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 개편 희소식? 품질은 어쩔건데…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한 소비자가 수입 맥주를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국산 맥주 업계가 잇단 실적 부진을 겪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7.9% 높은 900억 원을 기록했으나 매출은 전년보다 0.43% 줄어든 1조 6576억 원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에는 아예 42억 원의 영업손실이 났다. 특히 맥주부문에서 205억 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실적 악화는 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어졌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 12일 하이트진로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A’로 유지하되 등급 전망을 기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 3월 출시한 ‘테라’가 양호한 판매 기록을 보이지만 경쟁사의 신제품 출시 등 경쟁 격화와 하이트 등 기존 브랜드 노후화, 신제품 판촉비 확대로 당분간 유의미한 실적을 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롯데칠성음료도 사정은 비슷하다. 맥주사업 적자로 주류 부문 수익과 영업이익이 모두 감소했다. 주류 부문의 지난해 수익은 7567억 원으로 2017년 8599억 원보다 1000억 원가량 하락했다. 영업이익도 2016년 274억 원에서 2017년 394억 원으로 적자 전환했으며, 지난해는 590억 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반면 수입맥주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칭따오를 수입하는 비어케이의 지난해 매출은 1263억 원, 영업이익은 237억 원으로, 전년보다 각각 7%, 3% 늘었다. 하이네켄코리아도 지난해 매출이 전년보다 18.9% 늘어난 1165억 원, 영업이익도 16.1% 증가한 383억 원을 기록했다. 롯데아사히주류의 경우 지난해 매출은 1238억 원으로 전년보다 9% 줄었으나 영업이익은 22.2% 늘어난 110억 원을 기록했다.
시장점유율에서도 수입맥주와 국산맥주의 추세는 차이가 난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수입맥주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2013년 4.9%에서 2017년 16.7%으로 5년간 3배 이상 늘었다. 편의점·대형마트 시장에서는 이미 수입맥주의 점유율이 국산맥주를 넘어섰다. 편의점 GS25에 따르면, 국산맥주와 수입맥주 매출 비율은 2013년 9 대 1에서 2014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4 대 6을 기록하고 있다. 또 이마트에 따르면, 수입맥주 비중은 2017년 맥주 전체 매출의 50%였다가 지난해 52%, 올해 6월 기준 53%로 국산맥주보다 높다.
이 같은 추세에서는 주류세가 개편돼 캔맥주 가격이 낮아져도 국산맥주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업계 기대감이 현실화되긴 어려울 전망이다. 현행 주세법인 종가세 아래 국산맥주는 제조원가와 판관비, 이윤 등이 포함된 출고가를 기준으로 세금이 결정된다. 반면 수입맥주는 수입 신고가에 따라 세금이 매겨지기에 신고가를 낮추면 세 부담이 줄어들고 소비자 가격이 낮아진다. 편의점에서 수입맥주 4캔에 1만 원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이유다.
이런 구조적 차이를 감안해 정부는 내년부터 맥주와 막걸리를 종량세로 전환해 시행하기로 했다. 술의 도수와 양에 세금을 매기면 수입맥주와 국산맥주가 같은 수준의 세금을 부과받는다. 현재보다 국산 캔맥주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가격만 싸진다고 국산맥주를 선택하진 않을 것이란 게 업계 판단이다. 편의점업계 관계자는 “지금도 종종 국산맥주 4캔 1만 원 행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매출 비중은 수입맥주가 높은데, 같은 가격이더라도 다양성을 따지는 것“이라며 ”종량세로 바뀐다고 국산맥주를 더 찾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대형마트에서는 다양한 수입맥주를 한데 모아 전문으로 판매하는 코너를 흔히 볼 수 있다. 수입맥주의 종류가 아주 많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연합뉴스
수입맥주가 지속적으로 성장한 배경은 가격경쟁력뿐 아니라 다양한 맛과 종류로 소비자 입맛을 충족한 덕분이란 것이 업계 중론이다. 수입맥주를 접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소비자 기호가 다양·고급화되고 수입맥주 구색이 확대돼 성장세를 이어나간다는 얘기다.
