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매운동에 큰 영향 없고 오히려 ‘금융 보복’ 가능성…SBI 측 “국내 자금 회수 가능성 제로”
국내 저축은행 업계 1위로는 단연 SBI저축은행이 꼽힌다. 지난해 말 기준 SBI저축은행의 자산총액은 7조 5101억 원으로 2위인 OK저축은행(5조 3622억 원)과 차이가 꽤 나는 편이다. 지난해 영업이익도 SBI저축은행은 1385억 원을 거둬 OK저축은행(1150억 원)보다 높았다.
서울에 위치한 한 SBI저축은행 지점. 사진=박정훈 기자
SBI저축은행의 역사는 1970년 설립된 신삼무진주식회사에서 시작한다. 신삼무진주식회사는 설립 후 몇 차례 사명을 변경했고, 2000년 스위스의 머서(Mercer)사가 지분을 투자하면서 현대스위스상호저축은행이 됐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이끄는 현대와는 관계가 없는 회사지만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 범현대 계열사라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이에 2011년, 범현대 계열사들은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을 상대로 상호에 ‘현대’를 쓰지 말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2013년 5월, 법원은 범현대 계열사들의 손을 들어줘 범현대그룹만 ‘현대’라는 상표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보다 앞선 2013년 2월, 금융위기 여파로 어려움을 겪었던 SBI저축은행은 2375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 당시 3대주주였던 일본 SBI그룹이 유상증자에 참여하면서 최대주주와 경영권 모두 SBI 측에 넘어갔다. 2013년 9월, 사명도 SBI저축은행으로 변경됐다.
현재 SBI저축은행은 SBI그룹이 지분 100%를 가진 일본 회사다. SBI저축은행은 일본 제품 리스트를 공유하는 웹사이트 ‘노노재팬’에도 소개된 만큼 대부분 한국인들도 SBI저축은행이 일본계 회사임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으로 인한 타격은 크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권 관계자는 “신규 고객이 줄어들 수는 있겠지만 기존 고객이 이탈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며 “국내 소비자들은 주거래은행을 거의 변경하지 않는 경향이 크고, 적금 등 상품에 투자하고 있는 경우에는 쉽게 바꿀 수도 없다”고 전했다.
SBI저축은행 관계자도 “현재까지는 일본 불매운동과 관련해 영업적으로 영향은 없는 상태”라며 “최근 사태가 국가적으로 예민한 건 사실이지만 기업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기에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SBI저축은행이 한국에 ‘금융 보복’을 가할 수 있다는 분석을 제기한다. 사진=박정훈 기자
오히려 일각에서는 SBI저축은행이 한국에 ‘금융 보복’을 가할 수 있다는 분석을 제기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일본 금융자금의 회수 가능성 및 파급 영향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한국 내 영업 중인 일본계 저축은행 4곳(SBI저축은행, JT친애저축은행, OSB저축은행, JT저축은행)의 국내 자산규모는 13조 3000억 원으로 저축은행 업계에서 19%를 차지한다. 또 금융감독원(금감원)이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과 김종훈 민중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저축은행 업계에서 일본계 여신은 10조 7347억 원에 달한다. 이들이 한국에서 금융 자금 회수에 나서면 당장 국내 서민 금융에 피해가 갈 수 있다.
금감원은 지난 7월 29일 보도자료를 통해 “일본계 저축은행 및 대부업계는 영업자금의 대부분을 국내에서 조달하고 있고, 일본 자금의 직접 차입규모가 크지 않은 점을 감안할 때 경제보복에 따른 급격한 영업축소 가능성은 제한적인 것으로 파악된다”며 “일본계 저축은행 및 대부업체가 대출을 중단하거나 회수하더라도 국내 저축은행과 대부업체로 충분히 대체가능하다는 것이 업계의 일반적인 평가”라고 전했다.
하지만 서민 입장에서 일본계 저축은행이 당장 자금을 회수하게 되면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금감원은 자금 회수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내다봤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세우지 못하고 있다. 금감원의 한 직원은 “얼마 전 발표한 보도자료 이상의 대책은 현재로선 없는 것으로 안다”며 “다만 최근 저축은행권 동향에 대해 계속 모니터링하고는 있다”고 귀띔했다.
다행히 SBI저축은행 측은 자금 회수 가능성을 일축해 소비자 입장에서는 한시름 놓게 됐다. SBI저축은행 관계자는 “일본 기업이 인수만 했고 일본에서 자금이 유입된 적이 없다”며 “경영은 한국인 임직원들이 결정하고 운영하며 일본에서 경영에 간섭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자금을 회수할 가능성은 제로다”라고 전했다.
SBI저축은행은 최근 몇 년간 사업 확장에 공을 들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례로 올해 초, SBI그룹은 계열사 SBI인베스트먼트가 관리하는 ‘SBI AI&Blockchain Fund’를 통해 인터넷전문은행에 진출을 시도했다. SBI는 키움증권, KEB하나은행 등과 컨소시엄을 맺었지만 금융당국 심사에서 떨어져 훗날을 기약하게 됐다.
지난 6월에는 모바일플랫폼 ‘사이다뱅크’를 출시했다. 신한은행의 ‘쏠(SOL)’이나 KB국민은행의 ‘리브(Liiv)’처럼 국내 주요 시중은행들이 모바일 뱅킹에 뛰어든 가운데 제2금융권인 SBI저축은행도 경쟁에 참여한 것이다. 따라서 SBI저축은행의 이미지가 하락하면 당장 영업에 큰 타격은 없더라도 각종 신사업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거나 소비자들의 낮은 참여로 이어질 수 있다.
SBI저축은행 관계자는 “고용 창출, 사회 공헌, 금융산업 발전을 위한 투자 등 회사가 해야 할 기본적인 활동들은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며 “영업 측면에서는 예·적금 금리를 높게 한다거나 대출 금리를 낮게 하려고 하지만 일본계 회사라서 그런 게 아니라 사업상 필요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SBI저축은행은 1위 업체이기에 (금리 조절은) 1위 기업이 선도하는 개념으로 보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