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당국 판결 무시한 거듭 해고 행보 도마 위
인천교통공사가 촉탁직 직원들에 대한 일방적인 계약직 해제로 부당해고 논란에 휩싸였다. 계약직 해제 입장을 고수하면 올 하반기에도 16명이 일자리를 잃게 돼 첨예한 노사 갈등이 예고된다. 사진=인천교통공사 노조
공사와 직원들에 따르면 최근 시설관리원과 버스운전원으로 일하다가 공사의 촉탁직 폐지에 따라 실직한 직원들이 지난 9일 지방노동위원회 심의에서 승소했다. 촉탁제는 노인 고용 안정을 위해 정년 60~63세인 장애인콜택시 운전원과 버스운전원, 시설관리원(청소·시설·경비)을 대상으로 1년간 업무수행능력 평가를 거쳐 정년을 최대 65세까지 늘려주는 기간제 계약직 제도다. 동일 직종 근무자간 정년이 이원화된 무기계약직의 차별을 없애고 숙련된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자 공사가 노사 합의를 통해 지난해 1월 시행했다. 공사는 2011년 인천메트로와 합병 당시 콜택시 운전원의 경우 당해 9월 이전 입사자 정년은 65세, 이후 입사자는 60세로 갈리는 등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정년이 다른 문제가 지속돼왔다.
그러나 사측이 올 초 촉탁제를 폐지하면서 정년이 연장되지 못한 8명은 지난 6월 말 직장을 잃었다. 이들은 바로 다음 달인 7월 인천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에 부당 해고에 대한 구제신청을 했고, 이중 7명이 지난 9일 진행된 심의에서 승소해 복직을 앞둔 상황이다. 나머지 1명은 버스노선관리자로 노사합의서에 명시된 촉탁직 대상 직종에 해당하지 않아 기각됐다.
노동당국이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준 이유는 고용계약에 대한 갱신 기대권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촉탁제 시행을 위해 2017년 9월 작성한 노사합의서를 보면 1년간 업무수행능력을 평가해 적격 여부를 심사한 뒤 촉탁직으로 계약 갱신 및 채용하도록 규정돼 있고, 구체적 평가 기준도 담겨 있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이 평가에 따라 정년 연장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는 상황에서, 공사가 합리적 이유나 노사 합의, 업무평가 없이 근로계약을 해지한 것은 부당하다는 판단이다. 공사가 2017년 신설한 사규 ‘공사 업무직 채용 및 관리 내규’도 시설관리원과 버스·장애인콜택시 운전원의 경우 정년퇴직 예정자에 한해 1년 단위 기간제 근로자로 촉탁계약을 할 수 있으며, 근무 상한 연령은 65세까지로 한다고 규정한다.
당초 노사합의서에는 ‘촉탁직 도입은 2018년 12월까지 운영하되, 같은 해 1월부터 9월까지 운영한 결과를 노사가 심의한 후 시행 여부를 결정한다’고 적혀 있다. 공사는 이 조항을 근거로 촉탁제 운영 결과 효과가 미미하다며 폐지를 강행했다. 지난해 말 노사 협상 결렬로 시행 여부에 대한 새로운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에 노사합의서 효력은 사라지고 촉탁제도 존속할 수 없다는 것. 그러나 노동자들은 “시행 기간을 정해놓은 해당 조항은 촉탁제 도입에 대한 외부의 부정적 의견을 피하기 위한 형식적 항목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또 사측이 ‘정년을 65세로 연장해주겠다’고 한 녹취록도 결정적 근거가 됐다. 이번 지노위 심의에 참여한 한 노조원은 “합의서 작성 당시 사측에서 시행 기간에 대한 조항은 의미 없는 형식적 사항일 뿐 계속 운영하겠다고 구두로 약속했고 녹취파일도 증거로 제출했기에 갱신 기대권이 인정됐다”고 설명했다.
올 초 해직됐다가 노동당국 판결로 복직된 선례도 노동자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보인다. 앞서 공사의 촉탁직 폐지에 지난해 촉탁직으로 정년이 늘어난 10명과 올해부터 같은 방식으로 정년이 연장될 예정이던 7명, 모두 17명이 올해 1월 실직했다. 이들 중 10명은 공사의 계약 해지가 부당하다며 지노위에 제소했고 마찬가지로 갱신기대권이 인정돼 승소했다. 당시 지노위는 해직 노동자들을 하루 빨리 복직시키고 해고 기간 정상적으로 근무했다면 받을 수 있던 임금도 상당액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공사는 지시에 따라 10명을 지난 4월 복직시켰으나 지노위 판정에 불복해 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에 재심 신청했고 6월 심의에서 거듭 패소했다. 최근 지노위 심의에 승소해 복직을 앞둔 한 노동자는 “앞서 촉탁직으로 근무하다 해직된 직원들이 노동위에 구제 신청해 받아들여진 사실을 알고 있기에 같은 상황인 만큼 우리도 평가 결과에 따라 촉탁직으로 근무하게 될 것이라 믿었다”며 “그래서 더 성실히 근무해왔으나 사측은 심의나 설명 없이 일방적으로 해고했다”고 말했다.
