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시절 중수부 폐지 못한 채 정권 마무리…대선자금 수사 안대희는 ‘국민검사’ 승승장구
여의도가 초긴장에 빠졌다. ‘윤석열발 리스크’에 여야 정치권이 숨죽이며 납작 엎드렸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살아있는 권력을 단숨에 치며 ‘조국 대전’을 만들자, 정치권 안팎에선 강골 칼잡이의 그림자가 여의도에 어른거린다는 말이 나온다. 야권은 물론 여권에서도 “우리도 당하는 게 아니냐”는 공포감이 팽배하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먹잇감은 도처에 널렸다. 지난 4월 정국을 파장으로 몰아넣었던 빠루와 망치를 든 ‘동물 국회’의 후폭풍이 대표적이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정국에 연루된 피고발·고소인은 총 121명이다. 현역 국회의원은 109명에 달한다. 경찰은 이 중 98명에게 출석 통보서를 송부했다. 자유한국당이 59명으로 가장 많다. 이어 더불어민주당 35명, 정의당 3명, 바른미래당 1명 순이다.
여권이 윤석열 호를 바라보는 속마음은 복잡하다. 민주당은 검찰이 8월 27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전광석화 같은 압수수색을 단행한 직후에도 정보 흘려주기가 계속되자, “흡사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논두렁 시계 사건을 보는 듯하다”고 반발했다. 민주당 지도부가 공개적으로 언급한 논두렁 사건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가 한창인 2009년 5월 한 언론이 ‘대통령 내외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받은 명품 시계를 권양숙 여사가 논두렁에 버렸다’고 보도한 사건이다. 노 전 대통령의 후원회장을 맡았던 박 회장은 20여 년간 핵심 친노(친노무현) 인사로 활동했다.
특히 여권 내부에선 검찰의 ‘조국 압수수색’ 이후 윤 총장과 친노의 악연을 거론하는 인사들이 부쩍 늘었다. 이들의 악연은 참여정부 1년 차 때인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검찰 개혁을 내건 노 전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에 기수를 파괴한 ‘강금실 카드’를 밀어붙이면서 검찰과 일촉즉발로 치닫던 시기다.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인 참여정부 대선자금 비리 의혹 수사에 칼을 댔다. 윤 총장은 당시 평검사 신분에도 불구하고 이상수 전 민주당 사무총장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지금을 세상을 떠난 강금원 전 창신섬유 회장을 모두 구속 기소했다. 당시 대검찰청 중수부장은 안대희 전 대법관이었다.
윤 총장은 4년 뒤 이른바 ‘변양균·신정아 스캔들’ 파동 때도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구속 기소했다. 친노 인사들을 일거에 내친 것이다. 참여정부 당시 노동부 장관을 지냈던 이상수 전 의원은 13대 국회에서 노 전 대통령·이해찬 민주당 대표와 함께 ‘국회 노동위원회 삼총사’로 불렸다. 안 전 지사는 당시 ‘좌희정·우광재’의 한 축을 형성하며 참여정부 황태자로 군림했다. 변 전 실장은 ‘관료 속 노무현의 사람’으로 불렸다. 노 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인연으로 참여정부 정책실장을 맡았던 그는 임기 후반 절대적 신임 아래 정책을 진두지휘했다. 이해찬 대표가 조 후보자에 대한 검찰의 대대적인 압수수색 직후 “나라를 어지럽히는 행위”라고 비판한 것도 이 같은 악연과 무관치 않다.
여권에 최악의 시나리오는 ‘참여정부 데자뷔’다. 불법 대선자금 아킬레스건이 드러난 참여정부는 결국 대검찰청 중수부 폐지 등 검찰 개혁에 실패한 채 정권을 마무리했다. 반면 대검찰청 중수부장이었던 안대희 전 대법관은 ‘국민 검사’라는 호칭을 얻었다. 정치적 혼란은 날로 더해갔다. 노 전 대통령은 집권 1년 차인 2003년 불법 대선 자금이 한나라당(현 한국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정계은퇴 하겠다고 폭탄 발언을 했다. 참여정부 초중반(2003∼2005년) 당시 검찰 수장이었던 송광수 전 총장은 2007년 4월 19일 숭실대 한 강의에서 참여정부가 중수부 폐지에 나선 이유에 대해 “검찰에서 (노 전 대통령의 불법 대선 자금과 관련해) 10분의 2, 3을 찾았더니 대통령 측근들은 검찰이 하늘 무서운 줄 모른다며 손을 봐야 한다고 했다”고 폭로,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다.
여권의 우려도 이 지점이다. 참여정부 당시 대검 중수부 폐지를 앞세워 개혁안을 내걸었던 여권은 노 전 대통령 폭탄 발언 등으로 지리멸렬하면서 개혁 동력을 상실했다. 대검 중수부 폐지는 이명박(MB) 정부 4년 차인 2011년 때 이뤄졌다. 여권 수뇌부의 턱밑을 겨눌 윤석열 호 칼끝이 여권 내부 분열의 단초로 이어진다면, 또다시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 개혁이 물 건너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검찰발 리스크에 일격을 당한 민주당과 한국당이 검찰개혁 연대를 고리로 연합작전을 개시할 수도 있지만, 두 당의 견해차가 작지 않은 만큼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중론이다. ‘분열한 여야·느슨한 여의도 연대’로는 사실상 승산 없는 게임인 셈이다. ‘윤석열 호를 견제할 제동장치 찾기’, 21대 총선을 앞둔 여야의 특명이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