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일본 수출 우대국에서 제외” 반격 임박...우리 기업 피해 부메랑, 일본 역공 우려도
정부는 일본을 전략물자 포괄수출허가 대상국에서 제외할 계획이다. 산업통상자원부 등 복수의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산업부는 이르면 이번주 ‘전략물자수출입 고시’를 개정하는 등 관련 조치에 나선다. 지난 2일 일본에 ‘수출 우대국 제외 방침’을 통보하며 맞대응을 예고한 이후 관계부처와 협의하고 업계 의견을 수렴하는 등 작업 속도를 높여왔다.
지난 2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일본 정부가 이날 각의(국무회의)에서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한 것과 관련한 뉴스를 보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현행 전략물자수출입 고시를 보면, 정부는 수출 최종목적지를 기준으로 ‘가 지역’과 ‘나 지역’으로 구분해 운영 중이다. ‘가 지역’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처럼 수출심사 간소화 등 우대를 받고 있다. 현재 일본과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4대 국제수출통제체제에 모두 가입한 29개국이 편성돼 있다.
‘가’ 지역 외는 모두 ‘나’ 지역으로 분류된다. ‘나 지역’ 국가들은 정부로부터 건건이 개별허가를 받아야한다. 계약서·서약서 등 제출 서류가 추가로 늘어나고 처리기한도 길어진다. 비전략물자여도 무기 제작·개발 전용 우려가 있는 경우 적용되는 ‘캐치올’(Catch-all·상황허가) 규제도 더 엄격하다. 전용 의도가 ‘의심’만 돼도 상황 허가를 신청해야 한다.
# “이제는 행동으로” 맞대응 카드 꺼내든 정부
산업부 등에 따르면, 현행 전략물자수출입고시 10조를 개정을 통해 ‘다 지역’을 신설해 일본을 포함시키는 방안이 검토 중이다. 최소한 ‘나’ 지역과 비슷하거나 보다 엄격하게 관리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업계에선 수출절차가 까다로워지는 것은 물론 수출 심사 기한도 최대 90일까지 늘어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전략물제 수출 관리와 함께 비전략물자 수출통제인 ‘캐치올 허가(개별허가)’ 활용도 검토 중이다. 이 경우 전략물자보다 정부 재량으로 수출을 제한할 수 있는 품목과 범위가 더 늘어난다. 지난 7월 초 일본이 1차 조치에서 반도체와 관련한 3개 품목에 수출을 제한한 것처럼 우리나라도 일본의 특정 품목을 겨냥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일본 정부가 한국을 상대로 한 수출 제한 조치를 똑같이 되돌려주는 셈이다. 다만 한 정부 관계자는 “일본이 통제할 수 있는 품목과 단순 비교하면 우리나라가 통제하는 품목 수가 더 적을 수 있다”면서도 “다만 전략물자 전체에 대해 제한 조치를 하기보다는 일본이 가장 많이 수입하는 품목 위주로 관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귀띔했다.
전략물자관리원과 한국무역협회 통계 등을 종합해보면, 우리나라가 일본에 가장 많이 수출하고 있는 품목은 △석유제품 △석유화학 △철강 등이다. 이 가운데 압도적인 양을 수입하는 품목은 기타 경유(99%), 철강 제품(90%), 기타 등유(87%) 등이다. 기타 경유는 일본이 보일러나 각종 디젤엔진 연료로 쓰고, 등유는 의료용품이나 살충제를 만드는 데 쓰고 있다. 정밀화학제품과 의료제품 등에 쓰이는 일부 화학 품목도 한국에서 90% 가량 사들이고 있다.
만약 정부가 이 품목들에 대해 수출 관리를 엄격히 하면 일본 기업들의 생산라인에 타격은 불가피하다. 다만 문제는 일본이 받는 타격이 단기에 끝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앞서의 품목들 가운데 의존도가 80%가 넘는 품목은 총 10개 남짓이다. 석유와 철강 등은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품목이 아니라서 한국이 수출을 제한해도 일본은 대체품을 어디서든,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동남아시아와 중국 등이 이미 일본에 이 품목을 상당량 수출하고 있다. 일부 화학품목의 경우 일본 제품 경쟁력이 높다. 현재 우리나라가 추진 중인 ‘소재 국산화’등 별도 조치가 없어도 자체 수급이 가능하다.
