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굴기’ 중국, ‘혼혈’ 예나리스·세테르 등 이어 굴라트·엘케손도 귀화 추진
마르셀로 리피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지난 1월 아시안컵 이후 지휘봉을 내려놨지만 4개월 만에 다시 돌아왔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일요신문] 축구 강국을 목표로하는 중국의 꿈은 언제쯤 이뤄질까. 최근 수년간 중국은 축구에 큰 관심을 기울여왔다. 정부가 나서서 축구 발전을 독려했고 재계의 큰 투자가 지속됐다. 이는 후진타오 주석 시절 중국 대외전략으로 천명된 ‘화평굴기’를 본떠 ‘축구굴기’라 불리기도 한다. 다양한 방안들이 추진됐지만 유독 남자 국가대표팀의 성과는 미미했다. 이에 또 다른 아이디어가 추진되고 있다. 이들의 선택은 기량이 뛰어난 외국인 선수의 ‘귀화’다.
#‘축구굴기’에도 좌절 이어진 중국 대표팀
지난 2015년 초 중국 정부는 ‘중국축구 개혁 총체 방안’이라는 이름으로 50개 개혁 조치를 발표했다. 이들의 목표는 뚜렷했다. 단기 목표는 중국축구협회 개혁 등을 통한 시스템 정돈이었다. 중기적으로는 중국 프로리그와 대표팀을 아시아 일류 수준으로 끌어올리기를 원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의 최종 목표는 대표팀의 월드컵, 올림픽 진출이었다. 하지만 수년이 지난 현재 중국 대표팀이 아시아 상위권으로 도약해 월드컵이나 올림픽에 진출하리라 보는 이는 많지 않다.
이 같은 발표가 있기 전부터 중국 슈퍼리그에는 막대한 자본이 투자되고 있었다. 2010년대 초반부터 중국 재벌들은 자신이 소유한 구단에 거액을 들여 축구 강국의 스타들을 영입했다.
‘스타 소집’ 열풍 초반에는 이름값만 높은 노장 선수들이 중국으로 몰렸다. 화제 속에 입단한 이들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모습을 운동장 위에서 보여주지 못했고, 중국 무대에서 착실히 적응해 활약하겠다는 의지도 크지 않았다. 구단들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모으는 데는 성공했지만 축구적인 발전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꾸준한 투자는 성과를 가져왔다. 전성기 나이에 있는 스타들도 중국행을 택했다.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와 같이 이름값에만 연연하지 않고 알짜배기 실력자들을 영입하는 팀도 있었다. 결국 광저우 헝다는 2013년과 2015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아시아 최강 자리에 올랐다. 아시아 내에서만큼은 슈퍼리그를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들이 주창한 ‘슈퍼리그의 아시아 일류화’는 어느 정도 이뤘지만 대표팀의 성장 여부에는 물음표가 달린다. 세계적으로 스포츠의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돈으로 우승을 살 수 있다’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아직 대표팀의 성적만큼은 이 같은 세태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자국 리그의 성장이 대표팀의 성장까지 보장해주지는 못했다.
#‘거액’으로 지도자 모셔온 중국 대표팀
선수를 돈으로 살 수 없는 대표팀 여건에 중국축구협회는 감독 선임에 공을 들였다. 세계적 명장 마르셀로 리피 감독을 2016년 10월 대표팀 감독 자리에 앉힌 것이다. 월드컵, 유럽과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등 수 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린 인물이 중국 사령탑 자리에 오른 소식은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다.
하지만 리피 체제에서도 중국 대표팀의 큰 변화는 없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했고 소규모 대회인 동아시안컵에선 한국, 일본, 북한을 상대로 1승도 거두지 못했다. 또 다른 시험 무대이자 리피의 고별 무대였던 2019 AFC 아시안컵에서는 8강에서 멈췄다.
세대교체 실패도 문제로 지적됐다. 아시안컵에 나섰던 중국 대표팀 면면을 살펴보면 우레이 등을 필두로 젊은 선수들이 합류하기도 했지만 중추적 역할은 여전히 정쯔(38세), 가오린(33세), 평샤오팅(33세), 하오준민(32세), 장린펑(30세) 등 1980년대에 태어난 선수들이 맡고 있었다.
아시안컵 8강을 마지막으로 리피는 지휘봉을 내려놨다. 한화 약 250억 원으로 알려진 거액의 연봉도 마다했다. 이후 중국축구협회는 그의 제자 파비오 칸나바로 감독에게 임시 지휘봉을 맡겼지만 칸나바로도 2경기에서 2연패를 기록하며 대표팀을 떠났다. 결국 약 4개월 만에 리피가 돌아오게 됐다. 더 높아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연봉과 함께였다.
