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 회장 생가 옆 쉼터에서 열린 지난 98년 ‘둔기회’ 마을잔 치 장면. | ||
올해도 어김없이 지난 3일 현지의 신 회장 별장으로 내려와 4일까지 머물렀다. 도로를 막는 소동은 바로 이 때문에 벌어진 것. 신 회장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이곳에 생가터와 부모님 묘소가 있기 때문.
지난 69년 신 회장 고향인 태화강 상류에 위치한 삼동면 둔기리 마을이 대암댐 건설로 사라지자 수몰된 30여 세대의 주민들과 ‘둔기회’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신 회장은 33년 전 사재를 털어 기금을 조성하고 마을사람들과 함께 둔기회를 만든 뒤 해마다 5월 초 현지를 찾아 잔치를 벌였다.
신 회장은 자신이 살던 터에 물이 들어차자 그 위에 터를 잡아 5백여 평의 별장과 1천여 평의 쉼터를 만들어놨다. 복원된 신 회장 생가는 신 회장 어린시절의 모습 그대로인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열리는 둔기회 잔치는 30여 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5백~8백여 명이 사람이 모여들 정도로 아직도 끈끈한 응집력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신 회장이 선물이나 모임 편의를 마련해 참가를 유도한 까닭이다. [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