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시스템·한화종합화학 상장 통해 현금 마련 전망도
에이치솔루션이 한화그룹의 지주사인 (주)한화 지분을 잇달아 매입하면서 한화그룹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본격화된 것 아니냐는 시선이 나온다. 사진은 서울 장교동 한화빌딩. 사진=박정훈 기자
지난 9월 27일 (주)한화 공시에 따르면, 에이치솔루션은 9월 3~24일 (주)한화 보통주·종류주를 장내 매수해 보유지분율을 기존 3.58%에서 4.34%로 늘렸다. 에이치솔루션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50%)와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25%), 삼남 김동선 전 한화건설 팀장(25%) 삼형제가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다. 따라서 에이치솔루션과 삼형제 지분을 합하면 총 11.18%로, 지분 18.84%를 보유한 김 회장과 차이가 7.66%밖에 안 난다. 에이치솔루션은 8월 8일~9월 2일도 장내 매수를 통해 ㈜한화 지분율을 2.12%에서 3.58%로 확대한 바 있다.
재계에서는 에이치솔루션의 행보가 경영권 승계 작업과 무관치 않다고 본다. (주)한화는 한화생명, 한화건설, 한화호텔&리조트, 한화케미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으며,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한화시스템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그러나 김 회장의 세 아들이 보유한 (주)한화 지분율은 장남 4.28%, 차·삼남이 각각 1.28%에 그치는 만큼 원활한 승계를 위해서는 (주)한화 계속 지분을 늘려야 한다. 또 삼형제의 자회사 에이치솔루션의 지배구조는 그룹 핵심 계열사인 한화에너지→한화종합화학→한화토탈로 이어진다. 에이치솔루션은 한화시스템 지분도 14.49%를 보유해 3대 주주에 올라 있다. 에이치솔루션이 (주)한화 지분을 늘릴수록 삼형제의 (주)한화 지분율과 그룹 전체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도 높아지는 것이다.
에이치솔루션이 (주)한화 지분을 계속 늘리려면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다. 따라서 에이치솔루션이 지분을 갖고 있는 회사들을 기업공개(IPO)해 지분 가치를 높인 뒤 구주 매각 자금으로 (주)한화 지분을 매입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돼왔다. 실제 에이치솔루션이 14.49%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한화시스템은 연내 매각을 목표로 9월 25일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에서 상장예비심사 승인을 받았다. 한화종합화학도 내년 IPO를 계획 중이다. 이 두 회사의 상장이 이뤄지면 에이치솔루션, 즉 삼형제에게 들어가는 차익이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점에서 재계에서는 에이치솔루션의 기업 가치를 높인 뒤 (주)한화 지분을 늘려 지주사로 올라서거나 두 회사를 합병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최근 에이치솔루션이 빠르게 (주)한화 지분을 늘리면서 합병보다는 지분 매입을 통한 지주사 전환 시나리오가 힘을 얻고 있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부 교수는 “합병하는 방안이 가장 편한 승계방법이겠지만 합병 비율 등으로 논란이 생길 수 있게 때문에 에이치솔루션의 덩치를 키운 뒤 구주를 매각해 (주)한화 지분을 사는 게 낫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봤다.
