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막·깃발 등 추모물들 훼손된 채 방치…주민들 “정치인들도 이제 안 와”
팽목한 빨간 등대 전경. 노란 리본은 왼다리를 잃었다.
찢겨진 채 통행로에 내동댕이 쳐진 현수막.
정권이 교체된 지 2년 3개월이 지난 8월 22일 팽목항에는 온전한 걸 찾아볼 수 없었다. 입구에서부터 끝자락 빨간 등대 사이는 찢긴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었다. 그들이 외쳤던 정치구호는 이미 해풍에 휩쓸려 사라져 버렸다. 일부 현수막은 중간 부분이 찢겨 통행로에 그냥 버려져 있었다. 온전한 현수막에는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생명존중, 안전한 사회 건설 따위의 글자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난간에는 수많은 노란 리본이 아직 묶여 있었다. 온전한 건 찾아 보기 힘들었다. 허리 잘린 노란 리본이 대부분이었다. 잘려나간 노란 리본은 바닥에 담배 꽁초와 함께 나뒹굴었다. 팽목항 난간에는 노란 리본과 함께 일정한 간격으로 깃발이 하나씩 세워져 있었다. 재수사, 진상규명 등의 정치 슬로건이 내걸린 깃발이었다. 대부분이 절반 이상 찢겼다. 재수사하라는 깃발은 일부가 삭아 ‘재수’라는 글씨만 남았다. 몇 군데에선 깃발 자체가 자취를 감췄다.
‘재수’란 글자와 노란 리본만 보이는 깃발.
노란 리본과 함께 추모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건 노란 바람개비였다. 난간에 달린 깃발 일부에는 노란 바람개비가 달렸다. 팽목항에 달렸던 모든 노란 바람개비는 모두 날개를 잃은 채로 멈춰 있었다. 바람은 불었지만 사라진 팔다리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다.
팽목항 끝자락엔 빨간 등대가 서 있다. 이 등대 정면에는 대형 노란 리본이 걸렸었다. 이 리본은 왼다리를 잃었다. 리본은 숫자 ‘9’로 보였다. 빨간 등대 바로 앞에는 사고일 4월 16일을 형상화한 ‘416’ 표식이 있다. 숫자 6이 뒤틀린 까닭에 ‘4a1’로 보였다. 그 안에는 플라스틱 음료수 캔과 담배갑, 버려진 세월호 리본, 담배 꽁초 등이 이리저리 굴러 다녔다. 등대 뒤에는 담배 꽁초와 함께 낯익은 물건 하나가 널부러져 있었다. 난간에 걸려있어야 할 깃발이었다.
416 표식은 이제 더 이상 416으로 보이지 않는다.
추모의 공간은 을씨년스러운 곳이 돼 버렸다. 이곳을 찾은 한 40대 여성은 팽목항을 가리키며 “으스스하다”고 말했다. 이어 “관리를 안 해서 많이 잊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근처에서 만난 한 지역 주민은 “세월가면 다 잊혀. 다 잊었어. 자기하고 관련이 있어야 기억을 하지. 자기 관련 안 된 사람은 다 잊지”라고 말했다.
쓰레기가 널브러진 ‘416’ 표식 지지대 안
잊지 않겠다던 사람들은 이미 모두 잊은 상태였다. 팽목항 입구에는 “이곳에 있는 추모물들은 국민해양안전관 추모시설에 보존될 예정이오니 훼손되지 않도록 주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진도군수 명의의 알림판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지역 주민에 따르면 몇 차례 민원에도 진도군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일부 난간에선 깃발을 찾아볼 수 없었다. 깃발 하나는 등대 뒤에 버려져 있었다.
‘일요신문’은 세월호 의원이라고 불리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사진을 보낸 뒤 소감을 물었다. 그는 “현재 팽목항에는 해양안전체험관이 올해 내에 착공을 준비 중이다. 진도군은 팽목항 세월호 관련 시설을 옮기자는 입장이기 때문에 진도군 차원에서는 현재 있는 시설에 대한 관리나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며 ”하지만 4·16재단과 시민단체, 가족협의회에서 팽목항 기억관을 관리하고 있다. 아마 유가족 분들이 상황을 잘 모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사진을 4·16재단, 유가족에게 전달하겠다. 그리고 진도군과 ‘옮길 때는 옮기더라도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어떨까. 문재인 대통령은 올 2월 12일 오전 11시 18분 현안 관련 내각 보고를 받은 뒤 오후 3시까지 별다른 일정을 소화하지 않았다. 이날은 세월호 참사 때 사망한 단원고 학생의 명예 졸업식 날이었다. 내각에선 유은혜 교육부 장관만 유일하게 참여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3월 대통령 후보 시절 이곳 팽목항에서 방명록에 “얘들아 너희들이 촛불 광장의 별빛이었다. 너희들의 혼이 천만 촛불이 되었다. 미안하다. 고맙다”고 적은 바 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