아스널 유스 출신이자 잉글랜드 연령별 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렸던 니코 예나리스는 귀화 절차를 마치고 중국 슈퍼리그 베이징 궈안 소속으로 활약하고 있다. 지난 6월 A매치 기간에는 중국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뛴 최초의 귀화선수가 됐다. 연합뉴스
#‘리피 컴백’과 함께 추진된 귀화 정책
지난 6월 A 매치 기간 중국 대표팀이 달라진 것은 감독만이 아니었다. 중국 축구 역사상 최초로 귀화 선수가 합류해 경기를 소화했다. 주인공은 잉글랜드 명문 아스날 유스 출신으로 잘 알려진 니코 예나리스(중국 등록명 리커)다.
영국 런던 태생의 예나리스는 키프러스 출신 아버지와 중국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전력 향상을 위해 ‘귀화’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도 자문화 중심주의가 강한 중국은 ‘중국 혈통’이라는 마지막 자존심을 지킨 것이다.
이는 현재 필리핀 대표팀의 전력과 유사하다. 지난 2000년대 초반 우연한 계기로 유럽-필리핀 혼혈 유망주 필 영허즈번드를 발견한 필리핀축구협회는 그의 필리핀 대표 합류를 추진했고 큰 성과를 거뒀다. 성과에 고무된 이들은 세계 각지에 흩어진 혼혈 선수들을 모아 현재는 대표팀의 절반 이상이 혼혈 선수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귀화정책에 반발하는 내부 기류도 감지되고 있다. 실제로 중국 일부 언론들은 이전까지 중국 땅을 밟아본 적도 없는 선수들의 귀화에 반발하는 의견들을 전했다. 이에 중국축구협회는 귀화를 했거나 준비 중인 선수들을 대상으로 ‘애국심 강화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중국어와 중국 역사, 문화는 물론 공산당 이론까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스웨덴 출신의 욘 호우 세테르(중국명 후용용) 또한 예나리스와 함께 귀화 절차를 마무리했다. 세테르 또한 어머니가 중국인이다. 또한 에버튼 출신의 수비수 타이아스 브라우닝의 귀화도 진행 중이다. 이들 셋 모두 현재 슈퍼리그에서 베이징 궈안(예나리스, 세테르), 광저우 헝다(브라우닝) 소속으로 각각 활약하고 있다. 예나리스와 세테르는 귀화를 완료 했기에 외국인 쿼터 적용을 받지 않는 상황이다.
중국이 월드컵 본선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2002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사진은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브라질과 맞대결을 펼친 중국. 연합뉴스
중국의 대표선수 귀화정책은 혼혈선수를 넘어 그 대상을 확장하고 있다. 중국 슈퍼리그 소속으로 오랜 기간 좋은 활약을 보인 선수들을 대상으로도 진행되고 있다.
지난 5월 중국 스포츠 매체 ‘티탄 스포츠’는 브라질 출신 공격수 엘케손과 히카르두 굴라트의 귀화 결심 소식을 전했다. 이들은 “마르셀로 리피 감독 요구에 따라 굴라트도 귀화에 동의했다”면서 “절차가 순조롭다면 엘케손은 오는 9월, 굴라트는 2020년부터 중국 대표팀에 합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엘케손과 굴라트는 각각 지난 2013년과 2015년부터 광저우 헝다에서 중국 생활을 시작해 슈퍼리그를 아시아에서 경쟁력있는 리그로 성장 시키는데 일조했다. 이들은 향후 중국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이들의 장기적 목표인 ‘월드컵 본선 진출’에도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인다.
엘케손과 굴라트 외에 추가적인 귀화 선수가 있을 것이라는 소식도 흘러나오고 있다. 리피 감독은 지난 20일 고향 이탈리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중국 선수만으로는 부족하다. 3~4명의 외국인을 데려오는데 경제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중국의 월드컵 본선 진출 경험은 지난 ‘2002 한일 월드컵’ 단 1회 뿐이다. 이마저도 개최국 한국과 일본이 지역 예선에 불참했고 조편성에서 행운이 따르면서 본선에 설 수 있었다.
이후 번번이 아시아 지역 예선의 벽에 부딪혔던 중국이다. 이들은 당초 월드컵 본선이라는 지상과제를 두고 유소년 시스템 확충 등 장기적 관점에서 계획을 진행 중이었다. 앞서 김환 jtbc 해설위원은 “중국의 유소년축구 집중 투자가 시작된 지 5~6년이 흘렀다. 분명 앞으로는 좋은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들은 기다림보다는 빠른 길을 선택했다. 이들의 선택이 다가오는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에서 어떤 결과를 낳을지 지켜볼 일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