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범’발언을 한 구본준 LG필립스LCD 사장. | ||
LG와 삼성의 미묘한 신경전은 ‘TFT-LCD(초박막 액정표시화면)’ 시장에서 1위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와중에, 최근 구본준 LG필립스LCD 사장이 경쟁사인 삼성전자 임원을 전범(戰犯)에 비유하는 발언을 한 것이 발단이 됐다. 또 코오롱과 효성도 지난해부터 인수전을 벌여왔던 고합 소유의 ‘당진 필름공장’을 두고 끊임없는 분쟁을 벌이며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황이다.
이들 4개 재벌의 갈등은 사업영역이 겹치는 데다 서로 1, 2위 자리를 다퉈온 경쟁 관계여서 서로 심각한 견제를 해온 데서 빚어졌다. 그러던 중 최근 재벌 오너까지 나서 직접 경쟁사를 향해 껄끄러운 발언을 하면서 갈등양상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다.
“삼성전자는 자만심 때문에 1위 자리를 뺏겼다.” (LG), “삼성에 대한 열등의식의 발로.”(삼성)
LG와 삼성의 신경전이 노골화된 것은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동생이자 LG필립스LCD 사장인 구본준 사장이 최근 “삼성전자의 임원들은 ‘전범’”이라는 표현을 쓰면서부터.
문제의 이 발언은 구 사장이 지난 4월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디스플레이 전시회(EDEX)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했다가 그곳에 취재를 온 기자들과 점심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 구 사장은 “삼성전자가 LCD부문에 있어 우리(LG)에게 1등 자리를 내준 것은 전략적 실패를 이끈 삼성전자 ‘전범’들 때문이며, 삼성전자 임원 중에는 영구전범, 1급전범, 2급전범 등으로 나뉘어 있다더라”고 말한 것.
물론 공식적인 기자회견은 아니었다고 하나, 대기업의 오너이자 한 회사의 대표이사가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경쟁사에 대해 이 같은 비난을 퍼부은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김광태 삼성전자 상무는 구 사장의 발언에 대한 입장을 묻자 대뜸 “한 회사의 CEO가 기자들 앞에서 할 만한 발언이냐”고 꼬집었다. 그는 “삼성이 줄곧 이 부문에서 1등을 하자 (LG가) 이에 대한 열등감의 발로로 이 같은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나름대로 해석했다.
이 같은 구 사장의 발언에 대해 LG필립스LCD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 LG필립스LCD는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LG필립스LCD 관계자는 “이는 구 사장이 비보도를 전제로 사석에서 한 편안한 얘기”였다며 “경쟁사인 삼성전자에 대해 별 의미없이 한 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비보도’를 전제로 한 오너의 발언이 언론을 통해 공개된 것에 대해 불편함을 표시하면서도 “그러나 틀린 내용은 하나도 없다”고 말해 삼성의 신경을 건드리고 나섰다.
졸지에 경쟁사의 오너로부터 ‘전범’으로 낙인 찍힌 삼성전자의 임원들은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분노를 금치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임원들은 내부회의를 열어 이 문제를 토론한 뒤 일단 LG에 대해 공식 대응은 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지난해 구본무 회장이 ‘1등주의’를 표방한 이후 빚어졌다는 점에서 향후 삼성과 LG간의 라이벌 경쟁이 지속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