이 경우 일본에 대한 실질적인 타격은 적고 반대로 그동안 일본과 거래해오던 우리나라 기업들은 거래처만 잃는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보면 우리나라 경제에 독이되는 조치가 되는 셈이다. 정부가 그동안 업계 의견을 모아온 것도 이 부분을 보완하기 위한 측면이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일 일본 정부의 화이트국가 한국 배제 조치에 따른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우리 정부도 일본에 수출 제한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임준선 기자
일각에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을 반격 무기로 쓰자는 주장은 더욱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이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지만, 일본으로 향하는 물량은 많지 않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경우 올해 상반기 일본에 대한 수출 비중은 각각 전체의 1.03%와 0.64%에 그쳤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일본 전자업체들은 생산라인을 대부분 해외로 이전해 수출 물량이 적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설비투자와 연구개발 등으로 기술 격차를 벌리고 있어 일본이 한국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 적지 않지만, 이 경우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며 “정부도 애초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맞대응 카드로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 일본 역공 피하려면 명백한 근거와 설득력 있어야
일본에 대한 수출 제한 조치를 하기 전 넘어야할 산도 있다. 조치 근거와 논리가 분명하지 않으면 오히려 일본에 역공을 당할 수 있어서다. 우리 정부도 일본이 당초 수출 제한 조치 이유를 위안부 합의 백지화와 관련한 ‘신뢰훼손’이라고 했다가, 최근 ‘국민 안전’을 위해 수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안보상 이유’로 말을 바꾼 점을 꾸준히 문제 삼아왔다.
정부는 일본을 수출 우대국에서 제외하는 근거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현재 이에 대해 장고를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단순히 일본의 조치에 대한 ‘눈에는 눈’ 대응에 그치는 게 아닌, 명백한 근거와 설득력을 제시하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다른 정부 관계자는 “앞서 지난 8월 2일 수출 제한 조치 방침을 공식화하면서 일본 정부에도 통보했다”며 “일본 정부는 우리나라에 통보 없이 일방적으로 조치를 강행해 우리 정부가 이 부분을 문제 삼고 있다. 일본에 작은 빌미라도 주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수출과 제한 조치와 동시에 다른 카드도 거론되고 있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6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참석해 일본에 대한 ‘수출관리 강화’를 강조하면서 “관광·식품·폐기물 등에서 우리 국민의 안전을 위한 조치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관광과 식품, 폐기물 조치 강화는 일본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방사능’을 조준한 것으로 해석된다.
기존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제한 조치에서 다른 일본산 농수산물로 확대하거나, 검역과 안전검사 등 통관 절차가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관광분야 역시 일본 후쿠시마 원전 반경 30km 이내 지역과 일본 정부 지정 피난지시구역에만 적색경보를 내렸는데, 이 범위에 대한 조정이 이뤄질 수 있다. 적색경보는 여행객들에게 가급적 여행 취소나 연기를 권고하는 단계다.
한편 일본 경제산업성은 7일 오전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내용의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공포했다. 경산성은 관보에 수출무역관리령 일부를 개정하고 21일 후에 시행한다는 내용을 실었다. 시행일은 28일이다. 이날부터 한국은 일본 정부가 군사전용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품목의 경우에는 허가 우대를 받을 수 없다. 앞서 일본 정부는 지난 2일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 국가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경산성은 이날 수출무역관리령의 시행세칙인 ‘포괄 허가 취급요령’을 공개했는데, 기존 반도체, 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 외에 ‘개별 허가’를 강제하는 추가 품목은 지정하지 않았다. 당초 요령이 공개되면 일본의 개별 허가 품목이 구체적으로 확인되고, 한국 기업의 피해 규모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돼 왔다. 다른 정부 관계자는 “일본이 당장은 확전을 자제하는 모양새지만 언제든지 품목은 늘어날 수 있는 만큼 더 지켜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