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민심이반 자초하고 한국당 도 넘은 정치 공세…내년 총선 앞두고 주도권 싸움 양상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오전 청와대 본관 세종실에서 제37회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문재인은 노무현 정신을 거론할 자격이 없다.”
8월 28일 늦은 밤 전화를 걸어 온 한 친노 인사는 무거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조 후보자를 둘러싼 일련의 상황들을 보면서 문 대통령, 그리고 친문계에 좌절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그는 “실명으로 이런 말을 하면 문 대통령 지지자들로부터 난도질을 당할 것”이라면서 익명을 원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내가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지지하기로 한 것은 그가 일관되게 특권과 반칙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조국은 어떤가. 본인이 불법은 없었다고 하지만 특권을 활용해 반칙을 한 것 아니냐. 문재인 정부가 내건 ‘노무현 정신의 계승’이라는 핵심 가치가 무너졌다. 문 대통령이 그의 임명을 밀어붙이는 것은 ‘친구’ 노무현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2017년 펴낸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줄 잘 서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부와 권력을 누렸던 게 관행화되고 일상화되면서 정의가 실종됐다. 그게 극단적 형태로 나타난 것이 박근혜 게이트”라면서 “반칙이나 특권을 통해 이익을 보고 혜택을 누리면 결국 심판받는다는 걸 이제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고 썼다. 조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이 구절이 거론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겉으로는 여권이 ‘조국 구하기’에 단일한 대오를 형성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불만이 팽배하다.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선 “총선의 최대 악재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파다하다. 이들은 조 후보자가 스스로 물러나길 바라는 모습이다. 청와대 안에서도 문 대통령 지지율 추이가 하락세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에 곤혹스러워한다. 특히 여권 핵심 지지층이었던 20~30대와 수도권 민심 이반이 심상치 않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러한 기류가 표출되기는커녕 오히려 조 후보자 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는 모습이다. 이는 문 대통령을 필두로 친문 핵심들이 필사적으로 조 후보자 방어에 나선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한 민주당 의원은 “지금 여권 정치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총선이다. 친문, 친문 지지자들, 그리고 문 대통령에게 찍히면 공천은 어려워진다”면서 “조국이 총선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는 이유”라고 했다.
친문 진영에서 조 후보자 문제를 문재인 정부 운명과 동일시하는 이유는 참여정부 학습효과에서 비롯됐을 것이란 추측이 지배적이다. 지지층 결집에 실패하고, 야당 및 언론과의 싸움에서 밀리면 남은 임기 동안 국정 운영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기저에 깔려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참여정부 시절 3년 차 때 내부 균열로 어려움을 겪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앞을 다퉈 노 전 대통령을 흔들었다. 그러자 야당 및 언론 공세도 거세졌다. 이는 각종 선거에서의 참패로 이어졌고, 노 전 대통령 레임덕을 앞당겼다.
문 대통령은 이 과정을 비서실장, 민정수석으로서 정확히 목격했다. 한 친문 관계자는 “핵심 지지층, 진보진영이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등을 돌린 게 친노 몰락의 시작이었다. 소수파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를 잘 알고 있기에 친문들이 정치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조 후보자를 지키고 있는 것”이라면서 “그들에게 외연 확장은 큰 변수가 아니다.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지지층의 변심”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 주류 세력인 운동권 특유의 ‘밀려도 끝까지 간다’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상관없다’ 등과 같은 인식이 작용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여권 인사들이 국민 여론과 거리가 멀거나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발언을 하고 있는 것 역시 이러한 배경에서 받아들여진다. 국민을 상대로가 아닌, 핵심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메시지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야당과 언론의 연이은 의혹 제기에 대해 친문 인사들이 근거 없는 공세, 개혁을 저지하기 위한 기득권의 반격 등과 같은 논리로 대응하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김종민 민주당 의원은 조 후보자 딸의 논문 제1저자 등재를 두고 “보편적 기회다.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는 게 아니라 신청하면 접근할 수 있는 기회고 제도였기 때문에 특혜는 아니다”라고 말해 공분을 샀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면서 “미국에서는 이런 보고서를 에세이라고 하는데 에세이의 우리말이 적절한 말이 없어 논문이라고 부른다”고 주장했다. 이 글에 수많은 학생들, 그리고 학부모들이 반박하는 글들을 올리며 이 교육감을 비판했다.
