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기관인 노회 ‘아버지’ 김삼환 목사 측근들로 구성…명성교회 “김하나 목사 사역 중단 없어”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 재판국은 명성교회 세습 무효 판결과 동시에 세습 반대 운동을 펼쳐온 김수원 목사에 6개월 근신 처분했다. 박정훈 기자
서울동남노회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관계자는 “총회 재판국이 명성교회 세습이 무효라는 결정을 내리던 날 상을 줘도 부족한 김수원 목사를 징계했다”며 “여론에 떠밀려 세습 무효 판정을 내렸지만 내부 정치싸움을 중단하고 교단을 정화할 생각이 없는 것”이라고 전했다.
명성교회가 속한 서울동남노회는 2017년 10월 당시 노회 헌의위원장이었던 김수원 목사를 면직·출교 처분했다. 김수원 목사는 당시 명성교회 개척자인 김삼환 목사의 아들 김하나 목사를 명성교회 위임목사로 청빙하는 절차에 의문을 제기하며 청빙 서류를 정기회에 상정하지 않았다. 노회는 파행을 맞았다. 결국 노회 재판국은 직무 유기, 직권남용 혐의로 김수원 목사에게 면직·출교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김수원 목사는 노회 재판국 결정을 총회에 상소했다. 결국 총회 재판국은 면직·출교 판결 대신 근신 6개월 처분을 내렸다고 알려졌다.
총회 재판국은 2018년 8월 ‘김삼환-김하나’ 부자 목사 간 세습을 적법하다고 보고 인정했다. 김삼환 목사는 2015년 12월 은퇴했고 김하나 목사는 2017년 11월 명성교회 위임목사로 부임했다. 총회 재판국은 2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뤄진 목사직 대물림을 ‘세습방지법’에 위배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렇지만 총회 재판국은 다시 1년 후인 8월 5일 기존 판단을 뒤집고 세습 무효 판결했다.
김삼환 목사에서 김하나 목사로 이어지는 명성교회 세습을 인정했던 총회 재판국이 입장을 뒤바꿔 세습 무효 판정을 내렸지만 ‘보여주기 판결’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비대위 총무를 맡고 있는 장병기 목사는 총회의 결정을 반기면서도 우려를 드러냈다. 장병기 목사는 “총회가 상식에 부합하는 판결을 내렸다. 김하나 목사는 담임목사직을 박탈당했다”면서도 “총회가 결정했지만 핵심은 노회다. 집행이나 처분은 노회가 하는데 노회 임원진이 현재 김삼환 목사 측근들로 이뤄져 있다. 제 역할을 할지 의문”이고 설명했다.
총회 결정을 수행할 서울동남노회 임원진이 김삼환 목사 측근들로 구성돼 있어 사실상 총회의 판결이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비대위는 노회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노회는 장로교에서 입법·사법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노회는 같은 지역에 속한 각 교회에서 파송된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다. 총회가 헌법을 만들고 판결을 내리면, 노회가 그에 따른 법 집행을 하는 셈이다.
서울동남노회는 노회장으로 자동 선출될 예정이던 김수원 목사를 몰아내고 임원진을 김삼환 목사 측근들로 구성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총회는 서울동남노회 수습전권위원회를 꾸려 노회 임원진 물갈이를 꾀했다. 수습전권위원회는 지난 7월 25일 임시노회를 열어 노회 임원진을 새로 선출했다. 하지만 임원은 대부분이 김삼환 목사 측근들로 다시 채워져 ‘명성노회’가 됐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임시노회에 참석한 노회원 201명 중 97명은 명성교회에 소속이거나 해외파송·유학·군목 등으로 자금 지원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고 알려졌다. 서울동남노회 1년 예산 6억 원 중 4억 원을 명성교회가 부담한다. 명성교회는 교단 전체에 막강한 힘을 과시한다고 알려졌다. 등록 교인만 10만 명 이상으로 명성교회는 세계 최대 대한예수교장로회 교회다.
비대위는 담임목사를 박탈당한 김하나 목사가 입장을 정리하지 않고 버티더라도 노회가 응당한 처분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동남노회 내부 관계자는 “오는 14일 열릴 임시노회에서 김하나 목사를 임시당회장으로 파송할 계획이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2018년 8월 7일 명성교회 김하나 목사 청빙 결의 무효를 촉구하는 세반연과 장신대 총학생회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 홈페이지
비대위는 총회에 노회 정상화를 촉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병기 목사는 “총회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실제 집행기관 격인 노회를 정상화하지 않으면 무용지물로 내부 갈등을 오히려 부추기고 심화시킬 뿐”이라며 ”공식적, 비공식적 경로로 총회에 노회 정상화 요구를 지속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명성교회는 총회 재판국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명성교회는 8월 6일 성명서에서 “명성교회의 후임목사 청빙은 세습이 아닌, 성도들의 뜻을 모아 당회와 공동의회의 투표를 통한 민주적 결의를 거쳐 노회의 인준을 받은 적법한 절차”라며 “명성교회는 노회와 총회와의 협력 속에서 김하나 담임 목사가 위임목사로서의 사역이 중단 없이 지속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명성교회는 “102회기 재판국과 헌법위원회, 103회기 헌법위원회에서는 일관되게 서울동남노회의 명성교회 위임목사 청빙 결의가 적법하다는 해석을 내렸다”며 “재판 과정에서 재판국원이 전원 교체되고 판결이 연기, 번복되는 등의 이번 판결의 모든 과정들은 이 사안이 법리적으로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하나 목사는 지난 8월 6월 새벽 예배 설교에서 “어제와 오늘 우리는 굉장히 다른 상황을 맞았지만, 어려운 일 당할 때 더욱 담대해지자”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불쌍히 여겨 주시고 주님 뜻대로 인도할 줄 믿는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박현광 기자 mu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