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역사의 주인공’ 원했을 수도…과장과 교란이라면? 입증 난제는 경찰 몫
화성연쇄살인사건 관련 브리핑을 하는 반기수 경기남부청 2부장. 사진=박정훈 기자
전문가들은 갑작스런 자백에 숨겨진 의도와 신빙성을 의심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춘재의 자백에는 프로파일러와의 신뢰 관계, 즉 라포(Rapport, 상담 과정에서 형성되는 신뢰와 친밀감) 형성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하는 한편 “추가 범행에 대해서는 증거 확보를 통해 사실 관계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자백을 했는지 알 수 없어 상황이 바뀌면 번복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힘든 건 경찰 쪽이다. 이춘재는 자백을 했고 범죄를 입증하는 것은 경찰의 몫인 까닭이다. 문제는 그가 진술한 여죄들은 현재까지 DNA 증거가 나오지 않았거나 이미 시간이 오래 지난 미제 사건이라는 점이다. 이춘재가 정확히 몇 건을 어떻게 했는지 진술하지 않고 모두 자신의 소행이라고만 했다면 오히려 경찰을 교란시키기 위한 행동일 가능성도 있다.
프로파일러 배상훈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는 “진술대로 전부 이춘재의 범행일 수도 있다”면서도 “지금까지 ‘이춘재가 한 것이 맞냐’를 따졌다면 이제는 14건의 사건 가운데 이춘재가 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그냥 알고 있는 사건을 자신이 했다고 말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범죄자들 가운데에는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포장하기 위해 범행을 과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까닭이다. 연쇄살인범 유영철과 정남규는 과거 ‘이문동 살인사건’을 두고 서로 자신의 범행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우월감을 느끼기 위해 자백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이호선 숭실사이버대학교 교수는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춘재가 화성에서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사건들은 영화까지 만들어졌다. 이제는 오히려 본인이 범죄 역사에 새로운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것 아닌가 싶다“면서 ”이춘재 심경 변화의 핵심은 외적인 자극이 아니라 내적인 판단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춘재가 교도소 내에서 좀 더 편하게 생활하기 위해 자백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어차피 가석방은 물 건너 간 상황에서 남은 수감 생활은 대접 받으며 지내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 실제로 교도소 내 살인 혐의로 들어온 수감자나 무기수, 사형수는 조직폭력배도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한 심리적 압박감 끝에 무너졌다는 의견도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춘재는 수차례 진행된 대면조사에서 줄곧 혐의를 부인해왔으나 최초 목격자인 버스 안내양이 등장한 이후 자백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더해 5, 7, 9차에 이어 4차 사건의 증거물에서도 본인의 DNA가 검출됐다는 결과 역시 심경 변화의 원인이 됐을 수 있다는 진단이다.
이에 대해 경기남부지방경찰청 반기수 2부장은 10월 2일 언론브리핑에서 “프로파일러와 라포가 형성된 상태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를 제시한 것이 자백하게 된 계기가 아닌가 판단한다. 지난주부터 심경 변화를 느껴 자백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