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당 경쟁 속 사업영역 확장으로 적자 규모 확대…업체 내실 약해지면 고객들 미상환잔액도 위험
토스와 카카오페이 등 간편 송금·결제 업체들이 고객 확보를 위해 경쟁적인 출혈마케팅에 한창이다. 연합뉴스 제공
카카오페이는 한 달 쓸 용돈을 미리 카카오페이로 충전하면 무작위 추첨으로 최대 200만 원을 돌려주는 이벤트를 선보였다. 토스 운영사 비바리퍼블리카는 토스카드 결제 시 33% 확률로 10% 캐시백을 해주는 이벤트를 진행한다. 네이버페이도 계좌 간편 결제로 5만 원 이상 충전하면 금액의 2%를 적립해준다.
핀테크 업체들이 이벤트 경쟁을 펼치는 까닭은 시장에 뛰어든 플레이어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정부 규제 완화로 토스와 카카오페이·네이버페이·NHN페이코 등 IT·핀테크업체는 물론 금융업계와 유통업계도 간편 송금·결제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모바일 자산관리서비스 애플리케이션 ‘뱅크샐러드’와 미래에셋대우 등이 간편 결제 서비스 출시를 앞두고 있다. 유통사에서는 신세계에서 출시한 ‘쓱페이’와 롯데 ‘엘페이’, 우아한형제들 ‘배민페이’, 쿠팡 ‘쿠페이’ 등이 이미 서비스 중이다.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간편 결제·송금 서비스만으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힘들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업체마다 인터넷전문은행 등 다른 금융 서비스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려다 보니 고객 기반을 강화할 필요성이 대두했고, 이를 위해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쏟아붓는 것이다. 이민환 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교수는 “초기 시장에서는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나타나면서 이커머스나 배달 업체처럼 출혈경쟁으로 우위에 서려는 승자독식 게임이 전개된다”며 “인터넷전문은행 진출을 노리는 토스는 경영 전략 측면에서, 인터넷전문은행 선두주자로 자리 잡은 카카오는 기반을 더 확고히 하고자 고객 확대에 나서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카카오페이와 토스 등 간편송금·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핀테크 업체들이 시장 점유율 확대를 위해 출혈 마케팅을 벌이면서 적자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 과당 경쟁이 기업 내실 약화를 야기해 고객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고성준 기자
문제는 공격적 마케팅 탓에 적자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토스 운영사 비바리퍼블리카의 지난해 당기순손실은 전년 대비 13.84% 증가한 444억 7000만 원, 카카오페이는 267.90% 늘어난 934억 8300만 원을 기록했다. 전망도 밝지 않다. 다양한 업체가 핀테크 시장에 진입하면서 기존 업체들의 간편 결제·송금 서비스의 차별화·특성화가 사라지고 대중화되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으로 진출한다고 해도 성공을 장담하기는 힘들다. 시중 은행과 차별화된 서비스로 승부하기보다 금리 인하 등 가격 경쟁으로 고객 확보에 나서면서 재무건전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민환 교수는 “인터넷은행들이 확실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 기존 금융권과 다를 바 없는 서비스로 가격 경쟁을 하면서 고객들을 끌어모으고 있어 수익을 창출하기엔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고객들이 선불로 충전해 놓고 쓰지 않은 채 계정에 남겨 둔 ‘미상환잔액’도 해마다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카카오페이의 지난해 말 기준 미상환잔액은 1298억 8900만 원으로, 2017년 말 375억 5800만 원에서 1년 만에 246% 늘었다. 토스도 지난해 미상환잔액이 586억 600만 원으로 전년 405억 8500만 원보다 44% 증가했다. 지나친 경쟁으로 각 업체의 내실이 약화될 경우 고객들이 미상환잔액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상환잔액은 은행 등에 맡겨놓은 예금과 달리 예금자보호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전자금융거래법에 따라 간편결제·송금 업체는 미상환잔액 대비 자기자본비율을 20% 이상 유지해야 하지만, 이는 경영 지도 기준일 뿐 강제성이 없다.
금융당국이 하루빨리 고객 자산 보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2003년 카드사들의 고객 유치를 위한 과당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신용카드대란’으로 연결된 일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핀테크 업체들의 출혈경쟁을 방치해두면 같은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원장은 “출혈경쟁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도태되는 기업들이 도산하면 피해는 고객들에게 돌아간다”며 “시장 규모가 커지는 만큼 고객 자산을 관리·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실제 금융당국은 미상환잔액 대비 자기자본비율을 상향 조정하거나 강제성을 부여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두고 업계와 논의 중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미상환잔액 규모가 확대되는 만큼 업체의 영업 자율성을 보장하면서도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는 균형적 방안을 마련해 하반기 내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섣부른 규제는 오히려 핀테크 성장에 제약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자기자본비율을 강제하면 자산 규모가 작은 후발주자들은 핀테크 시장에 뛰어드는 데 제약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민환 인하대 교수는 “자기자본비율을 강제하기보다 자금 운용의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며 ”고객 예치금을 은행 신탁금에 독립된 계좌로 보관하는 등 고객 충전금을 전용할 수 없도록 분리, 보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
정부의 핀테크 밀어주기에 카드업계는 ‘부글부글’ 정부의 ‘핀테크 밀어주기’에 카드업계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핀테크 업체들의 도 넘은 출혈 마케팅은 놔두고 카드업계만 규제한다는 하소연이다. 카드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이달 초 ‘상품 수익성 분석 합리화 태스크포스’를 열고 5년간 흑자를 낼 만한 신용카드 상품만 출시 승인을 내주겠다는 안을 카드사에 전달했다. 카드론(장기카드대출)과 현금서비스(단기카드대출) 등을 수익으로 포함하고 일회성 마케팅비와 간접비를 비용에 포함하기로 했다. 카드사 간 출혈 경쟁을 막겠다는 이유다. 업계에서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상품 하나하나에 대해 5년간 수익성을 따지는 건 과도한 시장 개입이라는 주장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핀테크 규제는 대폭 풀어주고 출혈 경쟁에 제동을 걸지 않는 반면 카드업계엔 상품도 제대로 못 만들게 한다”며 “전체적인 틀에서 재무건전성을 관리·감독하면 될 뿐 상품 하나하나에 이익이 남는지 따져 승인을 내준다는 건 지나친 개입”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소비자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카드사 간 경쟁 과정에서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품이 나오기 마련인데, 과도한 정부 개입으로 경쟁이 위축돼 고객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줄어들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민환 인하대 교수는 “새로운 카드를 출시할 때 기존 카드를 ‘리모델링’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규제를 통해 눈속임 형태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면서도 “마케팅과 신상품 개발이 위축되면 결과적으로 소비자 혜택이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예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