친문 진영 대표적 논객이라고 할 수 있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조국 대전’에 가담했다. 유 이사장은 한 라디오에 출연, “조 후보자가 심각한 도덕적 비난을 받거나 법을 위반한 행위로 볼 수 있는 일은 한 개도 없다”고 주장했다. 유 이사장은 자신과 조 후보자 모교인 서울대 촛불집회에 대해 “자유한국당이 어른어른하고 있다”고 폄하했고, 학생들이 마스크를 쓰고 나온 것을 두고서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를 두고 인터넷상에선 “3년 전 광화문 촛불과 무엇이 다르냐” “정유라 부정입학 때 이대생들이 마스크를 쓴 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글들이 올라왔다.
정치권에선 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도 넘은 정치 공세도 도마에 올랐다. 고위 공직 후보자 검증과는 무관한 자료 공개,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하고 선정적인 폭로 등으로 갈등을 키웠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또 정해진 인사청문회 제도를 보이콧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무런 근거도 없는 ‘3일 청문회’를 요구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여권이 들고 나왔던 ‘국민 청문회’ 역시 초법적 발상이긴 하지만 애초에 청문회 자체를 무력화한 자유한국당이 빌미를 줬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여야 모두 조 후보자 문제를 정략적으로만 접근하다보니 한 치의 양보도 힘든 진영 대결로 번졌다. ‘여기서 밀리면 끝’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는 셈인데, 이는 내년 총선을 앞둔 주도권 싸움과 관련이 깊다.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지지층 결집과 총선을 의식한 진영 간 대립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는 민생 실종과 정쟁의 지속으로 인한 국민들의 정치불신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들이라는 일침이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갈수록 진영별 결집’ 조국 찬반 지지율 추이 살펴보니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여론이 싸늘해지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조 후보자 임명에 찬성하는 여론은 약 2주 만에 49.1%에서 39.2%로 급락했다. 지난 6월 28일 조 후보자 공식 지명 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임명 찬성 응답(46.4%)과 반대 응답(45.4%)이 오차범위 내로 팽팽했다. 공식 후보자 지명 후인 8월 14일에는 진보층이 결집하며 후보 지명을 ‘잘했다’는 긍정평가가 49.1%로 상승했다. ‘잘못했다’는 부정평가는 43.7%였다. 그런데 8월 29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찬성 응답이 39.2%에 그쳤고, 반대 응답은 54.5%로 10% 이상 늘어났다(자세한 사항은 리얼미터 홈페이지 참조). 조 후보자와 관련된 각종 의혹이 터져 나오자 중도층이 등을 돌린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리서치가 8월 25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 후보자를 ‘적합하지 않은 인사’라고 한 답변은 48%에 달했다. ‘적합한 인사’라는 응답은 18%, ‘판단 유보’는 34%였다(자세한 사항은 한국리서치 홈페이지 참조). 중앙일보 조사연구팀이 실시한 여론조사도 비슷했다. 이 여론조사는 조 후보자의 재산 사회환원 약속(8월 23일)뒤 이뤄졌지만 결과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8월 25일 발표된 중앙일보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 후보자 임명을 반대한 사람은 60.2%였다. 임명 찬성 응답은 27.2%, 모름·무응답은 12.6%였다. 남녀 모든 연령대에서 반대가 찬성보다 많았다. 지역별로 보면 호남(찬성 44.3%, 반대 40.0%)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반대 여론이 더 높았다. 특히 서울에서는 67.4%가 ‘반대한다’고 밝혀, 대구·경북(69%)과 비슷한 수준이었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일보 홈페이지 참조) . 조국 후보자 공방이 길어지자 여론은 진영 대립 양상으로 변하고 있다. 앞서 언급된 8월 29일자 리얼미터 여론조사를 보면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한다고 답한 10명 가운데 8명은 조 후보자 임명에 찬성한다고 답했고, 자유한국당을 지지한다고 답한 10명 가운데 9명은 반대한다고 답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응답층은 줄고 진영별로 결집하는 모양새다. 공방이 길어지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이 동반하락하고 있는 점은 여권으로선 뼈아픈 부분이다. 한국갤럽이 8월 30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 대통령 지지율은 한 달 만에 4% 하락한 44%였다. 그간 40% 선을 유지하던 민주당 지지율도 30%대 후반으로 떨어졌다(자세한 사항은 한국갤럽 홈페이지 참조).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