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스(주)는 서울대 학생 벤처동아리 회사로 지난 99년에 설립된 벤처기업. 당시 붐을 일으키던 PC방 네트워크라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각광받은 이 회사는 지난 2000년 한때 장외시장에서 주가가 수십만원을 기록했다.
이를 반영하듯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를 비롯한 정치인들과 이찬진 한글과컴퓨터 창업자 등 정·재계 거물들까지 이 회사에 투자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이 회사는 지난해 4월 주가조작사건에 휘말리면서 하루 아침에 침몰했다.
당시 주식로비 사건이던 패스21 사건과 함께 이 회사는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만 것. 더욱이 수사과정에 당시 공적자금을 지원 받았던 대한투신이 이 회사의 주식을 99억9천만원에 매입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감사원까지 사건 수사를 촉구하고 나서는 등 이 사건은 일파만파로 번졌다.
▲ 최봉진 사장 | ||
‘아이패스(주)’는 당시 벤처붐을 타고 수차례 증자를 단행해 자본금이 설립 초기 5천만원에서 불과 5개월 만인 99년 12월 15억원으로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아이패스 최봉진 사장(당시 29세)은 투자유치 목적으로 보유주식을 팔기로 하고, 브로커 김아무개, 이아무개 등 2명을 통해 3만 주를 99억9천만원(주당 33만3천원)을 받고 지난 2000년 1월5일 대한투신에 넘겼다.
문제는 여기서 터졌다. 대한투신에 주식을 팔고 받기로 한 99억원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 것. 브로커로 나섰던 김, 이씨 등이 중간에서 가로챘다는 게 최봉진 사장의 주장. 이렇게 되자 최 사장측은 김, 이씨 등을 사기죄로 고소했다. 그러나 최씨의 이 고소 사건은 엉뚱하게도 대한투신이 최씨를 상대로 ‘허위문서 작성’ 혐의로 고소하면서 ‘주가조작사건’으로 변하고 말았다.
결국 99억9천만원을 찾기 위해 브로커를 고발했던 최 사장은 돈을 손에 쥐기는커녕 거꾸로 주가조작 사건으로 구속됐고, 이 사건은 그 선에서 마무리됐다.
이 사건의 의문 중 하나는 대한투신이 어떻게 이 회사에 99억9천만원이라는 거액을 선뜻 투자했을까 하는 점. 당시 벤처 열풍에 비춰 그럴 수도 있다고는 하지만, 대한투신이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회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에 대해 당시 투자를 결정한 대한투신은 “아이패스측이 제시한 사업계획서의 매출 및 순익을 근거로 투자했다”고 주장했다. 아이패스가 작성한 사업계획서를 보면 2000년 매출 4백억원(순익 40억원), 2001년 매출 1천2백억원(순익 1백20억원) 등 장밋빛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계획서가 ‘전망’ 및 ‘예상치’라고 명시된 점. 결국 대한투신은 설립 5개월된 벤처기업이 작성한 ‘예상치’를 근거로 선뜻 99억9천만원의 공적자금을 투자했다는 얘기인 셈이다.
당시 투자를 총괄했던 대한투신 이종성 팀장은 “예상실적을 보고 투자하는 것이 ‘관례’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이패스 경영인들이 의도적으로 매출 예상치를 뻥튀기해 오히려 대한투신에 막대한 손해를 입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씨의 변호를 맡았던 김동성 변호사는 “당시 인터넷 PC방은 대호황을 누리고 있었고, 이 회사는 독자적인 소프트웨어 개발 능력까지 갖추고 있어 붐이 지속되리라는 전제하에 기재를 했기 때문에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특히 김 변호사는 “그 서류는 말 그대로 ‘계획서’일 뿐이었으며, 대한투신 고유투자팀이 투자에 앞서 작성한 보고서에도 ‘전망치’라는 사실이 분명히 명시돼 있다”고 말했다.
결국 벤처기업이 작성한 ‘사업계획서’를 근거로 국내 최대 투자기관인 대한투신이 공적자금 99억9천만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했다는 얘기이다.
한편 아이패스 최봉진 당시 사장에게 적용된 죄명은 증권거래법 제207조의 2(2호)와 제188조의 4(4호)에 명시된 ‘유가증권 매매 등과 관련해 중요한 사항의 허위표시로 금전상의 이익을 얻으려는 행위’. 최 사장은 이 법률 조항으로 구속된 첫 케이스였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이 법조항은 사기적 부정거래에 의해 다수가 피해 받는 것을 방지할 목적임에도 비상장회사에 적용될 수 있는가”라며 의문을 표했다.
그러나 검찰은 “최씨가 자신의 주식을 매도할 목적이 분명했던 데다, 매수자에게 제시한 사업계획서 자체가 부풀려 있어 법 적용에 무리는 없었다”고 단정했다.
이 사건의 가장 큰 의문은 대한투신에서 받은 99억9천만원이 어디로 갔느냐는 점. 최 사장측은 이 돈은 자신과 상관이 없으며, 브로커 역할을 했던 김, 이씨가 모두 챙겨갔다고 주장했다. 당시 대투의 자료에 김씨(국민은행 083-21-XXXX)와 이씨(외환은행 101-18-XXXX)의 은행 계좌번호가 적혀 있어 최 사장측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브로커 역할을 했던 김, 이씨 등은 유력 인사의 자제로 알려져 있으며, 당초 사기죄로 고소된 이들 중 한 사람은 현재 무죄로 풀려난 상황이다.
최 사장측은 “주식 매각 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김, 이씨 등은 아이패스 주주명부 등 공문서를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허위로 작성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서울대생 벤처기업인과 공적자금 99억9천만원을 이 회사에 투자한 대한투신, 브로커 역할을 했던 유력 인사 자제들이 연루돼 파문을 일으킨 이 사건은 여전히 꼬리에 꼬리를 문 의혹만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