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인상한 카스 100일 만에 슬그머니 할인판매 나선 사연
대형마트에 나란히 진열된 오비맥주의 카스와 하이트진로의 하이트 맥주. 연합뉴스
오비맥주가 대표 브랜드인 ‘카스’ 맥주와 발포주 ‘필굿’에 대해 지난 7월 24일부터 오는 31일까지 한 달여간 특별할인 판매에 들어갔다. 카스 맥주의 출고가 인하율은 패키지별로 4~16% 수준이다. 카스 병맥주의 경우 500㎖ 기준 출고가가 현행 1203.22원에서 1147.00원으로 4.7% 내린다. 발포주 필굿 가격도 355㎖ 캔은 10%, 500㎖ 캔은 41%가량 낮춰 도매사에 공급하고 있다.
오비맥주 측은 “경기둔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맥주가 가장 많이 팔리는 여름 성수기에 소비자와 소상공인들이 직접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판촉행사를 기획했다”며 “소비자 혜택 증대에 초점을 맞춘 ‘주류 거래질서 확립에 관한 명령위임 고시’의 취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오비맥주는 한·일 무역분쟁 등으로 인해 국산 제품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시점에 이번 행사로 국산 맥주에 대한 소비 촉진도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비맥주의 이번 한시적 가격 인하는 맥주 가격을 인상한 지 100일여 만이다. 앞서 오비맥주는 지난 4월, 2년 5개월 만에 맥주 출고가를 5.3% 인상했다. 오비맥주 측은 당시 “원재료 가격 및 제반 비용 상승 등으로 인한 원가 압박 탓에 가격 인상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할인행사로 가격은 다시 인상 전으로 돌아갔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할인을 두고 오비맥주가 경쟁사인 하이트진로에 대한 견제를 위해 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그동안 주류업계에서는 1위 업체가 선제적으로 가격을 올리면, 다른 맥주회사들이 따라서 인상에 동참하는 것이 암묵적인 관행으로 이어져왔다. 실제 롯데주류는 오비맥주에 이어 지난 6월 맥주 가격을 올렸다. 맥주 ‘클라우드’ 500㎖의 경우 1250원에서 1383원으로 10.6%(133원) 인상했다.
반면 업계 2위인 하이트진로는 맥주 ‘하이트’의 가격을 인상하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오비맥주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가격을 올리면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가 따라올 거라고 생각하고 결정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하이트진로가 가격 인상에 동참하지 않자 가격경쟁력을 맞추기 위해 할인행사라는 명목으로 원래 가격으로 돌아간 걸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하이트진로는 가격 경쟁력 때문에 맥주 가격을 인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부인한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1위 기업이 가격을 인상한다고 따라 올리는 것이 업계 관행은 아니다. 맥주를 만드는 데 드는 원재료나 제반 비용 등이 비슷하기에 이런 것들이 몇 년간 쌓이다보니 가격 인상 시기가 비슷했지 않았나 싶다”며 “경영진에서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아직은 가격을 올릴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식당·술집 등 업소에서 두 회사의 맥주 가격을 동일하게 받고 있는 등 소비자들이 실제로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 맥주 가격 차이를 많이 느끼는지는 의문“이라며 ”단순히 출고가 차이가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지난 3월 출시돼 맥주시장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하이트진로의 테라. 하이트진로
하이트진로는 올해 ‘테라’ 돌풍에 힘입어 큰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출시된 테라는 출시 한 달 만에 3200만 병 판매량을 기록하더니 100일 만에 누적 판매량 1억 139만 병을 돌파했다. 초당 11.6병이 판매된 셈으로, 국내 맥주 신제품 초기 판매량 중 가장 높은 수치다.
반면 테라 열풍이 생각만큼 오비맥주에 타격을 주진 않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주류업계 다른 관계자는 “하이트진로가 테라와 관련해 공격적인 영업과 마케팅을 펼치고 있지만, 하이트를 어느 정도 포기하고 테라를 밀어주는 ‘제 살 깎아먹기 식이다“라며 ”일부 식당에서는 아예 기존의 하이트를 모두 빼고 테라로 채울 정도여서 하이트 지분을 테라가 대체하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실제 테라의 판매 호조에도 하이트진로는 2분기 기대 이하의 실적을 거뒀다. 2분기 매출은 5244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3%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106억 원으로 같은 기간 60.5% 감소했다. 당기순이익은 2018년 2분기 96억 원에서 292억 원 순손실로 적자전환했다. 증권업계에서는 ’테라 판촉비와 판매 장려금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하반기부터는 테라의 성장세가 반영돼 하이트진로 실적이 개설될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신제품을 출시한 해당 분기에는 초기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마케팅 비용이나 신병, 라벨 등 제작·개발 비용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영업이익이 좋기 힘들다”며 “매출액이 는 것을 보면 테라가 시장에서 반응이 좋고 잠재력도 충분히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어서 하반기에는 더 좋은 실적을 보여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