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지점 속한 조합 현장실습 선도기업서 해제…인근 학교 학생들 실습할 곳 사라져 또다른 피해
최근 농협에서 벌어진 실습 여고생 성추행 사건을 두고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 서대문 소재 농협중앙회 건물 입구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일요신문DB
‘이투데이’에 따르면 올 하반기 서울에 위치한 농협 A 조합 산하 한 지점에서 있었던 1박 2일 하계 캠프 때 지점 관계자 2명이 여고 실습생 2명을 성추행했다. 가해자 2명은 농협의 지점장과 직원으로 확인됐다. 사건 당시 모두 만취 상태였으며 사건 이후 피해 학생 2명에게 서면 사과문을 보냈다. 농협은 인사위원회를 열어 지점장과 직원에게 각각 정직 4개월과 정직 3개월 처분을 내렸다.
피해자 2명은 고등학교에서 실습을 나온 3학년 학생이었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은 학교의 교육기자재 부족을 해소하려 1963년에 처음 도입된 정책이다. 1993년 신경제5개년계획에 따라 3D 업종 인력 공급으로 목적이 약간 바뀌었다. 요즘의 현장실습은 기업과 학교가 협력해 산업체의 요구에 부합하는 인력 양성 프로그램이다. 농협은 보통 6개월 실습 뒤 학생을 계약직으로 채용하고 계약이 만료되면 일정 심사를 거쳐 정직원으로 배치한다.
사건이 발생한 뒤 피해 실습 여고생 2명은 애초 예정된 실습 기간 6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한 달 만에 학교로 복귀했다. 농협은 이 사건 관련 피해자를 도우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학교에서 피해학생의 복귀를 요청한 까닭이었다. 문제된 농협 지점 관계자는 “우리 쪽에서는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했다. 재배치 등 실습생이 원하는 걸 다 해주려고 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실습생을 돌려보내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농협은 성폭력 대응 매뉴얼대로 조치했다. 보통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기업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업무 공간을 분리해야 한다. 그런 뒤 피해자가 2차 피해를 받지 않도록 소속을 재배치해 빠른 업무 복귀를 돕거나 휴식을 원할 경우 쉴 수 있도록 피해자 요청을 수용하는 게 표준이다.
그렇다면 무조건 실습생을 돌려보내달라고 요청한 학교가 사건을 덮으려 한 것일까? 교육부를 통해 확인한 결과 학교 역시 교육청 지침대로 일을 처리했다. 교육청 지침에 따라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학교는 우선 실습생을 학교로 복귀 시키고 사건을 처리한 뒤 학생의 재배치 등을 논의해야 한다. 그런데 왜 두 피해학생이 농협으로 복귀하지 않은 것일까. 교육부에 따르면 한 피해 실습생은 적성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복귀를 거부했고 또 다른 피해 실습생은 더 좋은 금융권을 도전하겠다는 이유로 학교에 남았다.
결국 농협과 학교는 모두 정상적이고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 그럼 모두 해결된 것일까? 이번 성폭력 사건으로 해당 농협 지점이 속한 농협 A 조합은 현장실습 선도기업에서 해제됐다. 현장실습 선도기업은 현장실습 참여기업 가운데 실습 환경이 좋은 우수 기업을 뜻한다. 교육청이 지정하는 선도기업은 수업일수 3분의 2를 마친 고교 3학년생을 졸업에 앞서 조기 채용할 수 있고 이에 따른 법인세 인하, 지원 등의 정부 혜택을 받는다.
이에 따른 피해는 A 조합 인근 학교와 학생에게 전가됐다. 이번 조치로 피해 실습생의 모교와 인근 학교 소속 학생은 농협 A 조합 산하 지점 10여 곳에서 조기 취업이 보장된 현장실습을 할 수 없게 됐다. 학교 입장에선 신입생 모집에도 문제가 될 만큼 큰 피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자 개인의 범죄와 구조적 문제에 따른 산업재해를 분리해 세부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현재의 현장실습 선도기업 지정 및 현장실습 제한기업 관련 정책은 대부분 산업재해가 발생한 제조업에 집중돼 있는 까닭이다. 최근 발생한 현장실습 관련 불미스런 사건 역시 거의 산업재해였다.
익명을 원한 한 현장실습 선도기업 관계자는 “성폭력 사건 발생 시 선도기업에서 해제되는 규정은 다소 일방적이다. 현장실습 선도기업 해제에서 중요한 ‘불미스런 사건’에는 여러 유형이 있기 때문이다. 보통 특성화고 실습생과 관계가 깊은 ‘불미스런 사건’은 기업의 구조적 문제에 따른 ‘산업재해’가 대부분”이라며 “금융권 같은 사무직종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은 기업의 구조적 문제라고 하기보다는 구성원 개인의 범죄로 보는 게 맞다. 구성원 개인의 범죄를 기업 자체의 구조적 문제랑 똑같이 취급해 선도기업 해제로 이어지면 인근 학교와 지역 학생 입장에서 타격이 너무 크고 되레 은폐가 이뤄질 수 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학교 입장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성폭력이 일어난 회사를 그냥 놔두기도 어려운 노릇”이라며 “농협 전체를 선도 기업에서 해제하면 피해가 막심해 조합 정도에서 선도 기업 해제가 이뤄졌다. 적정선을 찾는 과정이 있었지만 성폭력 사건을 무시할 순 없었다. 좋은 대안을 찾아보도록 하겠다”고 했다.
한편 농협 안팎으로 가해자 2명에 대한 정직 처분이 충분치 않다는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미성년자 성추행은 형사처벌 대상이다. 이에 대해 농협 관계자는 “해직 바로 전 단계가 정직이다. 가장 높은 수준의 징계를 내린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직원 2명의 솜방망이 징계뿐만이 아니다. A 조합의 총책임자인 조합장 역시 이들 실습생에게 술을 강권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보통 지역 농협의 인사위원회 최고 의사결정자는 조합장이다. 자체 징계가 불가능한 구조다. 이에 대해 조합장 A 씨는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았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