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살인죄로 27년 복역 후 극도의 사회 부적응…부친묘 벌초 일당 주고 부른 여성 살해 뒤 자살 추정
사건 당일 비당리엔 비가 내렸다. 하루 전 고향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노래방까지 다녀왔던 A 씨는 아침에 일어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산소에 벌초를 하고 오겠다고 했다. 아버지에게 올릴 소주 한 병과 과일 조금, 그리고 풀을 벨 때 쓸 낫을 챙겼다. A 씨의 준비물은 몇 가지 더 있었다. 유리 테이프와 5m가량의 콘센트 연결선이었다. A 씨는 이미 머릿속에 범행을 그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즈베키스탄 여성(35)은 손과 발이 유리 테이프로 묶인 채 나무에 결박된 상태였고, 전자발찌를 찬 남성(54)은 나무에 콘센트 연결선을 걸어 결박한 뒤 목을 맨 채 발견됐다. 사진 오른쪽 나무엔 잘린 콘센트 연결선이 남아 있다. 묶인 손으로 저항하지 못하게 왼쪽 나무에 결박한 것으로 추정된다.
야산엔 무덤이 많았다. 동네 옛 공동묘지였다. 남자의 아버지 산소는 야산 초입에서 15분 정도 산을 타면 나왔다. 공동묘지에서 가장 외진 곳이었다. B 씨는 A 씨를 도와 벌초를 끝냈다. 3평(9.9m²) 남짓한 산소를 다듬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A 씨는 술과 과일을 차리고 아버지에게 절을 하는 등의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돌변해 범행을 저질렀다. 경찰은 A 씨가 B 씨를 흉기로 위협하고 수풀로 들어가 손발을 테이프로 묶어 나무에 결박한 뒤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A 씨는 흉기로 B 씨를 수차례 찌르고 벴다. 왼쪽 심장 부근 상처가 가장 치명적이었다. 부검 결과 B 씨의 사망 원인은 과다출혈로 밝혀졌다. A 씨는 그 후 나무를 올라 챙겨온 콘센트 연결선을 결박한 뒤 그 줄에 스스로 목을 매 숨을 끊었다. A 씨가 B 씨를 성폭행을 했거나 시도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사건 발생 추정 시간은 26일 오전 9시에서 12시 사이다.
B 씨를 살해한 동기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A 씨는 삶을 비관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 A 씨는 살인범이었다. 29년 전 충남 서산에서 노래방 도우미와 2차 가는 것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노래방 주인을 살해한 뒤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2년 전 가석방으로 풀려나면서 27년의 징역살이를 끝냈지만 보호관찰 대상자로 분류돼 전자발찌를 차고 다녔다.
A 씨 아버지의 산소. 풀이 무성한 주변 산소와 비교해 정돈된 상태였다. 산소 가장자리엔 베어져 버려진 풀들이 뭉텅이로 놓여 있었다. 사진=박현광 기자
반평생을 교도소에서 보내고 나온 A 씨는 녹록지 않은 세상의 벽을 마주했다. A 씨는 3형제 중 둘째였는데 형은 간암 말기로 시한부 판정을 받아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동생은 전과 10범으로 안양교도소에 수감돼 있었는데 병에 걸려 위중한 상태였다. 형수는 평생 시동생에게 시달리다가 10년 전 큰딸을 잃으면서 정신질환으로 병세가 깊었다.
A 씨도 처음엔 새 인생을 살고자 했다. 주거지는 충북 청주였지만 고향은 충남 부여였던 A 씨는 출소 후 고향 친한 형님을 찾아와 열심히 살겠다고 뭐든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고향 친구들과 만나 술자리를 가지며 다짐을 전하기도 했다. 교도소에서 딴 기술 자격증 8개를 바탕으로 공사장에서 막일도 했다. 농사꾼 아들로 자랐던 A 씨는 어려서부터 농사일을 했던 덕에 일머리도 좋았다고 한다. 천주교로 전향한 A 씨는 성당을 다니면서 종교에 의지하기도 했다.
A 씨가 목을 맨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에서 손닿을 곳엔 소주병 하나가 놓여 있었다. 박현광 기자
돈이 모이진 않았다. A 씨는 교도소에 있을 때 노역한 댓가로 100만 원가량을 들고 나왔지만 형 병원비에 모두 썼다. 버는 족족 형 병원비로 들어갔다. 동생도 위중하다보니 교도소에서 종종 호출이 왔다. A 씨 입장에선 동생을 보러 오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A 씨는 명함을 제작하는 인쇄사업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그 뒤 돈이 없다는 말을 자주 하고 다녔고, 사건 두 달 전부터는 가족 가운데 유일하게 연락하고 지내던 형수와도 연락이 끊겼다. 딱하게 여긴 고향 친구가 술자리에서 힘내라면서 A 씨에게 현금 20만 원을 쥐어주기도 했다.
A 씨를 잘 아는 마을 주민은 “A 씨가 등본 상으론 54세인데 실제론 토끼띠 57세다. 반평생을 징역 살다 나와서 새 삶을 찾아서 노력했는데 그게 안 되고 희망이 없다 보니까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아니겠나 싶다”며 “갈 거면 혼자 갈 것이지 왜 죄 없는 사람에게 몹쓸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B 씨는 우즈베키스탄에서 돈을 벌기 위해 1년여 전 한국에 왔다. 가족관계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한국에선 우즈베키스탄 동료들과 함께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마을 주민 중 한 명은 “사람들이 다들 말은 안하지만 이 사건 때문에 마을이 흉흉하다”며 “가는 길에 누굴 데려가려는 억하심정이었는지 타지에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불쌍할 뿐”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아직 살해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다.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 교수는 “출소 후 극도의 부적응 상태에서 살아갈 희망을 갖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혼자 죽기엔 억울했고, 화풀이 대상이 필요했을 것이다. 자신을 무시한 1차적 대상이 여성이었던 것으로 미뤄보아 가장 손쉬운, 가장 취약한 외국인 노동자, 특히 여성을 대상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높다. 전형적인 여성혐오 범죄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현광 기자 mu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