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 핵심들 인수위 대체 모임 가져…조국 법무장관·윤석열 민정수석 검토도
이재명 경기지사. 이종현 기자
대선 때 문재인 캠프 최대 고민 중 하나는 당선 이후였다. 선거 다음 날 취임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캠프 안팎에서 친문 인사들이 이와 관련된 업무를 논의하는 모습은 종종 포착됐다. 최근 한 친문 의원은 조국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임명설을 지켜보면서 당시를 떠올렸다고 한다. 정권 출범 전 조 수석을 법무부 장관 후보로 추천하려던 움직임이 있었다는 얘기였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을 듣기 위해 이 친문 의원을 만났다.
그는 외곽에서 캠프를 지원사격하는 한 친문 모임에 속해있었다고 한다. 공식 명칭은 없었지만 전현직 친문 의원들이 일주일에 두세 차례 모여 선거전략 수립 등에 관여했다. 또 원활한 정권 인수인계를 위한 스터디도 진행했다. 여권 주변에선 참석자 면면을 보고 친문 핵심들로 구성된 ‘부엉이 모임’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친문 의원은 “우리 멤버 대부분이 부엉이 모임인 것은 맞다. 하지만 (부엉이 모임은) 아니다. 부엉이 모임은 2012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우리는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만들어졌다”고 귀띔했다.
그 의원은 모임 참석 때 필기한 메모들, 그리고 참석자들이 나눠줬거나 내용을 정리한 문서 등을 보여줬다. 그는 “공식 모임은 아니었지만 선거 승리, 정권 출범에 기여했다고 자부한다”면서 “우리 쪽에서 이뤄진 논의가 인사나 정책 등에 반영된 사례가 적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 모임의 또 다른 참석자였던 친문 관계자 역시 “인수위 역할을 어느 정도 대신했던 측면이 있다”고 귀띔했다.
앞서 언급한 조국 민정수석 얘기로 돌아가 보자. 이들이 2017년 5월 4일 만든 문서에는 문재인 정부 인재풀과 관련된 내용이 기록돼 있었다. 대선을 5일 남겨둔 시기였다. ‘대선캠프, 시민단체 적극 활용’이라는 제목의 문서였다. 검증 자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대선캠프 및 시민단체 인사들을 발탁할 필요가 있다는 게 골자였다. 현 정부 들어 급부상한 민변과 참여연대가 직접 거론된 부분이 눈길을 끌었다. 문 대통령 공약이기도 한 여성할당제를 강조한 부분도 있었다.
뒤를 이어 조국 민정수석 이름이 나온다. 박범계 의원과 함께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거론됐다. 모임 참석자였던 친문 의원은 “당에서 고르면 박범계, 외부에선 조국이 적임자라는 판단이었다”라고 설명했다. 민정수석으론 신현수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가 기록돼 있었다. 현 정부에서 파격 승진을 거듭하고 있는 윤 후보자를 민정수석으로도 검토했었던 것이다.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는 노영민 현 실장, 경제부총리는 김진표 의원을 추천했다.
결과만 놓고 봤을 때 정확도에 다소 의문이 생긴다. 이에 대해 친문 의원은 “우리뿐 아니라 여러 라인에서 비슷한 작업을 했다.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니 우리 쪽에선 아무래도 친문 인사들 위주로 골랐다. 최종 결정권자는 문 대통령이다. 복수의 보고서, 검증 자료 등을 바탕으로 판단하는 것”이라면서 “문 대통령이 조국 교수를 두고 고민하다 민정수석으로 발탁했고, 신현수 윤석열은 자연스레 교통정리가 됐다”고 했다.
