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 보좌관 이진수 “회의감 느낀 적 없어…그냥 가는 것” ‘고구마 캐는’ 보좌관 이순호 “디테일에서 악마 찾는 게 습관”
시청자가 말한 ‘열심히 하는 사람’은 보좌진을 가리키는 찬사였다. 국회의원이라는 가수 뒤에서 곡을 짓고 가사를 입히는 투명 프로듀서가 오롯이 조명되는 순간이었다. 실제 보좌관은 어떤 사람일까. ‘일요신문’은 여야를 대표하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소속 최고의 보좌진을 찾아 헤맸다. 각 당을 찾아 상대당 소속 가장 뛰어난 보좌관을 추천 받았다. 그러다 계속 이름이 거론되는 보좌관 둘을 찾았다. 국회를 벗어나서도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을 그림자처럼 보좌하는 이진수 전 보좌관과 자유한국당 유민봉 의원실 소속 이순호 보좌관이었다.
# 뭐 만드는지 안 가르쳐주는 ‘목수’, 이진수 전 보좌관
피겨 스케이팅 레전드 김연아의 인터뷰가 세간의 화제를 모은 적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며 준비운동을 하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김연아는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해요. 그냥 하는 거지.” 수영 레전드 마이클 펠프스도 비슷한 발언을 했다. “전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몰라요. 날짜도 모르고요. 전 그냥 수영만 해요.”
“그냥 한다”는 건 가장 무서운 말이다. 그 말은 무언가를 해나가며 후회나 회의를 느끼지 않고 그냥 계속 간다는 뜻이다. 이진수 전 보좌관이 딱 그랬다. 그는 현재 김부겸 의원의 그림자 역을 맡고 있는 전직 국회 보좌관이다.
사람과 사람은 아무리 비슷한 결을 지녀도 늘 같을 수 없어서 부대끼면서 싸우기 마련이다. 보좌진 가운데 그럴 때마다 회의를 느끼는 사람이 많다. 의원과 늘 붙어서 시중 드는 일을 하다 보면 왜 싸울 일이 없겠는가.
그는 보좌진 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회의감을 느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난 탈출 욕구를 한 번도 느낀 적 없었다. 회의란 건 ‘저 사람 옳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그릇이 큰 줄 알았는데 좀팽이구나. 내 인생 괜히 걸었구나’하는 생각이 들 때를 말하는 거다. 난 회의가 없었다. 다만 짜증이 가끔 났다. 정치는 순간 순간이 선택이다. 싸울 거냐 말 거냐 결정해야 한다. 내가 싸워야 한다고 판단했는데 때가 아니라고 기다리자는 답이 돌아오면 짜증이 났다. ‘그딴 식으로 하려면 하지 마라’하고 신분증을 집어 던진 채 나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딱 한 번 그랬는데 찾아 오고 전화 오고 난리가 났었다. 그래서 슬그머니 못 이긴 척 왔단다. 그가 벌인 주도면밀 쇼였다. 김부겸 의원과 이진수 전 보좌관은 애초 결이 다른 사람이다. 그는 “김부겸 의원은 야무지고 실무도 좋지만 기본적으로 따뜻한 사람이다. ‘형이 알아서 해줄게’라고 말하고 해주는 골목대장 같은 사람이다. 그에 반해 난 성질이 좀 차갑고 팍팍하고 주도면밀하고 깐깐하다. 빈틈 없이 챙기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서로의 박자에 익숙해진 셈이었다.
회의감 한 번 안 들고 그렇게 맞춰갈 수 있는 건 이진수 전 보좌관이 꿈꾸는 세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목수다. 어떤 나무든 용도에 맞춰서 깎고 다듬고 사포질해서 하나씩 하나씩 쌓아 올리고 있다. 이걸 알아내려 여러 번 찔러봤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됐고”라는 제동장치가 확실히 걸려 있었다. 애초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주변에서는 말했다. “인터뷰 안 할 거야. 만약 어디서 보자고 한다면 인터뷰 응하려고 오는 게 아니라 정중히 거절하려고 보자는 걸 거야.”
“인터뷰 목적이 개인사가 아니다. 보좌관이란 직업 그 자체”라고 읍소해서 그를 꾀어냈다. 보좌관이라는 직업 자체에 대해 말하다 틈만 나면 이진수라는 사람 개인사와 꿈, 또 김부겸 의원과 함께 하는 계획, 포부, 꿈을 물었다. 공격에는 정면 승부도 있고 매복도 있고 돌격도 있다. 다 안 먹혔다. 그럴 때면 “보좌관이란 직업에 대한 인터뷰라고 해서 응했는데 지금 이진수를 인터뷰 한다고 덤비는 양상이다. 난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먼 길을 간다는 분위기만 물씬 풍겼다. 어디로 가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자신의 대답이 곧 김부겸 의원의 의중인 게 드러날 수 있어서였다. 그만큼 의원과 합일치된 입 무거운 사람이었다.
