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자퇴를 하겠다고 했다. 선생은 명문 졸업장이 나중에 얼마나 중요한 간판인데 그러느냐면서 나를 말렸다. 명문이란 실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학연으로 서로 끌어주고 위로 올라가는 사다리라고 했다.
고3 때였다. 속칭 ‘족집게 과외’라는 게 있었다. ‘족집게’라는 말은 기적 같은 능력이 아니었다. 대학교수를 돈으로 구워삶아 입시문제를 뒤로 뽑아내는 것이었다. 과외를 받을 집안 형편이 못됐던 나는 족집게 과외를 하는 부잣집 아이에게 자료를 좀 빌려 볼 수 없느냐고 했다.
그 친구는 자기 집에서 돈을 내고 산 것을 왜 너에게 주어야 하느냐면서 거절했다. 대학입시에도 별 일이 다 있었다. 대학 1차 시험에서 서울대에 합격한 공부 선수들이 2차 대학에 가서 대리시험을 쳐 주는 것이다. 그 시대에도 정교한 위조가 있었다.
사진관에 두 사람의 사진을 가지고 가면 사진사는 면도날을 사용해서 사진들을 가로로 1밀리 간격으로 잘라 두 사람의 얼굴을 섞어서 합성했다. 그걸 사진 찍어서 수험표와 주민등록증에 붙이면 시험관들을 속일 수 있었다.
그렇게 무임승차로 의대에 합격한 친구가 지금은 백발의 의학계 원로가 되어 있기도 하다. 힘 있는 집 아이들은 대학에 가서도 법대나 상대 같은 인기학과로 옮기기도 했다.
그게 어두운 시절 내가 성장하면서 보아왔던 세상이었다. 힘 있는 집 아이 하나가 합격하기 위해 가난한 집 똑똑한 아이가 슬픔을 겪어야 했다.
보통의 평범한 집 자식들이 진창길을 갈 때 힘 있는 집 자식들 중에는 부모가 깔아놓은 레일 위를 쉽고 편하게 가는 경우도 많았다.
법무장관 후보자의 청문회 도중에 나타난 딸의 대학입시부정을 보면서 전 국민의 감정이 더는 그걸 용납하지 않는 것 같다. 조국 법무장관은 교수 시절 입만 열면 정의를 부르짖고 남을 단죄했었다.
그런데 정작 그는 자신의 이익 앞에서는 휘어 있었다. 몇 년 전 서울중앙지검에 갔었다. 좋은 자리에 있는 젊은 검사들의 아버지는 화려한 경력자들이었다.
검사와의 대화를 시도한다는 조국 법무장관에게는 그런 이면이 보일까 궁금하다.
정의의 잣대가 이중적인 경우가 많다. 추상적인 정의에 대해서는 모두 동의한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 구체적으로 자기 문제가 되면 정의는 실종된다.
공정한 재판을 부르짖던 사람도 자기가 걸리면 전혀 달라진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위선이 사람들 뇌리에 화석같이 박혀있다. 그래도 세상은 나아져 간다. 사회의 그늘에서 번식하던 곰팡이 같은 부정들이 공론화되고 여론의 햇볕을 쬐기 때문이다.
부모의 돈도 능력이라고 까불던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그게 아니라는 걸 실감했을 것이다. 법대 교수 출신인 조국 장관도 정의가 입과 손가락으로만 내뱉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국민들은 이 시대를 떠받칠 윤리적 기둥을 갈구한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건 하늘이 내린 축복인지는 몰라도 그걸로 다른 사람들 마음에 멍이 들게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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