취임 이틀 후인 5월 12일엔 당선 축하 성격의 모임이 열렸다. 이 자리에선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야 할 과제들을 놓고 토론도 벌어졌다. 한 참석자가 ‘역사적 정통성 재확립’이라는 제목이 달린 요약본을 나눠줬다고 한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위상을 정립해 정통성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권 뿌리는 3·1운동에 있고, 보수 진영에서 내세우는 8·15 건국절설은 오류가 많다고도 돼있다. 이는 문 대통령을 비롯한 친문 인사들이 임시정부 수립해인 1919년을 건국절로 주장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5월 16일 모임에선 문재인 정부 1호 과제인 적폐청산을 다뤘다. 문서에는 ‘국정과제 1호는 적폐청산’이라는 문장이 명시돼 있다. 지난 정권 10년의 적폐를 청산하지 못하면 기득권과의 싸움에서 밀려 임기 후반 힘들었던 참여정부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했다. 박근혜 국정농단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 4대강 사업도 전면 재조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각 부처 내 TF와 위원회를 설치하고 여기에 외부 인사 참여 필요성이 강조됐다. 실제 이런 내용은 정부 출범 후 청와대 중심의 적폐청산 작업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검찰의 ‘특별 관리’ 필요성도 포함돼 있었다. 친문계가 검찰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검찰 개혁으로는 검경 수사권 조정, 공수처 설치, 총장 직선제 추진 등의 구상이 제시됐다. 이 중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는 현재 여권에서 추진하고 있는 사안들이다. 적폐 검사들에 대한 인사 조정 부분 역시 어느 정도 현실화됐다. 과거 정권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검사들 상당수가 좌천되거나 옷을 벗었다.
하이라이트는 6월 3일 작성된 문서다. 내용이 공개될 경우 정치적 후폭풍도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 결과가 정권 재창출을 통한 장기집권 여부를 좌우할 것이라면서 전략 수립을 촉구하고 있다. 차기 주자들을 전략적으로 선거에 내보내야 하고, 총선에선 과반수 의석을 목표로 했다. TK(대구 경북)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한국당을 고립시켜야 한다는 내용은 현재 여권의 총선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이를 접한 또 다른 친문 의원은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이런 논의를 했다는 것 자체는 어떻게 보면 부적절할 수 있다. 하지만 친문 입장은 조금 다르다. 정권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이어갈지가 더욱 중요하다. 정권을 내줬을 때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목격하지 않았느냐”면서 “이해찬 대표를 비롯해 민주당 중진들이 장기집권을 여러 차례 언급한 것은 친문 내부에선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서엔 차기 주자를 육성해 안정적인 승계 구도를 그리기 위해선 친문과 적대감을 형성하고 있는 후보들을 정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그리고 등장하는 이름이 안희정(전 충남지사) 이재명(경기지사)이다. 둘이 문 대통령 임기 후반 잠재적 불안 요소로 떠오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경우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지만 경쟁력과 충성도에 있어서 의문스럽다고 했다. 문서는 ‘빅3 안희정 이재명 박원순 대안은?’이라는 물음으로 마무리된다.
흥미로운 부분은 ‘아킬레스건 찾기’라는 문장이다. 안희정 이재명 박원순의 약점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으로 읽힌다. 이는 정치권을 중심으로 회자되던 ‘안이박 살생부’를 떠올리게 한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미투 사건으로, 이재명 경기지사는 김부선 스캔들 및 가족사 등으로 정치적 위기에 빠졌다. 다음 타깃은 박원순 시장이 될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셋은 공교롭게도 비문 진영 유력 잠룡들이었다.
이를 두고 친문 진영 ‘작품’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조직적으로 비문 후보 죽이기에 나섰다는 의혹이었다. 안이박에서 ‘김’을 더한 ‘안이박김 살생부’로 확대 생산되기도 했다. 여기서 김은 김부겸 의원이라는 게 정설이다. 이 문서와 살생부 간 연관성을 파악하긴 어렵다. 살생부 존재 자체에 대한 신빙성도 낮다. 하지만 이를 관통하는 친문계 인식은 엿볼 수 있다. 안희정 이재명 박원순 모두 여권 주자들로 오르내렸지만 친문 입장에선 ‘우리 편’이 아니었던 셈이다. 아킬레스건 찾기를 주문한 것으로 봤을 땐 오히려 정적으로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