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타, 한진 편에 설지 경영권 참여에 나설지 예측불허…KCGI, 투자자 확보 어려움 겪으며 불리한 상황
미국 델타항공이 최근 지분 추가 매입에 돌입한 데 이어 KCGI도 새로운 투자자를 찾아 나서면서 한진칼 경영권 분쟁이 2라운드에 돌입했다. 연합뉴스
지난 23일 델타항공이 골드만삭스를 통해 한진칼 주식 4만여 주(지분 0.07%)를 추가 매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한진칼 지분 4.3%를 확보했다고 밝히면서 향후 10%까지 늘리겠다고 공언한 데 이어 실제 행동에 나선 것. 현재 한진 일가의 한진칼 지분율은 28.93%, KCGI 보유 지분율은 15.98%다. ‘한진 백기사’로 알려진 델타항공이 10%까지 지분을 늘리고 한진 편에 서면, 한진 오너 일가의 경영권 사수가 용이해진다.
KCGI도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KCGI는 미래에셋대우에서 한진칼 지분을 담보로 대출한 200억 원을 유화증권과 저축은행 등에서 조달해 지난 22일 상환했다. KCGI는 앞서 지난 3월 미래에셋대우에서 빌린 200억 원도 KTB투자증권과 더케이저축은행에서 자금을 조달해 갚았다. 아울러 최근 투자설명회를 진행하는 등 국내외 투자자들을 모집해 자금 조달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KCGI가 내년 한진칼 주총에서 최소 이사 1명 이상을 선임해 경영권에 개입할 것을 목표로 꾸준히 투자자 모집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 KCGI가 불리한 상황에 놓였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무엇보다 대출금 상환 압박이 가중된다는 이유에서다. KCGI는 이미 확보한 한진칼 주식을 담보로 대출받아 다시 한진칼 주식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지분율을 늘려왔다. 당장 급한 불은 껐지만, KTB증권과 KB증권, 더케이저축은행에서 빌린 담보 대출이 오는 9월과 11월, 내년 6월 각각 만기를 맞이한다. 대출 연장이 안 되면 새 투자자를 찾아야 한다.
델타항공이 한진 우호지분을 추가로 늘리면 한진칼 주가가 떨어져 KCGI 상환 압박은 더 커진다. 업계에서는 델타가 지금은 중립적 태도를 취하지만 경영권 분쟁에서 결정적 순간엔 한진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고 있다. 델타항공과 대한항공은 그간 글로벌 항공사 동맹체를 결성하는가 하면, 일부 노선을 함께 운영하는 조인트벤처를 맺는 등 우호관계를 유지해왔다. 지난달 델타가 지분을 확보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한진칼 주가가 급락한 것도 이런 이유다. 따라서 델타가 보유 지분을 늘릴 경우, KCGI 보유 지분 가치가 하락하면서 이를 담보로 한 지분의 가치도 떨어져 향후 만기를 맞이하는 자금에 대한 상환 압박이 커질 수밖에 없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 박주근 대표는 “지분 담보 대출은 보통 지분가의 절반을 담보로 인정해 담보만큼의 금액을 대출해준다“며 ”델타항공의 지분 확대로 경영권 분쟁 이슈가 약화하면 한진칼 주가는 떨어질 것이고, 담보로 한 지분 가치가 동반 하락하면서 대출 상환 압박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KCGI의 새로운 투자자 모집도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한진그룹이 회사채 발행 업무 등과 관련해 국내 주요 증권사들을 인수단에 포함시키는 등 증권업계 영향력이 상당하다 보니 국내 증권업계 대부분 KCGI에 투자를 꺼리는 실정이다. 외국인 투자자를 찾아 나선다고 해도 한진칼에 대한 투자 매력도가 떨어지는 상황이라 쉽지 않다. 델타 측이 우호지분을 늘리면서 한진가 주가가 떨어지는 데다 주가 상승 요인 중 하나인 한진그룹 내부의 경영권 불확실성도 일단락된 분위기다.
박주근 대표는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기업 내 경영권 분쟁이 가장 큰 호재일 수 있는데 지금으로서는 남매간 갈등 봉합으로 불확실성이 사라져 투자 매력도가 떨어졌다”며 “대출 상환 금액은 큰데 투자자를 구하기 쉽지 않은 KCGI 입장에선 한진칼 주가 하락을 막기 위해서라도 경영권 분쟁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투자자를 모집해 한진칼 지분을 늘리겠다는 건 방어논리일 뿐 실은 보유 주가 하락을 막고자 경영권 분쟁을 이어나가는 척을 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델타항공이 한진칼 지분을 추가 매입하고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승인 절차를 밟고 있다. 이를 두고 델타항공이 한진 ‘백기사’로 역할을 하기 보단 한진과 KCGI 사이에서 ‘캐스팅보트’를 쥘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이 나오면서 한진칼 경영권 분쟁의 양상이 한층 복잡해지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에서는 델타항공이 실은 한진칼 ‘백기사’가 아니라 경영권 확보에 나선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델타항공은 KCGI가 한진칼 투자 의도를 묻는 질문에 “사업상 파트너와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진칼과 어떠한 합의도 없었다”며 미지근한 태도를 보였다. 이 때문에 델타항공이 대한항공 내 영향력을 높이고자 캐스팅보트로 나서거나 KCGI 편에 서는 등 한진 경영권을 위협할 수도 있을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백기사가 되려면 지분 5%만 확보해도 충분한데, 10%까지 늘리려는 모습을 볼 때 단순 재무적 투자자기보다는 아시아에 진출하려는 계기로 삼는 등 전략적 투자자로서 경영권에 참여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자사 이익에 따라 KCGI과 한진그룹 가운데 더 좋은 조건을 내건 쪽과 손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한진그룹 입장에선 셈법이 복잡해진다.
변수는 또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튼실한 대기업에 매각될 경우 가격 경쟁에 나서면서 대한항공 실적에 영향을 주거나 한진가 3남매 간 갈등이 다시 표출되는 등 불안정한 경영 상황을 보이면 투자자들이 등을 돌릴 수 있다는 것. 업계 한 관계자는 “실적이 악화되고 국내 여론이 나빠지면 내년 주총에서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행사하거나 델타와 소액주주들이 KCGI 측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