김부겸 의원(왼쪽)과 이진수 전 보좌관(오른쪽). 이 전 보좌관은 사진에 잘 찍히지도 찍지도 않는다.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사진=이진수 전 보좌관
“사람이 너무 대쪽 같고 올곧으면 화병 난다. 현실 정치라는 건 선악이나 옳고 그름을 가르는 게 아니라 가치 투쟁이다. 휘더라도 부러지지 않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제정구 사단 가운데 김부겸이 변용력이나 탄성이 가장 좋았다. 그래서 ‘형을 한번 모시고 해볼란다’ 했다”고 딱 한 번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이진수 전 보좌관에게 정치란 그저 버티는 거다. 그는 보좌진을 꿈꾸는 이에게 말한다. “정책을 펼치고 싶거나 기계적인 일을 하며 정치 관련 일을 하고 싶다면 여기에 오지 마라. 누구나 당파성이란 게 있는데 당파성을 잘 판단해 자신과 맞는 당에 가더라도 ‘내가 이러려고 여기 왔나’라는 생각이 수시로 든다. 궁합이 잘 맞는 의원을 만나도 어려울 때가 온다. 몸과 마음을 100% 다 집중해서 투자해도 될까 말까인 곳이 여기다.”
그는 보좌진 일이 힘들다고 이렇게나 강조했다. 그는 1994년 고 제정구 의원의 손을 맞잡고 보좌진 생활을 시작했다. 25년째 고 제정구 의원 사단 소속 인물을 한결같이 보좌하고 있다. 대구에서 패배하는 등 굴곡도 있었다. 여전히 그는 “회의를 느낀 적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김부겸 의원은 2016년 총선 때 기어이 대구로 넘어와 부촌 수성구에 더불어민주당 깃발을 꽂았다. 그가 그리는 세상은 아무도 모른다. 그는 그냥 계속 한다.
# ‘고구마 재배자’ 이순호 보좌관의 디테일에서 악마 찾는 취미 생활
오랜만에 야당이 된 자유한국당은 요즘 된서리 맞기에 바쁘다. 문재인 정부가 보여준 많은 실책을 한 번도 제대로 공격하지 못해서 “아직도 지들이 여당인 줄 알아?”라는 핀잔을 듣고 있다. 이번 국정감사를 앞두고 자유한국당 보좌관 사이에선 한숨 소리가 나온다. 의원 대부분이 공천에 몰두하며 ‘정치질’에 집중하는 마당이라 국정 감사가 제대로 준비되고 있지 않는 까닭이다.
뭐니 뭐니 해도 국회의원이 가장 빛날 때는 국정감사 기간이다. 나라가 한 번 발칵 뒤집힌 만한 사건이 공개되기도 한다. 자유한국당이 별다른 의제를 가져오지 못하던 지난해 국정감사 기간에 행정안전위원회에는 폭탄 하나가 투하됐다. 유민봉 의원이 서울교통공사의 고용 세습 비리 의혹을 제기한 까닭이었다.
유민봉 의원이 서울교통공사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무기계약직 가운데 상당수가 서울교통공사 직원의 친인척 및 친구라고 주장하며 전쟁이 시작됐다. 서울교통공사 노조, 더불어민주당, 박원순 서울시장은 야당의 정치공세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유 의원의 말은 사실이었다. 2018년 3월 1일 서울교통공사 무기계약직 직원 1285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는데 이들 가운데 115명 넘는 인원이 서울교통공사 직원의 친인척 및 친구로 드러났다. 채용 세습이 대한민국 모든 의제를 집어삼켰다. 청년은 분노했다. 감사원이 움직였다. 행정안전부는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이순호 보좌관. 사진의 구도와 배경이 낯익다면 그건 느낌일 뿐이다. 이종현 기자
그때부터였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국정감사 자리에만 들어서면 유민봉 의원을 향해 레이저 같은 눈빛을 쐈다. 허태정 대전시장 국정감사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허 시장은 아예 유 의원을 바라보지 않았다. 이순호 보좌관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허 시장은 대전시장 선거 때 발가락 손실로 군대를 면제받았다고 주장했다가 거짓이란 게 들통나 곤욕을 치른 바 있었다. 그 중심에는 이 보좌관이 있었다. 한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보좌진은 “비례대표여서 별 생각 없이 바라봤는데 유민봉 의원의 질문이 매우 날카로워서 되게 인상 깊었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이순호 보좌관은 2015년 보좌진 생활을 시작했다. 고향이 대전인 그는 성균관대를 졸업한 뒤 영국에서 국제정치학 석박사를 했다. 학위를 받고선 건양대에서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었다. 영국 박사의 대전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얼마 되지 않아 지역구를 대전에 둔 자유한국당 이장우 의원에게 발탁됐다. 국회에 입성해 학부 때 스승이던 유민봉 의원의 러브콜을 받고 방을 옮겼다.