주류 소비 방식의 변화도 국산맥주 수요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김영란법 시행과 주 52 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회식은 줄어든 대신 집에서 혼자 즐기는 ‘홈술’, ‘혼술’ 트렌드가 확산됐다. 이에 주류 중 맥주 선호도가 상승하고 색다른 맛과 높은 품질을 추구하는 경향이 짙어졌다는 분석이다. 국내 음식 문화가 다양해진 것도 이유다. 한국수제맥주협회 관계자는 “대형 맥주사들이 라거류 위주로 맥주를 생산하는 이유는 한식과 잘 어울리기 때문인데, 요즘 소비자들은 여러 해외 음식과 주류를 접하다 보니 입맛이 다양해져 라거류의 국산맥주에 식상함을 느낀다”고 봤다.
이런 이유로 국산맥주가 수입맥주에 대응하려면 품질과 다양성을 높여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한 주종을 많이 마시는 것보다 적당히 즐기는 문화로 바뀌면서 음주량은 줄되 선택의 폭은 넓어지는 방식으로 소비 경향이 바뀌고 있다. 그러나 국내 주류업계는 일부 업체 제품들이 독점하고 있어 다양성이 떨어진다. 정연승 단국대 교수는 “소비자의 다양한 입맛을 충족할 수 있도록 품질 향상과 상품개발에 더 노력해야 한다“며 ”아울러 SNS 마케팅 등 소비자와 직접적인 소통과 이미지 제고에도 힘써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수제맥주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수제맥주는 에일류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수제맥주협회에 따르면 수제맥주 국내 점유율은 매출액 기준으로 2014년 164억 원에서 2016년 311억 원, 2018년 633억 원으로 급성장했다. 여기에 종량세 개편이 수제 맥주 성장을 가속할 전망이다. 수제 맥주는 프리미엄 제품이라 재료비가 일반 맥주보다 많이 들기에 출고가가 높고 세금이 많이 붙어 가격이 비싸다. 그러나 종량세 전환 시 용량이 기준이 되는 만큼 가격이 내려가 편의점 등에 더 많은 종류의 수제맥주를 납품할 수 있어 소비자 인식이 높아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온다. 앞의 한국수제맥주협회 관계자는 “대형 주류업계와 달리 수제맥주는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로 실험이 가능한 구조다.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개성 있는 맥주가 더 저렴한 가격에 출시되면서 국산맥주의 다양성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
‘혼술’족 증가에 술 배달 시장도 ‘쑥쑥’ 술과 안주를 정기 배송해주는 구독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회식이 줄어들고 ‘혼술·홈술’ 문화가 확산하면서 술이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니라 일종의 여가문화로 자리잡는 분위기다. 술 구독시장을 최초로 개척한 업체는 ‘벨루가’다. 매달 4병의 수제맥주와 이에 어울리는 안주를 배달해준다. 계절에 따라 가장 맛이 좋은 맥주 혹은 품질이 뛰어난 신생 브루어리 제품을 소개해 소비자가 색다른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돕겠다는 전략이다. 와인 정기 배송 서비스도 등장했다. 지난해 6월 설립된 ‘퍼플독’은 매달 한 차례 소믈리에 등 와인 전문가들이 고객 취향에 맞게 와인을 선별해 배송한다. 와인 라벨과 원산지, 음용방법, 관련 스토리 등을 담은 콘텐츠도 함께 보내준다. 정연승 단국대 교수는 “술을 많이 마시기보단 즐기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전문가들이 고객 취향에 맞거나 각국의 특색이 담긴 주류를 선정해줄 때 소비자들은 의미를 더 부여하며 향유하는 일종의 여가생활을 누린다”고 설명했다. 다만 술 구독시장에 뛰어들려면 법적 검토는 필수다. 주세법상 술이란 단일 제품은 인터넷이나 전화 등을 통해 판매할 수 없다. 벨루가는 규제를 준수하기 위해 음식을 주문하지 않으면 술 구독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도록 하는 방식으로 인터넷 주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퍼플독이 대면 결제만 고수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정부가 2017년 전통주 육성을 위해 전통주는 예외적으로 통신판매 허가를 내렸지만 다른 주종은 모두 규정이 적용된다. 김예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