에이치솔루션이 최근 (주)한화 지분을 매입하는 것과 관련해 재계에서는 에이치솔루션이 (주)한화를 지배하는 지주사로 올라서거나 두 회사를 합병하는 방식으로 경영권 승계 작업이 이뤄질 것이라 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화그룹은 최근 에이치솔루션의 (주)한화 지분 매입은 주가 방어 차원이고, 계열사 상장은 경영권 승계와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한화시스템 IPO는 지난해 일감몰아주기 의혹을 없애고자 한화시스템-한화S&C 합병 이후 상장을 통해 소유 물량을 완전 해소한다는 입장을 밝힌 데 따른 실행 차원이며, 한화종합화학도 최초 인수 당시 상장에 대한 계약 조건 때문에 검토하는 것일 뿐 승계와 무관하다는 것. (주)한화 관계자는 “에이치솔루션의 지분 매입은 (주)한화 주식이 저평가돼 있어 주가방어를 통해 주주 권익을 보호하려는 목적”이라며 “에이치솔루션의 한화시스템 지분율은 14.49%로, 상장이 에이치솔루션의 지분가치를 키우는 데 미치는 효과도 미미하다”고 반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시선은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에이치솔루션이 (주)한화 지분을 늘릴수록 삼형제의 (주)한화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도 커지는 구조는 여전하고, 한화시스템 3대 주주로서 한화시스템 가치가 오를수록 얻는 이익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이치솔루션의 가치를 높이는 과정에서 한화그룹이 조심스러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미 한화는 과거 계열사 전산업무를 시스템통합(SI) 업체인 한화S&C에 몰아주며 기업 가치를 높인 뒤, 한화S&C 지분을 아들 삼형제에게 다 넘기면서 일감몰아주기 의혹을 받은 바 있다. 이에 2017년 한화S&C를 에이치솔루션(존속법인)과 SI업체 한화S&C(신설법인)로 물적분할하고, 이듬해 한화S&C와 한화시스템을 합병한 뒤 에이치솔루션이 한화S&C 보유 지분을 일부 팔아넘겼다. 이로써 한화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서 벗어났으나 규제 사각지대를 이용해 법망을 피해 갔다는 비판도 받았다.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주)한화에서 에이치솔루션으로 지주사 전환하는 과정에서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나 상표권 수수료 과다 징수 등으로 수익을 내는 등 불공정하게 기업 가치를 키우려 한다면, 이를 지켜보는 시장 참여자들이 의혹을 제기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
일감 몰아주기로 한화시스템 가치 띄우나 한화시스템 상장과 관련해 일부에서는 계열사 물류 일감 몰아주기로 한화시스템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화시스템 가치가 올라갈수록 에이치솔루션의 지분 가치가 올라갈 뿐 아니라 후계승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에이치솔루션 오너 일가의 한화시스템 지분이 20%를 넘지 않도록 유지하면서 상장을 앞두고 기업 가치를 높이고자 삼성SDS 모델을 쓸 것”이라며 “한화시스템에 일감을 몰아준 뒤 상장해 에이치솔루션 가치가 커지면, (주)한화 지분을 매입하거나 에이치솔루션 자체를 상장하는 등 옵션이 많아진다”고 봤다. 실제로 한화그룹 해외법인 물류 일감을 한화시스템에 몰아주려는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한화시스템이 2017년 말 작성한 내부 문건에는 한화큐셀 일본법인과 한화테크윈 베트남법인을 시작으로 미국, 중국, 유럽 등 한화 해외법인을 비롯해 한화케미칼, 한화토탈 등 석유화학 부문까지 물류 영업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이 담겼다. 이어 한화시스템이 올 초부터 한화큐셀 일본법인과 한화테크윈 베트남법인의 물류사업을 따내 현재 업무 중인 사실이 확인되면서 해외법인들의 물류 일감을 한화시스템에 몰아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박주근 대표는 “해외법인은 국내법 적용을 받지 않기에 내부거래를 해도 일감 몰아주기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며 “국내법인 규제는 가능하지만 에이치솔루션과 (주)한화의 한화시스템 직접 보유 지분율도 20·30%를 넘지 않아 규제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총수 일가 보유 지분이 20% 이상인 비상장사나 30% 이상인 상장사를 대상으로 그룹차원의 일감 몰아주기를 금지하고 있다. 한화시스템 측은 당시 해당 문건을 작성한 건 사실이지만 여러 가지 버전 중 하나일 뿐 최종 버전이 아니고, 문건대로 계획이 진행되지도 않았다고 해명한다. 한화시스템의 물류사업으로 기존 해외법인과 거래하던 물류업체가 손해보거나 해외법인 물류비용이 늘어나는 일도 없다고 했다. 한화시스템이 따낸 한화테크윈 베트남법인 물류사업은 IT물류시스템을 도입하는 내용으로, 수송·보관 등 업무는 기존 협력사가 계속 맡고 있으며, 한화테크윈과 기존 협력사가 약속한 계약기간과 요율 등도 그대로 유지한다는 조건으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한화시스템 관계자는 “문건대로라면 올 9월 미국·유럽 등에 법인을 세워야 하는데 아무것도 진행된 게 없다”며 “IT물류사업은 물동 이동을 추적하고 물동량 집중 시기 등을 분석해 컨설팅해주는 것으로, 물류 효율성을 높이는 차원이지 일감 몰아주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예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