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문 잠룡’과 관계개선 움직임…이재명 공개 지지선언 검토 의원들도
박원순 서울시장. 사진=서울시
정치권 모든 시선은 내년 총선으로 향해 있다. 차기를 꿈꾸는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대선의 일차관문인 경선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당내 우군을 최대한 끌어 모아야 하는데, 총선은 이를 위한 절호의 기회다. 얼마나 많은 금배지를 품느냐에 따라 경선 결과가 갈린다. 대권 행보에도 적잖은 영향력을 미친다. 본격적인 공천 전쟁을 앞두고 잠룡들의 발걸음이 빨라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여권 비주류 잠룡들의 고민은 깊다. 주류인 친문계 지원사격을 받지 않고선 경선 통과 자체가 힘들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128석 중 절반에 육박하는 60명 정도가 친문으로 분류된다. 충성도가 높은 것으로 잘 알려진 친문계 주요 지지층이 SNS 상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도 비슷한 맥락이다. 친문과 대립할 경우 여론조사에서 불리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비문 의원은 “경선은 결국 친문이 누구를 미느냐의 싸움”이라면서 “여권이라고 다 같은 여권이 아니다. 정권 출범 후 친문으로부터 끊임없이 공격을 받았던 이재명 경기지사를 보면 잘 알 수 있지 않느냐”라고 되물었다. 친문 의원도 “우리가 공천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것은 차기와도 관련이 있다. 친문계의 정치적 힘을 유지하기 위해선 공천 전쟁에서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귀띔했다.
그런데 친문 내부 분위기는 그리 밝지만은 않다. 우울한 전망도 새어나온다. ‘포스트 문재인’으로 내세울 만한 정치인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권 주자 지지율 선두권을 달리고 있는 이낙연 총리는 엄밀히 말하면 친문은 아니다. 한 친문 전직 의원은 “지금 거론되는 잠룡들 중 김경수 경남지사 말고는 친문은 없다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 그마저도 김 지사는 드루킹 사건으로 상처를 입어 활동 폭이 좁아들었다”라고 말했다.
신친문 인사로 꼽히는 임종석 전 비서실장을 놓고는 친문 내에서조차 호불호가 갈린다. 임 전 실장이 문재인 정부 첫 비서실장에 당선됐을 때 친문 의원들 사이에선 불만이 적지 않았다. 임 전 실장 재직 시 여러 차례 제기됐던 경질론 등의 근원지로 친문계가 지목받은 바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몇몇 친문 의원들은 임 전 실장 본선 경쟁력에 의문부호를 달며 차기 도전 가능성을 낮게 보기도 했다. 한 의원은 “차차기에 출마할 게 확실하다”고까지 했다.
최근 들어 박원순 시장과 이재명 지사를 바라보는 친문계의 시선이 바뀐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친문 핵심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은 취임하자마자 둘을 만나 화제를 모았다. 친문계가 먼저 박 시장과 이 지사에게 손을 내민 것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친문 진영의 차기 전략과 맞물려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놨다. 또 다른 친문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사람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 주자들을 어떻게 띄울 것인지도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까진 불필요한 오해가 많았다. 오죽하면 ‘안이박 살생부’ 같은 말도 안 되는 소문까지 돌았다. 겉으로 표현은 안하겠지만 아마 우리 쪽에 대해 섭섭한 감정을 많이 갖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를 풀어야 한다. 박원순과 이재명 모두 여권의 소중한 자산이다. 우리의 목표는 정권재창출이다. 경선이란 게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좋은 것 아니냐.”
이를 뒷받침할 만한 장면들도 포착됐다. 박원순 시장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한 민주당 의원은 얼마 전 친문 인사들로 꾸려진 스터디 모임에 초청받아 참석했다. 발제 주제는 남북 관계였지만 주요 관심사는 박 시장의 차기 행보였다고 한다. 참석자 중 한 명은 이 의원에게 “과거는 훌훌 털자. 친문 진영이 조직적으로 박 시장을 도울 수 있다. 박 시장 결단만 남았다”는 취지의 말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의원실 관계자는 “박 시장 지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스터디 발제자로 부른 것 같았다. 친문 쪽이 확실히 달라지긴 달라진 모양”이라고 했다.
이재명 지사와 관련해선 더욱 흥미로운 얘기가 들린다. 이 지사를 차기 후보로 점찍은 3~4명의 친문 의원들이 공개 지지 선언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게 골자다. 그동안 이 지사에 대한 친문계 스탠스를 떠올려보면 그 충격파는 상당할 전망이다. 여기에 얼마나 많은 친문 의원들이 합류하느냐에도 관심이 쏠릴 것으로 보인다. 이 지사 측 관계자는 “아직은 희망사항이지만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재명 대세론’이 떠오를 수 있다”고 기대했다.
조직력이 약한 잠룡들로선 친문계와의 관계 개선은 천군만마나 다름없다. 친문 입장에서는 경쟁력을 갖춘 차기 주자가 절실하다. 양측의 이해득실이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하지만 정치권 관계자들 중에선 친문계 분화 차원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정권 출범 후 너도나도 친문을 자처하며 그 수가 늘어났다. 총선을 앞두고 저마다의 셈법에 따라 친문은 쪼개지고 있다”면서 “이러한 현상은 차기 주자를 중심에 두고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