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외감법’ 시행으로 수요 폭발적 늘어 ‘인력쟁탈전’까지…평균 연차 줄었음에도 평균 인건비는 ‘껑충’
공인회계사(CPA) 시험 연간 선발인원은 2000년까지만 해도 500명대에 정체됐지만 2001년 1000명으로 2배 늘었다. 갑작스런 공급 확대로 몸값이 크게 떨어져 일반 기업에 취업하는 경우에도 별다른 우대를 받지 못했다. 그 후 2009~2018년 최저 선발인원이 850명으로 유지됐지만, 예전과 같은 고소득 전문직으로 각광받지는 못했다. 그런데 최근 CPA 수요가 폭증했다. 올해부터 개정된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때문이다. 올 초 이뤄진 2018년 회계연도 감사부터 적용됐다.
이른바 신외감법은 표준감사시간 제도를 도입해 기존 대비 최대 2배에 가까운 시간을 투입하도록 한 것이 골자다. 투입 인력도 늘어나고 자연스럽게 감사 비용도 높아졌다. 또 회계법인의 규모에 따라 피감기업 규모를 제한해 공인회계사를 많이 보유해야만 큰 기업, 즉 감사비용을 많이 지급하는 곳들의 일감을 맡도록 했다. 40인 미만의 회계법인은 상장사 감사 업무에서 아예 배제된다. 여기에 주52시간 근로제까지 시행되면서 회계법인들의 CPA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CPA 선발인원 확대와 함께 회계법인들간 인력쟁탈전까지 벌어질 정도다.
서울 여의도 IFC ONE 빌딩에 위치한 디로이트안진회계법인(Deloitte). 신외감법 시행으로 회계사 몸값이 치솟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종현 기자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과 회계업계에 따르면 지난 5월 말까지 시가총액 상위 상장사 200곳(유가증권시장 100개사, 코스닥 100개사) 가운데 107곳만 올해 사업연도 감사용역 보수계약을 맺었다. 이들 기업의 외감 비용은 평균 6억 3327만 원으로 작년보다 52% 급증했다.
갑작스런 외부감사 비용 상승은 회계법인의 실적 증대로 이어졌다. 지난 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는 4대 회계법인 가운데 삼정과 한영의 2018회계연도 사업보고서(2018년 3월~2019년 3월)가 공개됐다. 삼정과 한영은 각각 4743억 원, 3361억 원의 영업수익(매출)을 냈다. 전년 대비 각각 24%, 27% 늘었다. 외부감사로만 삼정은 2018년에 전년보다 183억 원 증가한 1328억 원, 한영은 192억 원 증가한 971억 원을 벌어들였다. 안진(5월 결산), 삼일(6월 결산)의 수익 역시 지난해보다 25%가량 증가한다고 가정하면, 올해 회계법인들의 매출은 2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관측된다.
일감이 늘어나고 실적이 불어나자 CPA 채용을 두고 경쟁이 치열하다. 삼정과 한영의 지난 한 해(2018년 3월~2019년 3월) 공인회계사 수 증가율은 각각 13.8%, 16%다. 삼일·안진 역시 경쟁적으로 인력 확충에 나선 만큼 유사한 증가세를 기록했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형 회계법인의 증가세와 달리 중형 회계법인에선 오히려 감소세다. 지난해 3월 결산 기준 매출 100억 원 이상 회계법인 20곳 중 이달 2일까지 사업보고서를 공개한 법인(16곳)을 분석한 결과, 이들 법인에서 근무하는 공인회계사 수는 지난해 총 1262명에서 1293명으로 불과 31명(2.5%) 증가하는 데 그쳤다. 16곳 중 7곳은 인원이 그대로거나 오히려 감소했다.
대형사들이 CPA 확보를 위해 내세운 무기는 역시 ‘돈’이다. 지난해 사업보고서를 분석해보면 삼정은 2018회계연도에 1인당 인건비(급여와 복리후생비의 합)가 약 8900만 원을 기록했다. 2017년(약 8100만 원)보다 약 10% 증가했다. 한영 역시 2016년에 약 7500만 원, 2017년 7900만 원을 기록하던 1인당 인건비가 2018년에 8500만 원선으로 대폭 상향됐다.
반면 5년 미만 경력의 회계사 수로 따지면 삼정의 경우 2016년에 852명이었던 인원이 2017년에는 844명으로 감소했으나 2018년에는 966명으로 122명이 늘었다. 특히 1년 미만의 회계사들을 73명 늘렸다. 한영은 2016년에 516명이던 회계사 수가 2017년에 46명이 늘어난 562명을 기록했다. 그러던 것이 2018년에는 전년보다 295명 늘어난 857명의 회계 인력을 고용 중이다. 한영에서는 특히 1~3년 경력을 가진 회계사가 223명 늘었다.
평균 연차는 줄었는데, 평균 인건비는 크게 늘었다. 결국 5년 미만 회계사들의 몸값이 그만큼 높아진 셈이다. 4대 회계법인은 지난해 1년차 회계사에게 수당 등을 합쳐 5500만 원 전후의 연봉을 책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4000만 원대 중반에서 20% 이상 늘었다.
CPA에 갓 합격한 이들이 첫 직장으로 중소 회계법인을 선택하는 경우는 드물다. 향후 이직이나 전직을 위해서는 대형 회계법인에서 경력을 시작하는 편이 유리하고, 해외 인사교류·연수 등의 기회가 풍부한 글로벌 회계법인을 선호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대형 회계법인의 채용 규모도 대부분 회계사 합격자를 수용할 수준이 된 상황이다.
이에 대부분 중소 회계법인은 즉시 실무에 투입이 가능한 5년차 CPA에 억대 연봉을 제시하며 인력 풀을 확충하고 있다. 대형 회계법인 출신의 5년차 이상 회계사들의 이직이 활발한 이유다. 하지만 일감 확보가 불리한 상황에서 높은 연봉을 제시하다보니 또 다시 비용부담에 허덕일 것이라는 게 중소 회계법인의 고민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