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10대 집단폭행 사건’ 피의자 착용 명품 모자 화제…패션 브랜드들 “실제 매출 향상 효과 없어”
‘비난하다’라는 뜻의 영어 단어 블레임(Blame)과 패션 스타일을 뜻하는 룩(Look)의 합성어인 ‘블레임 룩’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인물의 옷차림 혹은 그러한 옷차림이 대중의 주목을 받는 현상을 말한다. 한국에서는 1997년 탈옥수 신창원이 검거 당시 입은 브랜드 ‘미소니’의 무지개색 티셔츠가 전국적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 시작됐다. 당시 동대문과 명동 일대에서는 이 무지개색 티셔츠 복제품이 불티나게 팔렸다고 한다. 그룹 젝스키스의 전 멤버 강성훈이 재판 출석 당시 입고 등장한 카멜색 롱 코트도 온라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대표적인 블레임 룩 사례가 됐다.
신창원과 같은 유명 범죄자를 제외하면 블레임 룩은 연예인이나 일부 유명인사의 전유물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현상이 일반인으로까지 번졌다. 일반인 신분의 피의자도 언론에 노출되는 일이 잦아지면서부터다.
광주 폭행 사건 피의자가 명품 브랜드 모자를 쓰고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광주에서 함께 직업학교를 다니던 동급생의 돈을 빼앗고 집단 폭행해 숨지게 한 10대 4명이 6월 20일 검찰에 송치됐다. 이들은 수개월간 한 원룸에서 폭행을 지속해오다 9일 피해 학생이 사망하자 도주했지만 결국 이틀 뒤인 11일 경찰에 자수했다. 20일 호송차에 오르는 피의자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브랜드 제품으로 휘감은 모습이었다. 한 피의자는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 모자에 ‘뉴발란스’ 슬리퍼를 착용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명품 브랜드 ‘구찌’ 모자를 쓴 피의자였다. 해당 제품은 온라인에서 44만 원에 팔리고 있었다. 그가 입은 상의도 최소 30만 원 상당의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맨투맨’ 제품이었다. 이들의 모습이 언론에 공개되자 포털 실시간 검색어엔 ‘구찌 모자’가 등장했다. 여론은 싸늘했다. 대중은 “피해자로부터 갈취한 돈으로 명품 옷을 사 입었다”며 분노했다.
인천 중학생 추락사 피의자 가운데 1명이 피해 학생의 베이지색 패딩 점퍼를 입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발생한 인천 중학생 추락사 역시 피의자의 잘못된 옷차림으로 대중의 공분을 샀다. 당시 사망 원인이 추락이 맞느냐를 두고도 논란이 있었지만 논란의 불씨를 당긴 것은 피의자의 옷이었다. 피의자 4명 가운데 1명이 사망한 학생의 베이지 색 패딩 점퍼를 입고 경찰 조사를 받은 것. 사건은 피해 학생의 어머니가 온라인에 ‘저 패딩은 우리 아들의 것입니다’라는 글을 남기면서 커지기 시작했다. 문제의 베이지 색 패딩은 사건 발생 며칠 전 피의자 무리가 피해 학생을 찾아가 “내 패딩은 일본 디즈니랜드에서 산 옷이니 바꾸자”고 거짓말을 해 빼앗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경찰은 해당 패딩 점퍼를 유족에게 돌려주었다고 밝혔다.
당시 본지와 인터뷰를 한 피의자 지인도 “피의자 무리가 피해 학생의 패딩 점퍼를 빼앗아 돌아가면서 입었다. 긴급체포를 당하면서 미처 옷 갈아입을 생각을 하지 못한 것 같다”고 증언한 바 있다.
자신이 판매하던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황하나씨. 사진=연합뉴스
불법 마약 투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황하나 씨의 옷차림도 논란을 일으켰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람 치고는 황 씨의 옷차림이 너무 자주 바뀐 까닭이다. 4월 경기도 한 병원에서 환자복 차림으로 체포된 황 씨는 같은 날 오렌지색 후드티에 검정색 치마로 옷을 바꿔 입고 나타났다. 영장실질심사 출석 당시 입고 나온 분홍색 원피스는 과거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판매하던 제품이었다. 그 후로도 일자형 와인색 원피스를 입고 카메라 앞에 서는 등 황 씨는 체포부터 구속 결정까지 최소 4차례 이상 옷을 갈아입어 논란이 됐다. 현행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미결수용자는 수사나 재판 등에 참석할 때 사복을 입을 수 있다. 그러나 언론에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바뀌는 황 씨의 옷차림에 일각에서는 ‘무엇이 그리도 당당하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이렇듯 최근 이슈가 된 일반인 피의자의 옷차림은 인기보다는 분노를 자아내는 면이 많았다. 언론도 이슈몰이보다는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를 두고 서울 남대문경찰서 관계자는 “연예인이나 유명인은 대개 준비된 상태로 경찰에 출두한다. 최대한 단정한 패턴에 어두운 색의 옷을 입어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반면 일반인은 자기 모습 그대로 취재진 앞에 서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보니 옷차림에 평소 생활 모습이 묻어나 더욱 논란이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런 경우 화젯거리만 될 뿐 실제 제품의 매출로는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강남의 한 명품 매장 관계자는 “우리 브랜드 모자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것은 맞다. 하지만 오프라인 매장에서의 판매량은 크게 늘지 않았다”고 답했다.
또 다른 명품 브랜드 관계자 역시 “블레임 룩이 실제 판매량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지 않다. 단기적으로 판매량이 잠깐 오를 수는 있어도 장기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범죄자가 입었던 브랜드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될 수 있어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