그는 취미가 고구마 캐기다. 문득 느껴지는 문제점을 검색해 보다 어떤 구조로 이게 이런 결과를 낼 수밖에 없었는지 고민한다. 부처에 자료를 요청하고 혼자서 본다. 그러고 또 보고 또 본다. 그는 주말마다 고향인 대전에 꼭 내려간다. 서울에서 평일에 전쟁하듯 살고 대전 가서 푹 쉬다 오는 게 그의 오래된 습관이다. 대전 가는 길에 그가 하는 건 각 부처에서 받은 자료를 하나씩 하나씩 톺아보는 일이다.
그러다 보면 구조적 문제가 하나씩 드러난다. 주말마다 대전에 가는 그는 대전에도 그런 일이 있을까 궁금해 한다. 대전시에도 자료를 요청한다. 고구마는 행정안전부, 서울시에서부터 하나씩 나오기 시작하고 대전, 그리고 전국에서 나온다. 이 부처만 그럴까? 다른 부처도 궁금하다. 다른 상임위원회 소속 의원실 보좌진에게 부탁해서 자료를 요청한다. 줄줄이 엮여 나오기 시작한다. 디테일 속에서 악마를 찾아 뿌리까지 뽑아내는 게 이젠 아예 그의 습관이 됐다.
마을기업이라 불리는 따뜻한 단어에서 경영부실로 혈세가 새나가는 걸 지적한 것도 이순호 보좌관의 그런 취미 덕이었다. 이건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전국구급 고구마였다. 그는 고향도 그런가 들춰 봤다. 고향 대전에선 아예 노골적인 밀어주기가 자행되고 있었다.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나왔다. 그는 오늘도 ‘자료 요구권’이라는 의원이 가진 막강한 호미를 들고 국가라는 밭을 이리저리 뒤지고 있다.
호기심과 변화에 대한 갈망 때문에 그는 오늘도 이 의원실 저 의원실을 전화해 호미를 빌린다. 보통 다들 자기 상임위원회 일만 신경 쓰는데 그는 고구마 캐는 게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단다. 상임위원회가 어디든 기자는 유민봉 의원실을 가장 먼저 찾는다. 이순호 보좌관과 함께 아이템을 찾고 공격 루트를 상의한다. 그에게만 가면 모든 상임위원회가 뚫린다.
그가 이제껏 캐낸 고구마는 벌써 국회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했던 큼지막한 사건을 절대 밖에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력을 정리하면 모든 언론사가 난리 날지도 모르는 까닭이다. 취재원이 드러나면 안 되는 게 이 바닥 룰이다.
푸근한 인상을 한 그는 늘 “아 이제 보좌관 그만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다가 “이거 문제의 핵심이 뭘까요?”라는 질문을 던지면 자료 요구 전화를 돌리고 또 하나씩 파고 들어가기 시작한다. “피곤해. 죽겠어”를 달고 다니는 사람이지만 그에게 충전은 다름 아닌 ‘일’이다. 대한민국과 자기 고향 땅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바로 그 ‘일’ 말이다.
사진을 요청하자 곽정환 감독이 보내온 사진. 그는 그와 스태프 전체가 담긴 사진을 보내왔다. 곽 감독은 잘 보이지 않는다. 사진=곽정환 감독 제공
배우 이정재. 사진=JTBC 제공
보좌진 인생은 이렇듯 피곤하다. JTBC 드라마 ‘보좌관’ 배우와 제작진은 대한민국 보좌진을 향해 따뜻한 마음을 전했다. ‘보좌관’을 연출한 스튜디오앤뉴 소속 곽정환 감독은 “보좌진을 향해 항상 좋은 여론만 있는 건 아니다. 보좌진을 반대하는 국민 여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실제 보좌진의 일은 매우 중요하다. 겉보기에 보좌진은 국회의원을 위해 일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사명감을 가지고 일한다. 자신이 한 일에 본인 이름이 나오지 않더라도 말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 뒤에는 그늘에서 더 땀나게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이 많다. 이 드라마는 그런 분을 위해 기획한 드라마였다. 보이지 않지만 많은 국민이 이제 조금씩 알 거다. 항상 열심히 뛴 부분에 있어서 언젠간 감사해 하고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 거다. 보좌진 분들이 조금 더 애 쓰시고 노력하면 그 노력한 덕을 입을 국민이 많다는 것 잊지 말아 달라. 본인의 이름이 빛나지 않더라도 언제나 묵묵히 해주시기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드라마에서 장태준 보좌관 역을 맡은 배우 이정재 역시 ‘일요신문’을 거쳐 대한민국 보좌진을 향한 응원을 전했다. 그는 “지금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묵묵히 일하고 있을 모든 보좌진 분들이 중심과 신념을 잃지 않고 굳건하게 나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