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눈과 귀가 온통 SK(주)에 쏠리고 있다. SK글로벌 분식회계 파문으로 흔들리고 있는 SK그룹의 핵 SK(주)가 자칫하면 ‘남’의 손에 넘어갈지도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기 때문.
SK(주)의 경우 SK그룹 주요 계열사의 대주주로 사실상의 그룹지주회사. SK(주)는 SK텔레콤(20.85%), SK글로벌(37.86%), SK해운(35.47%), SK엔론(50%) 등 그룹 주요 계열사의 실질적 대주주다. 때문에 이 회사의 소유권이 ‘남’의 손에 넘어간다면 국내 재계 랭킹 3위의 재벌이 M&A당하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특히 이 같은 최악의 상황이 닥치면 SK그룹보다 재정구조가 튼튼치 않은 다른 재벌들 또한 M&A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재계는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이 펀드가 SK(주)의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3월26일부터. 이날 한꺼번에 전체 지분의 2.36%에 달하는 3백만 주를 매입한 크레스트는 지난 4월3일까지 7일 동안 연일 1백만 주 이상의 주식을 대량 매집, 단숨에 지분을 10%대까지 끌어올렸다.
4월14일 현재 이 펀드가 확보한 지분은 14.99%. 이는 SK그룹 계열사 및 오너가 가지고 있는 우호지분이 32%라는 점에서 위협적인 부분이 아닐 수 없다.
SK(주)의 그룹 우호지분은 계열사별로 SKC&C 8.63%, SK케미칼 2.26%, SK건설 2.37%, SK글로벌 해외파킹 지분 8%, 그리고 SK(주)의 자사주 10.41% 등. 이중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고 SKC&C의 지분 중에서도 약 6%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어 실제로 SK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부분은 14%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크레스트 마음먹기에 따라 SK(주)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이 가능하다는 게 증권가의 진단.
일단 크레스트측은 공시를 통해 주식 매집 이유를 ‘수익창출’이라고 밝혔다. 적대적 M&A가 아니라 시세차익을 위해 투자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재계와 금융가의 시각은 다르다. 이 회사가 SK(주)의 주식을 사들이는데 소요된 자금은 대략 1천6백억원대. 단순 투자를 위해 이처럼 엄청난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는 분석이다.
크레스트 관계자가 장하성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운영위원장(고려대 교수)을 극비리에 만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M&A에 대한 의구심은 증폭됐다. 장 교수는 면담 내용에 대해 “크레스트 펀드의 의도에 대해 들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크레스트측이 “SK텔레콤의 경영에 관심이 있다”는 말을 흘리고 있어 SKT 경영 접수를 위해 SKT 지분 28%를 가진 대주주인 SK(주)를 간접적으로 접수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또 일각에선 소버린자산운용이 원유회사와 관련돼 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와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단순히 주식 매집으로 인한 시세차익이라기보다는 국내 정유시장에서 지배력이 큰 SK의 경영권을 확보, 안정적인 석유 판매망을 만들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해석이다.
논란이 커지자 지난 14일 소버린은 공식입장을 표명했다.
이들은 ‘SK 투자에 대한 소버린의 입장’이라는 문건을 통해 자신들이 “SK(주)의 개혁을 추구”하며 “장기 투자”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최근 SK글로벌 사태와 방만한 투자로 인해 SK(주)가 할인된 상태에서 거래되고 있는 저평가 기업”이라고 밝힌 부분. 이들은 “SK를 한국 기업 지배구조의 모델기업으로 변모시킬 수 있도록 SK 경영진과 건설적으로 작업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재계에선 이를 결국 최태원 회장이 SK그룹을 이끄는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는 SK의 지주회사 기능과 최 회장의 인터넷 분야 투자 등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미로 풀이하고 있다. 이는 향후 소버린과 SK의 관계가 순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SK(주)는 아직 말을 아끼고 있다. 다만 ‘적대적인 M&A는 아니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증시에선 크레스트가 ‘시세차익을 노리지 않은 우호적인 세력’이라면 SK그룹측 모르게 주식을 매집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상식이라는 반응이다.
또 SK가 이들과 우호적인 입장이라고 강조한 것을 보면 SK가 시세차익 말고 다른 것을 원하는 이들의 요구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취할 것임을 약속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풀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