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거리 신오쿠보 ‘핫스폿’ 등극, 일본관광객 한국 방문 ‘사상최고’…젊은 여성 중심 KPOP·K패션 열풍
연일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를 달리지만 전례 없는 한류붐이 일본에 부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극과 극’이 공존하는 배경은 뭘까. 다름 아니라 한국에 대한 호불호가 성별과 세대별로 확연히 갈리기 때문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8월 30일부터 9월 1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를 발표했다. 한일 갈등에 관한 질문이었다. 결과에 따르면, “일본이 양보할 정도라면 관계 개선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답한 사람이 67%에 달했다. 성별로는 남성이 ‘대한 강경론’의 목소리가 많았다. “관계 개선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응답한 남성은 74%, 여성은 58%였다.
이러한 여론에 힘입어, 중장년층 남성이 주요독자인 일본 주간지들은 한국에 관한 비판적인 보도를 해오고 있다. 판매 부수가 늘고, 사이트 클릭수도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쿄의 한인타운인 신오쿠보를 방문하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대표적인 우익 성향의 잡지 ‘주간문춘’ 기자는 실제로 9월 첫째 주말, 신오쿠보를 방문한 소감을 전했다.
일본 도쿄의 한류거리 신오쿠보에서 일본 젊은이들이 한국 길거리 치즈 핫도그 ‘아리랑 핫도그’를 먹으며 즐거워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주간문춘’ 기자는 “신오쿠보가 중고생과 20대 젊은 여성들로 넘쳐나 마치 하라주쿠(도쿄 번화가이자 젊음의 거리)를 걷는 듯했다”고 밝혔다. 특히 일명 ‘이케맨(꽃미남) 거리’로 불리는 “메인 거리는 북새통을 이뤄 스쳐 지나는데 어깨가 부딪힐 정도였다”고 한다. 한류 아이돌의 굿즈를 파는 숍은 물론, 한국식 핫도그가게, 치즈닭갈비집, 서울에서 인기 있는 카페 분점 등등마다 빈틈없이 긴 행렬이 이어진다. 한일 갈등 악화에도 불구하고, 신오쿠보의 모습만 보면 유례없는 한류붐이다.
젊은층 트렌드를 조사하는 ‘TT종합연구소’가 공개한 설문결과도 흥미롭다. 동일본에 거주하는 여고생들에게 ‘올 상반기 핫스폿’을 물었더니, 답변으로 1위는 타피오카 음료전문점이, 2위는 신오쿠보가 차지했다. 디즈니랜드와 하라주쿠를 제치고 신오쿠보가 상위권에 올랐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에 대해 ‘주간문춘’은 “지금 10~20대 여성을 중심으로 제3차 한류붐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1차 한류붐은 잘 알려진 대로, 2003년 일본에서 방영된 ‘겨울연가’ 돌풍이다. 당시 한류붐은 중장년층 여성들이 주축이었다. 그리고 2010년 초반 동방신기와 소녀시대 등 한국 아이돌그룹이 일본에 진출하면서 2차 한류붐을 맞이했다. 3차 한류는 1, 2차와 달리 ‘일본의 젊은 세대들이 주소비층’으로 떠올랐다는 점이 새롭다. 마케팅 분석가 하라다 요헤이 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최근 2~3년간 10~20대 여성을 중심으로 K-POP(케이-팝)과 패션, 화장품, 음식 등을 포함한 한류붐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젊은 남성들에게도 확산되면서 한류 영향력이 커지는 중이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탄소년단이 표지에 실린 ‘캔캠’ 8월호(왼쪽)와 ‘앙앙’ 7월 10일호. 불티나게 팔려 매진과 증쇄로 이어졌다.
3차 한류의 주역은 역시 K-POP이다. 저널리스트 이시다 이치시 씨는 “한국뿐 아니라 해외 음반수출, 해외 공연, 굿즈 판매 등을 포함한 K-POP 시장 규모가 무려 4000억 엔(약 4조 4000억 원) 이상”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해외 매출의 대부분은 일본이 차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열도를 삼킨 K-POP의 매력은 뭘까. 일본 여성들은 “한국 아이돌의 노래와 춤 실력이 압도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일본 아이돌과 달리 춤출 때도 립싱크를 안 하며, 콘서트에서 보면 그 실력 차이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현재 일본에서 가장 뜨거운 그룹은 단연 ‘방탄소년단(BTS)’이다. 지난 7월 일본에서 발매한 싱글 ‘라이트/보이 위드 러브’는 해외 남성 아티스트로서는 최초로 100만 장을 돌파했다. 관련 잡지도 불티나게 팔린다. 방탄소년단이 표지로 등장한 ‘캔캠(CanCam)’ 8월호는 발매도 전에 매진됐다. 마찬가지로 방탄소년단을 표지로 내세운 ‘앙앙(anan)’ 7월 10일호 역시 증쇄했다.
지난해 여름부터 유명 패션지 ‘비비(ViVi)’와 ‘클래시(CLASSY)’를 비롯해, 여중생들이 타깃인 패션지 ‘니콜라(nicola)’에도 한국식 메이크업과 문화를 소개하는 특집코너가 잇따라 실렸다. 서울에 거주하는 저널리스트 히가시야마 사리 씨는 이렇게 언급했다.
“지난 10년간 서울은 세련되게 변모했다. 예쁜 카페가 늘고 거리의 젊은이들 또한 패셔너블하다. 도쿄의 시부야와 비슷한 ‘홍대’에 나가보면 일본인들로 가득하다. 한일관계 악화로 일본에 가는 한국 관광객은 줄고 있지만, 한국에 오는 일본 관광객은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실제로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3월 한국을 방문한 일본 관광객은 37만 5000명으로 55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한국관광공사는 “올해 방한 일본인 관광객이 사상 최대인 353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일본의 계간지 ‘문예’ 가을호는 ‘한국 페미니즘’ 특집을 실어 문예지로는 보기 드물게 3쇄를 찍었다.
한편 외교에 관한 일본인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남녀 차이와 세대 차이가 분명히 드러난다. 내각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60세 이상 일본인 가운데 67%가 “한국에 친밀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답했다. 전 연령층에 걸쳐 남성 쪽이 “친밀감을 느끼지 않는다”의 비율이 높았다. 이에 비해, 18~29세 젊은 세대들은 57%가 “한국에 친밀감을 느끼는 것”으로 집계됐다.
왜 이러한 온도차가 나타나는 걸까. 도쿄대학대학원의 하야시 가오리 교수는 “60대 이상 일본인 남성 상당수가 경제성장을 뒷받침했다는 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일본이 상처받으면 마치 자신이 상처를 받는 것처럼 여긴다. 내셔널리즘과 비슷하다. 반면 여성은 그런 감각이 희박하다”고 말했다.
최악의 한일 관계에도 불구하고, 일본 젊은이들이 한국에 빠지는 이유에 대해 ‘주간문춘’은 나름의 분석을 내놓았다. 잡지는 “젊은 세대의 경우 과거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없다. 분별력이 생길 즈음 한일월드컵과 ‘겨울연가’ 같은 한류붐이 일었기 때문에 무심하게 이웃나라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