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무반응에 직접 뉴욕에 분쟁중재 신청한 점주도…최근 재심사 요청에 ‘심사 불개시’ 결론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열린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가맹점주들을 향한 미국계 샌드위치 프랜차이즈 써브웨이의 ‘갑질’ 지적이 나오자 김상조 당시 공정거래위원장(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한 답변이다. 이는 관련 법 적용과 조사에 대한 확답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위원장의 발언 이후에도 공정위는 아직까지 아무런 행동이나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폐점돼 ‘임대문의’가 붙은 써브웨이 매장.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상관없음. 사진=민웅기 기자
지난해 10월 일요신문은 국내에서 큰 사랑을 받으며 성장하고 있는 프랜차이즈 ‘써브웨이’가 가맹점주들에 ‘갑질’을 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관련기사-일요신문 제1379호 “중재 원하면 뉴욕 법원으로 와라” 써브웨이 미국 본사 ‘갑질’ 논란). 본사가 일방적으로 가맹 해지에 따른 폐점 통보를 하는 것은 물론, 이의를 제기하는 국내 가맹점주에게 미국 뉴욕에서 영어로 분쟁조정에 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피해점주 A 씨는 “국내에서 장사를 하는데 미국 법원에 가서, 미국 변호사를 선임해 소명해야 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며 “중재를 진행하면 1만 달러 이하인 법률비용까지 물어야 한다”고 토로했다. A 씨는 경기 안양시에서 5년째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점포 매출은 꾸준히 늘었고, 운영도 잘해 몇 년 전 미국 본사에서 ‘고객평가 우수점포’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피해점주들은 국내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약관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내 약관법 14조는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재판 관할 합의 조항은 무효로 한다”고 규정했다. 6조에도 “신의성실의 원칙을 위반하여 공정성을 잃은 약관 조항은 무효”라며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하고, 계약의 거래 형태 등 관련된 모든 사정에 비추어 예상하기 어려운 조항은 공정성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명시돼 있다.
반면 써브웨이 측은 가맹계약서상에 네덜란드법을 준거법으로 지정하고 있어 외국 사업자와 국내 사업자 간 계약으로 국내의 약관법을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반박했다. 이에 A 씨는 공정위와 그 산하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 신고서를 제출했다.
공정위는 약관법을 적용해 국내 가맹점주를 보호해 줄 방법이 없다고 유권해석했다. 공정위는 “불공정 약관인지 여부를 심사하기 위해서는 국내 약관법이 적용 가능한 사안이어야 한다”며 “현재 국제사법 25조는 ‘계약’에서 준거법은 당사자가 묵시적 또는 명시적으로 지정한 법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써브웨이 가맹계약서는 명시적으로 네덜란드법을 준거법으로 지정하고 있다. 따라서 외국 사업자와 국내 사업자 간 계약에서 국내의 약관법을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답을 내놓았다.
그럼에도 써브웨이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자 급기야 김상조 당시 공정거래위원장이 나서 써브웨이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당시 김 위원장은 ‘공정위가 이 사건에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그렇게 하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열린 공정위 국감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는 김상조 당시 공정위원장. 박은숙 기자
실제 국제사법 제16조에 따르면 “법인 또는 단체는 그 설립의 준거법에 의한다. 다만 외국에서 설립된 법인 또는 단체가 대한민국에 주된 사무소가 있거나 주된 사업을 하는 경우에는 대한민국 법에 의한다”고 돼 있다. 또 가맹사업법 제14조는 “가맹본부는 가맹계약을 해지하려는 경우 가맹점사업자에 2개월 이상의 유예기간을 두고 계약의 위반 사실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이를 시정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한다는 사실을 서면으로 2회 이상 통지해야 한다”며 “이러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가맹계약 해지는 그 효력이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A 씨는 약관법 적용과 관련해 공정위 결과에 불복, 지난해 10월 재심사를 요청했다. 이어 지난 5월에는 가맹사업법을 적용해 달라며 공정위에 다시 신고서를 제출했다. A 씨 외에도 써브웨이의 부당함에 항의하며 공정위에 제소가 들어간 사건은 10건이 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공정위는 아직까지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 관계자는 “조사 중인 사건이라 구체적으로 할 말이 없다”며 “철저하게 검증하고 법리적 검토를 하고 있어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고 전했다.
가맹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한 변호사는 “국내법 적용이 불가능했다면 진작 심사 불개시 판정을 내리지 않았겠느냐”면서도 “공정위가 김상조 위원장 발언 이후에도 내놓은 몇 차례 결과를 보면 심사 전망이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공정위는 지난 5월 약관법 적용과 관련한 재심사 요청에 대해 ‘심사 불개시’ 결과를 내놓았다. 진정을 제기한 피해점주에게는 따로 결과 통보를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A 씨의 경우 지난 6월 말 뉴욕의 국제중재센터에서 분쟁중재 절차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7월 중 결과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국제중재센터가 써브웨이 본사 측의 손을 들어준다면, A 씨는 결론이 나온 시점에서 3개월 안에 점포 폐점을 해야 한다. 써브웨이 측은 여전히 한국지사가 아닌 연락사무소일 뿐이기 때문에 한국의 약관법이나 가맹사업법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인다.
앞의 변호사는 “현재 전국에 써브웨이 매장이 350개가 넘는다. 이들 매장에 대한 가맹계약 및 영업을 관리하고, 식자재 유통을 도맡아 하고 있음에도 한국지사가 아닌 연락사무소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공정위는 불공정거래에 대한 행정적 규제를 하는 기관으로서 가맹점주들의 권리 보호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써브웨이 공식 홈페이지에는 스스로 ‘지사’라고 안내하고 있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 써브웨이 측은 공정위 조사가 진행 중이라며 말을 아꼈다. 써브웨이 관계자는 “공정위가 요구한 자료제출명령과 현장조사에 모두 성실히 응했고, 공정위의 조사 결과를 차분히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가맹점주들은 지난 5월 써브웨이 가맹점주협의회를 발족했다. 현재 100명이 넘는 가맹점주들이 함께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써브웨이 관계자는 “가맹점주협의회와 가맹본부는 상생관계라 생각한다”며 “상생을 위해 가맹점주협의회 대표자 분들과 성실하게 대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