촉탁제 시행을 위해 노사가 합의 하에 2017년 9월 작성한 노사합의서. 사진=인천교통공사 노조
이 같은 상황에서도 공사는 노동당국의 판단마저 인정하지 않은 채 촉탁제 폐지를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보인다. 촉탁제는 신규 일자리 창출이라는 정부 정책 기조에 위배되고, 많은 비용이 들어가며, 고령으로 인한 사고율과 병가자 증가로 인력 운영에 비효율을 초래하는 등 제도 운영에 따른 실익이 없어 폐지했다는 주장이다.
올 초 실직했다가 복직한 노동자들과 법리다툼도 진행 중이다. 공사는 지노위에 이어 중노위 판결에도 불복해 7월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신청했다. 중노위 판정에 이의가 있는 경우 재심 판정서를 받은 날부터 15일 이내 대전지방법원 또는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공사 관계자는 “행정소송을 신청한 상태로 계속 법적 절차를 밟겠다”며 “최근 실직한 8명이 제소한 지노위 심의 결과가 담긴 판정서가 나오면 복직 지시에는 이행하겠지만 중노위에 재심 신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신임 사장이 들어온 만큼 촉탁직 재운영 의사가 없느냐는 질문에는 “촉탁직 운영 기간은 지난해 9월까지로 이후 노사 합의가 결렬돼 촉탁직 자체가 없어졌다는 게 현재 회사 입장”이라면서도 “앞으로 전개될 상황에 대해서는 모르겠다”고 했다. 앞서 공사는 이중호 전 사장 체제 아래 촉탁제를 시행·폐지하고 실직 노동자들과 소송전을 벌인 상황에서 지난 8월 26일 취임한 정희윤 신임 사장 체제로 바뀌었다.
그러나 공사의 주장은 인정하기 힘들다는 것이 노동당국의 결론이다. 중노위가 지난 6월 공사에 보낸 판정서엔 “근로계약 체결 경위와 갱신 요건·절차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볼 때, 해직된 10명 중 8명은 평가기준을 충족했고 업무수행 능력이 떨어진다거나 비위 귀책사유가 발견되지 않았다. 다른 2명은 정년예정자로 평가조차 시행하지 않았기에 사측의 근로계약 갱신·체결 거절은 부당하다”고 적혀 있다. 판결문에는 고령으로 사고율과 병가자가 늘어난다는 사측 주장에 대해서도, 연령대별 근로자 수와 비교해볼 때 특별히 촉탁직 근로자의 사고나 병가 발생이 높다고 판단할 수 없다고 명시됐다. 지난해 전체 60대 직원과 촉탁직의 교통사고 건수를 비교해보면 촉탁직 교통사고 건수는 20건 중 3건, 병가 건수도 155일 중 촉탁직은 4일에 그쳤다. 아울러 업무수행능력과 건강상태 등이 촉탁직 평가기준에 포함돼 있기에 평가절차를 통해 충분히 보완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신규 일자리 창출이라는 정부 기조에 위배된다는 주장도 제도 도입 과정에서 이미 인지할 수 있었던 내용이며 정년 이후 촉탁제가 주로 고령자 친화 직종에서 운영된다는 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문제는 공사가 입장을 꺾지 않으면 정년 연장 거부로 직장을 잃는 노동자들이 매분기 생겨난다는 점이다. 노조에 따르면 올 12월 정년에 도달해 실직을 앞둔 촉탁직 계약 대상 노동자는 16명이다. 매번 지노위·중노위 심의에 행정소송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반복되면 행정력 낭비 및 노사갈등 심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노조원은 “매년 실직자들이 생겨나고 그때마다 노동위 제소에 들어갈 텐데 공사 측이 왜 계속 절차를 반복하려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공사가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촉탁제 폐지를 고집하는 속내는 다른 인천시 산하 공공기관 어느 곳에서도 비정규직의 정년 연장을 제도화한 선례가 없어 선도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년을 65세까지 연장해주는 데 대해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란 얘기도 들린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사 직원은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정년 연장은 찬성과 반대 여론이 갈리는 국가적인 쟁점”이라며 “아울러 인천교통공사가 최초로 비정규직 정년 연장을 실시하면 인천시 산하 공사·공단 5곳의 노동자들도 정년 연장을 요구할 것이기에 사측이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인천교통공사 노조 측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인지하고 사측과 협상 중이지만 이견이 커 합의가 쉽지 않다. 노조 내에서도 여러 주장이 갈리고 있다. 정현목 공사 노조위원장은 “평가 절차 없이 더 안정적으로 고용을 보장할 수 있도록 단계적 정년 연장 방향으로 가려고 하지만 노사간 이견이 좁히지 않고 노조 내에서도 의견이 갈려 답보 상태”라며 “일단 행정소송 등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