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통해 대놓고 ‘혐한’ 발언…재무는 자본잠식에 일본 측 지원도 미미
일본 화장품 회사 DHC는 최근 계열사 ‘DHC테레비’를 통해 ‘진상 도로노몬 뉴스’를 내보냈다. 해당 뉴스에 참석한 패널들이 “한국은 원래 바로 뜨거워지고 바로 식는 나라” “(위안부 평화의 소녀상은) 예술성이 없다” “일본인이 한글을 만들었다” 등 소위 혐한발언을 해 크게 논란이 되고 있다. DHC테레비는 동영상 콘텐츠를 제작한 후 유튜브를 통해 콘텐츠를 공급하고 있다.
당연히 한국에서는 큰 파문이 일었고 DHC 불매운동으로 이어졌다. 서경덕 성신여자대학교 교수는 “요시다 요시아키 DHC 회장은 극우 혐한 기업인으로 악명이 높다”며 “우리의 불매운동으로 DHC를 자국으로 돌려보내야 할 것 같다”고 비판했다.
DHC가 한국과 관련해 논란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6년, 요시다 회장은 회사 홈페이지에 “사이비 일본인은 필요 없다. 모국으로 돌아가라”며 재일교포를 비난한 바 있다.
서울의 한 화장품 매장의 DHC 제품. 사진=연합뉴스
DHC의 혐한 행보는 유니클로와 비교해도 심각한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유니클로는 “(불매운동의) 영향이 있더라도 장기적으로 계속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임원진의 발언으로 논란이 되고 있지만 평소 극우적인 색채가 보이는 기업은 아니었다. 반면 DHC는 이전부터 대놓고 혐한 발언을 했던 기업이었다.
사태 이후의 태도에도 차이가 있다. 현재까지도 비판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유니클로는 “전하고자 했던 바는 한국에서도 오랜 기간 사랑해주고 계신만큼 그 영향이 오래가지 않기를 바란다는 취지였다”고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하지만 DHC 측은 한국 소비자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SNS와 유튜브 등의 댓글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응수했다. 이전까지 달렸던 댓글은 모두 숨겨졌다. DHC한국법인 DHC코리아INC(DHC코리아)는 13일이 되어서야 “해당 방송 내용은 DHC코리아와 무관하게 본사의 자회사가 운영하는 채널로 우리는 이에 대해 어떤 참여도 하지 않고, 공유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앞으로도 DHC테레비와는 반대의 입장으로 이 문제에 대처할 것임을 공식적으로 말씀드린다”고 전했지만 여전히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DHC의 제품은 주로 온라인이나 헬스앤뷰티스토어(H&B스토어)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H&B스토어들도 DHC 제품을 판매하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일부 H&B스토어는 이미 온라인에서 DHC 제품을 제외한 상태다. 한 H&B스토어 관계자는 “DHC의 제품을 오프라인 매장에서 당장 빼기는 어렵고 현재로선 매장 내 배치를 조절하고 있다”며 “추후 협의를 통해 DHC 제품을 빼는 걸 고려해볼 것”이라고 전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DHC의 모델인 배우 정유미 씨 측은 DHC에 초상권 사용 철회와 모델 활동 중단을 요청하기도 했다. 정 씨 소속사인 에이스팩토리는 12일 “이번 DHC 본사 측 발언에 중대한 심각성을 느껴 정유미 씨의 초상권 사용 철회와 모델 활동 중단을 요청했다”며 “DHC와의 재계약도 절대 하지 않겠다”고 전했다.
국내 화장품 업계는 LG생활건강, 아모레퍼시픽 등 대기업들이 장악하고 있어 DHC코리아의 인지도가 그렇게 높지는 않다. 하지만 일본 시장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DHC에 따르면 일본 현지에서 업계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2016년 7월 기준 1313만 명의 회원이 DHC 제품을 이용하고 있다.
DHC는 2002년 DHC코리아라는 법인을 통해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대 후반 DHC코리아의 연매출은 470억 원 수준이었지만 이후 서서히 하락해 2012년 매출은 149억 원에 불과했다. 2013년 이후 DHC코리아의 감사보고서는 나오지 않고 있다. 또 2012년까지 DHC코리아는 자본잠식 상태였고, 2012년 말 기준 부채는 434억 원에 달했다. 따라서 DHC코리아는 부채액이 연매출의 약 3배에 달하는 부실기업(?)인 셈이다.
과거 DHC코리아의 감사보고서를 작성했던 도원회계법인은 2012년 감사보고서에서 “(DHC코리아의 재무상황은) 존속능력에 중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며 “DHC코리아는 신규품목의 도입 및 유통방식의 다변화와 함께 새로운 마케팅전략의 수립 등의 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며 다각적인 경비절감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렇지만 7년이 지난 현재 상황은 전혀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기업데이터에 따르면 DHC코리아는 지난해 매출 104억 원, 영업이익 3억 원을 기록했지만 각종 영업외비용으로 인해 전체적으로는 17억 원의 적자를 거뒀다. 지난해 말 기준 부채는 460억 원으로 늘었고, 자본은 마이너스(-) 413억 원이었다. 실적과 재무상태만 놓고 따지면 절망적인 수준으로 한국 시장을 철수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다만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 화장품 원료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로 인해 일본산 화장품이 국내 시장에서 전체적으로 부진한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일본 DHC가 DHC코리아에 큰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다. DHC코리아는 만성 자본 부족에 시달리고 있지만 2002년 이후 단 한 번도 증자를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일본 DHC에 매년 수십~수백억 원의 돈을 지불하고, 일본 DHC로부터 수백억 원의 빚까지 진 상황이다.
2014년 10월, 김무전 대표가 취임할 당시 DHC코리아는 “조직을 개편하고 새로운 마케팅 전략을 통해 기존의 DHC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한 모습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지금의 DHC코리아는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기는커녕 비난만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