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 적자에 낙전수익 의존 비율 높아…상품권법 발의 후 위기론 심화
문화상품권은 여러 종류가 있지만 흔히 사용되는 건 한국문화진흥에서 발매하는 ‘컬쳐랜드 문화상품권’과 해피머니아이엔씨(해피머니INC)에서 발매하는 ‘해피머니 문화상품권’이다. 한국문화진흥은 1998년 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의 인가를 받아 문화상품권 발매를 시작했다. 현재 한국문화진흥을 이끄는 사람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처남 홍석규 보광그룹 회장이다. 홍 회장은 한국문화진흥 대표이사를 맡고 있고, 홍 회장과 특수관계자가 한국문화진흥 지분 49.72%를 갖고 있다. 한국문화진흥 지분 46.78%가 자기주식이기에 홍 회장의 경영권을 위협할 존재는 사실상 없다.
한국문화진흥의 실적은 좋지 않은 편이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문화진흥은 2006년 148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둔 이후 12년째 영업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매출 413억 원, 영업손실 15억 원을 기록했지만 각종 영업외수익 덕에 전체적으로는 63억 원의 흑자를 거뒀다.
한국문화진흥의 영업외수익은 대부분 낙전수익이다. 여기서 낙전수익이란 소비자가 문화상품권을 구입하고 유효기간이 지나도록 사용하지 않아 발생하는 수익을 뜻한다. 지난해 한국문화진흥은 102억 원의 낙전수익을 거둬 적자를 면할 수 있었다.
한국문화진흥의 컬쳐랜드 문화상품권. 사진=한국문화진흥 홈페이지
하지만 향후에도 낙전수익에 의존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2017년 말,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일명 ‘상품권법’을 발의했다. 상품권법의 주요 내용 중 하나는 상품권 발행회사는 기간이 만료된 상품권 가액을 서민금융진흥원에 출연하고, 서민금융진흥원은 해당 재원을 서민 금융생활 지원에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낙전수익을 회사의 사업이 아닌 공익적 사업에 사용하라는 내용이다. 상품권법은 지난해 2월 정무위원회 안건에 상정됐지만 이후 진전이 없는 상태다.
당시 이 의원은 “상품권의 불법 유통으로 인한 범죄악용 및 지하경제 유입으로 경제 구조 왜곡, 소멸시효가 경과한 미상환상품권 낙전수익 문제 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며 “상품권 이용자의 권리 및 피해보상계약, 미상환 상품권 수익의 사회 환원 등을 규정한 법률을 마련함으로써 상품권의 합리적 유통질서 확립과 상품권이용자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도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아직 상품권법과 관련한 구체적 소식은 들리지 않지만 법안이 통과될 경우 한국문화진흥 수익의 상당부문을 차지하는 낙전수익이 막혀 회사 재무구조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낙전수익이 중요한 건 해피머니INC도 마찬가지다. 해피머니INC는 지난해 매출 361억 원, 영업손실 71억 원을 거뒀지만 낙전수익 47억 원 덕에 전체 순손실은 26억 원으로 낮출 수 있었다. 2015년에는 해피머니INC가 상품권 판매 수수료로 벌어들인 수익이 157억 원이었는데 이와 별개로 50억 원의 낙전수익을 벌어들이기도 했다.
한국문화진흥과 해피머니INC의 재무구조는 심각한 수준이다. 2017년 말 기준 한국문화진흥의 자본총액은 마이너스(-) 53억 원으로 자본잠식 상태였다. 그나마 2018년 말 자본잠식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부채비율이 7214.70%에 달하는 부실기업이다. 해피머니INC 역시 2018년 말 기준 자본총액이 마이너스(-) 474억 원으로 자본잠식 상태이며 부채는 1200억 원이 넘는다.
더구나 이 회사들은 문화상품권 판매수수료와 낙전수익을 제외하면 벌어들이는 수익이 거의 없다. 그나마 해피머니INC는 2012년부터 POSA 기프트카드를 출시하는 등 사업 다각화에 나서고 있지만 적자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현 상황도 좋지 않은데다가 낙전수익을 막는 법안까지 발의된 상태라서 한국문화진흥과 해피머니INC의 앞날은 불안하기만 하다.
사실 일반 소비자들에게 문화상품권은 선물 이상의 의미는 없는 편이다. 대부분 매장에서 카드결제가 가능하고 문화상품권을 사용한다고 해서 물건 가격을 할인해주는 일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신용카드가 없는 청소년들의 경우 인터넷 결제 등에 문화상품권을 사용하는 사례는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매년 문화상품권 관련 매출이 늘어나는 것은 그만큼 수요가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일각에서는 상품권이 검은돈으로 활용된다고 주장한다. 일례로 황창규 KT 회장은 법인자금으로 대량의 상품권을 구입한 후 수수료를 떼고 현금화하는 이른바 ‘상품권 깡’ 수법으로 비자금 11억 5000여만 원을 조성해 불법 정치자금 후원에 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측은 “(상품권은) 누가 얼마나 발행하고 사용하는지 알 수 없어 부정부패의 단골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문화진흥과 해피머니INC는 고액의 문화상품권을 발매하지는 않아 이들의 상품권이 불법적인 일에 쓰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상품권법이 현실화되면 이들에게 예외를 적용할 수도 없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홍석규 보광그룹 회장의 어제와 오늘 한국문화진흥을 이끄는 홍석규 대표는 보광그룹 회장이기도 하다. 보광그룹의 역사는 1983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인인 고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이 설립한 (주)보광에서 시작한다. (주)보광은 1999년 삼성그룹에서 계열분리해 독자경영에 나섰다. (주)보광은 휘닉스파크 등 레저 산업을 영위했으며 2015년까지 홍석규 회장이 지분 28.75%를 가진 최대주주였다. 하지만 유동성 위기 등으로 인해 2016년 중앙미디어네트워크에서 (주)보광을 인수했고, 이후 사명도 휘닉스중앙으로 바꿨다. 현재 홍석규 회장은 휘닉스소재와 한국문화진흥의 경영권을 갖고 있다. 휘닉스소재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소재 개발 업체로 홍 회장이 최대주주이자 대표이사다. 이밖에 홍 회장은 (주)보광을 매각한 후인 2017년 1월, 이름이 같은 시스템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 (주)보광을 새롭게 설립했지만 이 회사와 관련한 특별한 활동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박형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