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로 ‘센 캐’에서 ‘허당 캐’ 이미지 변신에 주목
배우 박해준. 사진=레드라인엔터테인먼트 제공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일요신문’과 만난 박해준(43)은 편안한 사람이었다. 이제까지 그가 맡았던 강렬한 배역들이 마치 껍질처럼 느껴졌다. 이번 작품에서 그의 첫 ‘코미디’ 스크린 연기를 감상하고 나온 참이어서 더욱 그렇게 느껴진 것일지도 모른다.
11일 개봉한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에서 그는 후천적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철수(차승원 분)’의 동생 ‘영수’ 역을 맡았다. 갑자기 나타난 조카 샛별(엄채영 분)과 함께 훌쩍 대구로 사라진 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도 휴게소에 들러서 라면을 먹어야 하겠고, 대구에 도착하면 막창집을 가지 않고는 못 배기는 허당 캐릭터다. 그러면서도 부인과 사춘기 딸, 그리고 형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진지한 모습도 함께 담았다.
“일단 ‘영수’라는 캐릭터는 형을 굉장히 사랑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머릿속에 50% 정도는 형에 대한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되겠더라고요. 본래는 가정을 책임지는 사람(철수)이 있었다가 이제는 그 사람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배경이 있잖아요. 영화 속에서는 그래도 어느 정도 아픔을 극복한 상태부터 시작하지만, 사실 그 뒤에서는 잊으려고 많이 노력하며 애쓰는 모습들이 있었겠죠. 그런데 또 다시 그 아픔을 기억해 내고, 다시 사람들과 만나게 되는 과정이 영화에서 예쁘게 잘 나온 것 같아요.”
배우 박해준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는 박해준의 첫 코미디 영화라는 점에서 그의 팬은 물론, 대중들도 놀라게 했다. 그러나 처음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극중 박해준의 연기는 과장된 코미디에 일단 질색을 하고 보는 까다로운 대중들까지 부드럽게 끌어당기는 데 성공했다. 굴곡 없이 넘어가는 자연스러운 ‘허당 아빠’ 캐릭터는 박해준이란 배우의 또 다른 발견이었다.
“이계벽 감독님은 (촬영할 때) 저보고 계속 재미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아 왜 코미디를 이제야 하셨어요’ 라면서. (웃음) 제 캐릭터가 또 기억에 잘 남는 캐릭터라기보다는 이 영화의 스토리를 연결시켜주는 역할이잖아요. 제가 사람을 웃기는 재주가 있고 그런 건 아니지만 영화의 캐릭터에 잘 녹아들어서 관객 분들이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만들어드린 것 같아요. 저도 영화관에서 관객 분들과 같이 봤는데 제가 나올 때 많이 웃어주시고, 또 감동적인 부분에서는 눈물도 흘려주셔서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저 코미디 연기 진짜 잘 하나요? 그러면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될 것 같아요. (웃음)”
코미디를 큰 줄기로 잡고 있긴 하지만 영화는 다소 민감한 주제를 다룬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사건은 영화의 분위기를 한순간에 반전시킨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다.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국민들의 트라우마가 된 사건을 두고 감독도, 배우들도 고민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극중에서 ‘영수’는 대구 이야기에 깊숙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해요. ‘영수’의 경우는 영화 속에서 흘러가는 또 다른 상황에 몰두를 하고 있거든요. 그런 만큼 제가 대구 지하철 참사 사건에 대한 마음을 온전히 담았다가는 영화가 너무 무거워질 수도 있다고도 생각했어요. 사실, 제가 그 일을 실제로 겪으신 분들의 마음을 어떻게 잘 알 수 있을까요. 그런 일을 겪으시고도 극복하신 분들이 정말 대단하시다고 밖엔… 영화가 그런 지점을 다시 한 번 보여주는 게 정말 고맙다고 생각했어요.”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 스틸컷
이처럼 코미디와 휴먼드라마를 넘나드는 영화에서 코믹함과 진지함을 갖춘 새로운 캐릭터로 분한 만큼 박해준의 세계는 조금 더 넓어졌다. 앞으로는 ‘힘을 내요, 미스터 리’의 ‘영수’를 보고 배우 박해준을 찾을 제작진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제는 악당 캐릭터, 센 캐릭터를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감도 생긴다.
“근데 사실 저는 악당 또 하고 싶은데…(웃음) 농담이고, 더 독한 캐릭터도 한 번 찾아보고 싶긴 하지만 인간적인 부분을 드러내는 캐릭터도 해 보고 싶어요. 이제 코미디 드라마 장르를 했으니까 이전보다 조금 더 발전한, 좀 더 인간적인 부분을 보여드리고 싶더라고요. 한편으로는 ‘독전’이나 ‘악질경찰’을 했으니 그것보다 좀 더 센 캐릭터이면서, 인간의 본성을 건드리는 역을 하고 싶기도 하고… 이제까지의 모습보다 더 진화된 캐릭터를 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 같아요.”
조금은 소심한 연기 욕심을 보여준 박해준은 올해로 데뷔 12년을 맞이했다. 대중들 앞에 직접적으로 선보였던 영화 데뷔로부터 따진다면 7년 만이다. 지난해와 올해 연속으로 조연상을 노릴 만큼 강렬한 연기와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각인시켰으니, 이제는 슬슬 주연으로서 온전히 극을 이끌어나가고 싶다는 욕심도 생길 법하다.
“저는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는 배우이고 싶어요. 상대가 편하게 함께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방법이 없을까 늘 고민하고, 제가 그렇게 해야 장면이 완성이 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주연 욕심이 없지는 않은 것 같네요. (웃음) 좋은 작품에 주연을 할 수 있으면 좋죠. 이제까지 제가 미처 주연으로서 느껴보지 못한 책임감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작품, 그런 작품에 함께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살짝 하고 있어요. (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