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특공대’ 해체…권창훈-정우영, 이재성-서영재 ‘한솥밥’으로 관심, 조현우 행보도 눈길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구자철과 지동원이 같은 유니폼을 입은 모습. 사진=FC 아우크스부르크 페이스북
[일요신문]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주말마다 해외 축구 리그에서 활약하는 국내 선수들을 지켜보는 것은 일상이 됐다. 박지성, 이영표, 차두리 등 숱한 스타들이 주말 저녁 팬들에게 즐거움을 줬다. 이후 구자철, 기성용, 손흥민, 이청용 등이 뒤를 이었다. 이처럼 선수들의 해외 이적은 뛰어난 기량이 전제 조건이다. 이들의 이동은 자연스레 대표팀 전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유독 선수들의 이동이 잦았던 이번 여름, 주요 선수들의 움직임을 살펴봤다.
#각자 길 걷게 된 구자철-지동원 콤비
2011년 아시안컵 활약에 힘입어 나란히 유럽 무대로 건너간 구자철과 지동원은 오랜 기간 한 유니폼을 입고 활약해 왔다. 독일 분데스리가 FC 아우크스부르크 소속으로 지난 2013년부터 수 년간 역사를 써내려 왔다. 국내에선 이들 각자의 성을 따 ‘지구 특공대’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그 사이 팀은 ‘만년 하부리그 팀’ 이미지를 벗겨내고 어엿한 분데스리가 중위권으로 자리를 잡았다.
아우크스부르크에서 가장 사랑받는 선수였던 두 선수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각자의 길을 걷게 됐다. 먼저 이별을 고한 쪽은 지동원이었다. 2018-2019 시즌을 마지막으로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던 그는 지난 5월 초 FSV 마인츠 05 이적을 발표했다. 임대 기간을 제외하면 6시즌 만에 소속팀이 바뀐 지동원이다. 그는 프리시즌 경기에서 골 소식을 전하며 기분 좋은 새 출발을 알리기도 했다. 다만 연습경기 도중 부상으로 쓰러지며 안타까움을 샀다.
함께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던 구자철도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구단 측은 팀 내 최고 대우와 함께 계약 연장을 원했지만 구자철 측에서 이를 사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구단들이 대거 시즌 대비 훈련에 돌입한 가운데 구자철의 행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고 있다. 아우크스부르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에 재계약의 가능성도 남아 있다.
기성용의 이적 여부 또한 이번 이적시장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였다. 지난 시즌을 앞두고 뉴캐슬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그는 2년 계약을 맺은 바 있다. 뉴캐슬 구단으로선 이번 여름이 적절한 이적료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현재 감독직이 공석이라는 점도 변수로 떠올랐다. 하지만 별다른 이적 루머조차 흘러나오지 않고 있다. 계약이 만료되는 내년 여름, 새 팀 찾기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권창훈의 입단으로 SC 프라이부르크는 두 명의 한국인 선수를 보유하게 됐다. 사진=SC 프라이부르크 페이스북
잉글랜드의 까다로운 취업비자 발급 요건에 국내 선수들의 도전 무대로 독일이 각광 받고 있다. 실제 지난 시즌 이재성과 이청용이 분데스리가2(2부리그)로 활약 무대를 옮겼고 황희찬도 1년 간 임대로 활약한 바 있다. 이외에도 어린 유망주들이 독일을 찾는 상황이 늘어나고 있다.
구자철과 지동원이 헤어졌지만 또 다른 분데스리가 팀에서 한국인 선수 2명이 함께 뛰는 상황이 새롭게 연출되기도 했다. 지난해 명문 바이에른 뮌헨에서 성인무대 첫 선을 보인 정우영과 프랑스 디종에서 뛰던 권창훈이 연이어 프라이부르크로 이적했다.
프라이부르크는 둘의 영입에 수 십억 원의 이적료를 쏟아 부었다. 그만큼 이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다. 더 많은 기회를 찾아 이동한 정우영, 더 큰 도전을 위해 활약무대를 옮긴 권창훈 모두에게 적절한 선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 시즌부터 독일 2부리그에서도 한 팀에서 두 명의 한국선수가 나란히 활약하게 됐다. 지난 2015년부터 독일 무대에서 경력을 이어오고 있는 서영재는 이재성이 활약 중인 홀슈타인 킬로 이적했다. 서영재 에이전트 측은 “지난 시즌 서영재가 킬을 상대로 한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펼쳐 눈도장을 받았다”고 전해 흥미를 끌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의 유산
2002년 이후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유럽 무대에 도전하고 그 곳에서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있었던 데에는 병역 혜택 또한 한 몫했다.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책임을 다해야 하는 병역 의무지만 때론 선수들이 해외 커리어를 이어 나가는데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장사’를 해야 하는 유럽 구단으로선 국가의 부름을 받아야 하는 한국 선수 영입이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김학범 감독이 이끈 대표팀은 극적인 과정 속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명의 선수들 모두 예술체육요원으로 편입되는 병역 혜택을 받게 됐다. 약 1년 8개월간의 복무에서 자유로워졌다.
이에 금메달 주역들의 해외진출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앞서 김민재, 나상호, 황인범 등이 각각 중국, 일본, 미국 무대로 떠났다. 이어 유럽 구단들이 본격적으로 전력보강에 나서는 여름 이적시장이 열리자 유럽행 소식도 따라 나왔다.
시작을 알린 이는 대회에서 날선 골감각을 자랑했던 황의조다. 그는 지난해를 자신의 커리어 최고의 해로 만들었다. 아시안게임에서의 활약뿐만 아니라 소속팀에서도 개인 역대 최다골(20골)을 기록했다. A 대표팀 주전 공격수로도 발탁되며 활약을 이어갔다.
지난해 아시안게임을 전후로 전성기를 구가하며 A대표팀에서도 활약중인 황의조. 사진=대한축구협회
공격수 황의조에 이어 최후방을 지켰던 골키퍼 조현우의 유럽행 이적설도 관심을 받고 있다. 실제 독일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와 강하게 연결됐다.
빠르게 진행된 황의조 사례와 달리 조현우는 이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적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보였지만 난관에 부딪혔다. 뒤셀도르프가 맨체스터 시티 출신 골키퍼를 임대로 영입했고 추가로 새로운 골키퍼 2명이 팀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조현우가 이적한다면 두번째 골키퍼 자리조차 보장을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적을 하더라도 유럽 하위 리그나 J리그 임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조현우와 구단이 엇박자를 내는 모양새다. 조현우는 계속해서 ‘도전’을 외치고 있는 반면 구단은 ‘이적 직후 재임대’에 대해 회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들의 결말에 많은 눈길이 쏠리고 있다.
#어린 유망주들의 도전
A 대표팀 지휘봉을 쥔 파울루 벤투 감독의 레이더망에 있는 대표급 선수들 외에도 어린 유망주들의 이동도 두드러졌다. U-20 월드컵에서 맹활약을 펼친 수비수 김현우는 ‘정규직’이 됐다. 임대생 신분으로 활약하던 크로아티아의 디나모 자그레브에서 정식 계약 제의를 받고 도장을 찍었다.
중국에서 열린 ‘판다컵’에서 우승 트로피 관련 문제로 도마에 올랐던 박규현은 고교생 신분으로 독일 베르더 브레멘으로 향했다. 고교 선배 김현우의 경우처럼 임대 신분으로 유럽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추후 완전 이적 옵션까지 계약서에 추가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아우크스부르크에 입단했던 유망주 공격수 천성훈은 구단 내 유소년팀에서 올 시즌을 앞두고 성인팀으로 이동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