32)의 경우는 모범적인 사례다. 공갈협박을 하고 돈을 갈취한 혐의로 5년 동안 복역한 알바레즈는 ‘인테르노’에서 일하면서 요리사, 종업원, 재봉사 등 모든 일을 터득했다. 모범적으로 일한 덕분에 지도력을 인정받아 예정보다 빨리 출소한 그는 현재 디자이너인 에르난 사하르 밑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출소한 후에도 여전히 ‘인테르노’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도 있다. 5년 복역 후 출소한 재키는 한때 갱단의 일원이었지만 지금은 ‘인테르노’에서 요리사로 일하고 있다. 교도소에서 우울증에 시달렸던 그는 ‘인테르노’에서 일하게 되면서 이를 극복했다고 말했다. 재키는 다시 교도소로 돌아온 이유에 대해 “‘인테르노’는 내 고향이 됐다. 나는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재 함께 살고 있는 알바레즈와 재키는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있다. 언젠가는 작은 오두막을 벗어나 도심에 더 큰 집을 빌릴 계획도 세웠고, 지금은 어머니가 돌보고 있는 아들도 데려올 생각이다. 알바레즈는 자신만의 디자이너 가방 가게를 여는 것이 꿈이다. 이들은 교도소에서 제공한 교육으로 일자리를 얻었고, 일자리를 통해 사업 아이디어를 구상해냈다.
‘슈테른’은 죄수들의 갱생은 이런 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하면서 지금처럼만 계속 유지된다면 아마도 ‘인테르노’의 사례가 전세계 교도소에 모범이 되지 않을까 점쳤다. “나는 두 번째 기회란 것을 믿는다”는 이사벨의 말처럼 말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