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리추얼(영적) 사기 피해 끊이질 않아…SNS 통해 논란 커지면 방송국 위험
지난 2017년 도쿄지방법원에서 나온 판결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평범한 여성을 세뇌시켜 성매매를 강요한 점쟁이에게 약 1억 엔(약 11억 원)의 보상 판결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법원에 따르면, “피해 여성은 점쟁이의 말대로 도쿄에 있는 유흥업소에 취직했고, 업소 일을 하며 번 돈 1억 엔을 모두 점쟁이에게 바쳤다”고 한다. 재판 결과, 점쟁이는 피해 여성에게 하루 1000원 정도의 용돈만 준 사실도 드러났다.
이런 사건도 있었다. 1970년대 유명 아이돌이었던 헨미 마리는 무당에게 세뇌를 당해 전 재산을 몽땅 잃었다. 사기당한 금액은 무려 5억 엔(약 54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처럼 일본에서는 유독 ‘스피리추얼(Spiritual·영적)’ 사기 피해가 끊이질 않는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모든 물체에 영(靈)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과 자연숭배를 기조로 하는 일본 토착종교 신도”에서 찾는다.
일본 매체 ‘주간다이아몬드’는 “일본인의 경우 어릴 때부터 애니미즘에 대한 친근감이 조성되어 있으며, 운세나 혈액형별 궁합, 동물점 등을 일상적으로 즐긴다”고 전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스피리추얼 시장 규모는 대략 1조 엔(약 11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오컬트 문화 보급에는 일본 방송 프로그램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과거 일본 TV를 살펴보면, 심령현상과 영매술 등을 다룬 오컬트 프로그램이 소위 말하는 황금시간대를 장악했다. 시청자들의 수요가 많고 ‘기본 이상’의 시청률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본격적으로 오컬트 프로그램이 등장한 것은 1970년대의 일이다. ‘숟가락을 구부리는’ 유리 겔라가 1974년 일본을 방문하면서 그야말로 ‘초능력붐’이 몰아쳤다. 이스라엘 출신인 유리 겔라는 ‘염력’으로 숟가락이 휘어지게 하고, 고장 난 시계바늘을 움직이게 해 모두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나중에 유리 겔라의 초능력은 사기인 것으로 밝혀졌다. 일명 ‘초능력 사냥꾼’으로 불리는 제임스 랜디가 “유리 겔라의 기술은 초능력이 아닌 눈속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고, 법정 소송 끝에 이를 입증한 바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다른 나라에서는 유리 겔라를 ‘희대의 사기꾼’으로 보는 시선이 많지만, 일본의 경우 여전히 그를 초능력자로 숭배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기보 아이코는 ‘영적인 존재를 보는 영시 능력자’로 텔레비전에 등장해 일약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유튜브 캡처.
1980~1990년대에는 수많은 심령 프로그램이 일본의 안방을 찾았다. 그 가운데 단연 돋보인 인물이 기보 아이코(1932~2003)다. 그녀가 출연한 TV 프로그램은 유튜브를 통해 지금도 수백만 번 넘게 재생되고 있다.
기보는 ‘영적인 존재를 보는 영시(靈視) 능력자’로 텔레비전에 등장해 일약 주목을 받았다. 본인에 의하면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는 대신 영(귀신)의 말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소지품을 통해 그 인물에 얽힌 일화를 볼 수 있으며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알아맞히는 능력도 발휘한다. 가령 한 의뢰인이 기보에게 사라진 돈을 찾아달라고 호소하자, 기보가 영시를 통해 의뢰인 주변사람이 돈을 훔친 사실을 밝혀내는 식이다.
‘영시능력’으로 불가사의한 현상 뒤에 숨어 있는 사연과 이중적인 인간의 욕망을 까발리자 일본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일반 시청자뿐 아니라 유명 인사들까지 그녀와의 대담을 요청했을 정도. 미국의 육상선수 칼 루이스도 당시 기보와 영적 상담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만 그녀의 능력에 대해서는 진위 논란이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3년 12월 30일 닛테레에서 방영됐던 ‘새로운 도전II’라는 프로그램이다. 기보는 이 방송에서 영시능력을 통해 “런던탑 블러디 타워 위층에 침대가 보인다. 거기에 에드워드 5세와 그의 동생 리처드가 앉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에드워드 5세 형제가 살던 시대에는 그 층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100년 후에 증축된 장소”라고 반박했다. 더욱이 그녀가 말한 내용은 나쓰메 소세키의 단편소설 ‘런던탑’과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나 논란을 크게 부추겼다.
오라의 샘에 출연한 미와 아키히로. 공식 홈페이지 캡처.
2000년대에 들어서자 심령 프로그램 대신, 미와 아키히로와 에하라 히로유키 등이 출연한 운세 프로그램 ‘오라의 샘’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게스트의 기운(오라)과 전생을 봐주고 조언을 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이후 일본 방송국들은 ‘용한 점쟁이’ 찾기에 혈안이 되었는데, 과학적 뒷받침이 없는 콘텐츠를 경원시하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관련 프로그램은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여기에는 근거 없는 논리로 세뇌당한 다단계 피해자들과 ‘영적인 것이 실체가 없다’는 점을 악용해 상대를 속이는 범죄가 늘어난 것도 배경으로 꼽힌다.
종교 연구자 다카하시 나오코는 오컬트 문화에 열광하던 일본에서 관련 프로그램이 사라진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에는 비과학적인 내용이 문제시되는 일이 적었고, 방송국으로 클레임 전화를 거는 사람 또한 소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트위터 등 SNS을 통해 누구나 쉽게 불평불만을 제기할 수 있으므로 논란이 일파만파 퍼지게 된다. 방송국 입장에서는 설령 시청률이 높다 해도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까지 오컬트 프로그램을 제작할 순 없을 것이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가장 무시무시한 심령마을 ‘영화’로 오싹~ 일본의 심령 스폿 ‘이누나키 마을’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진다. 2020년 공개되는 영화 포스터. 오래전부터 이누나키 마을은 괴이한 소문이 떠돌았다. “근처 오두막에 해골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모든 휴대전화가 권외가 되는 기묘한 현상이 벌어진다” “대학생 두 명이 담력시험 삼아 갔다가 착란상태에 빠져 20년째 정신병동에서 지내고 있다” 등등 괴담은 셀 수가 없다. 따라서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영화로 제작해도 정말 괜찮냐”는 농담 아닌 농담도 나온다. 영화는 ‘주온’ 시리즈로 유명한 시미즈 다카시 감독이 맡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