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원 회장 녹취록 공개에 “터질게 터져” 반응…방만 경영·사업자 선정 의혹 등도 제기돼
폭언·갑질 논란이 불거진 권용원 금융투자협회 회장. 사진=연합뉴스
지난 18일 연합뉴스TV는 권용원 회장이 운전기사와 직원 등에게 폭언·갑질을 한 녹취록을 공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권 회장은 자신의 운전기사에게 “오늘 새벽 3시까지 술 먹으니 각오하고 오라”고 말했다. 이에 운전사가 “아이 생일”이라며 난처해하자 권 회장은 “미리 얘기 했어야지, 바보같이. 그러니까 당신이 인정을 못 받는다”라고 크게 면박을 줬다.
다른 녹취록에서는 권 회장이 임직원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직원에게 “너 뭐 잘못했니 얘한테. 너 얘한테 여자를 XXX 인마”라며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발언을 했다. 또한 홍보담당 직원에게는 “잘못되면 (기자들) 죽여 패버려”라는 폭언을 하기도했다.
금투협 안팎에서는 권용원 회장의 이번 갑질·폭언 논란에 대해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투협의 한 관계자는 “권용원 회장의 갑질과 폭언은 유명했다. 술을 좋아해서 실수도 많았다. 인사불성이 돼 기억을 못해서 하는 잘못이 아니다. 다음날 항상 사과를 하는 것을 보면 인지는 했다고 봐야 한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다보니 일이 터진 것”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사례가 많다보니 권 회장에 대한 녹취가 얼마나 존재하는지도 확인이 안 될 정도라는 말까지 나온다. 앞서의 관계자는 “예전부터 내부 직원들 사이에 권 회장 말실수와 갑질, 폭언 관련 녹취록이 파악이 안 될 정도로 광범위하게 돌아다닌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권 회장의 문제 이전에도 금투협은 방만 경영 및 내부 비리 등으로 구설에 올랐다. 금투협은 업무질서 유지 및 공정한 거래를 확립하고, 투자자를 보호하며 금융투자업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2009년 조직됐다. 증권사, 자산운용사, 선물사, 신탁사 등 정회원으로 이름을 올린 회사가 296곳이다. 정회원 외 투자자문사, 보험, 온라인소액투자중개업, 종금, 증권금융사 등 준회원 109곳과 사무관리회사, 집합투자기구평가사, 채권평가사, 신용평가사 등 특별회원사 25개까지 더하면 회원 총수는 430곳에 달한다. 이들 회원사들이 금투협에 내는 회비는 연간 460억여 원에 이른다.
금투협은 회원사에서 내는 회비로 운영되고 있음에도 지난해 권용원 회장과 증권사 대표들이 외유성 출장을 떠나고, 협회 임직원 임금이 금융업계 다른 유사기관보다 과도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에도 금투협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 제기에도 금투협은 하나도 개선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투협의 다른 관계자는 “협회 내부에도 줄서기, 낙하산 인사가 많아 업무를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올해 초 금투협의 임원이 자신의 지위와 협회 자금을 이용해 관계사에 지인의 부정채용을 도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협회 회비를 관계사에 지원금 형식으로 지급해 지인의 임금을 보전해주는 형식을 취했다는 것.
외부 사업자 공고 및 선정과정에도 의혹이 나왔다. 금투협을 나온 전직 관계자는 “금융업계 사안이 있거나, 법적인 이슈가 있으면 외부컨설팅 업체를 선정해 자문을 받는다. 외부컨설팅 업체 선정 과정에서 선정위원들이 A라는 회사를 선택했다. 그런데 금투협 임원들이 배점 결과를 뒤집어서 B라는 회사를 선정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고 비판했다.
서울 여의도의 금융투자협회 건물. 사진=박은숙 기자
결국 가장 큰 문제는 금투협이 협회로서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의 전직 관계자는 “금투협이 매년 회비를 받으면서도 회원사들에 대한 역할을 못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협회에서 쓰는 통계시스템이나 홈페이지는 몇 년째 그대로다”며 “금투협으로 모이는 금융자료가 엄청나다. 제대로 된 자료 통계 분석을 해줘야 한다. 또한 신생사들이 많다. 그런 회사들이 법률이나 규정에 대해 고민할 때 상담해주고 지원해줘야 한다. 현재는 부족하기만 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누적되는 고질적인 문제다. 금투협이 업계 중 처우도 좋다보니 보신주의에 빠졌다. 내부적으로 대대적인 인적쇄신 없이는 고쳐지지 않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금투협은 “회원 상호 간의 업무질서 유지 및 공정한 거래를 확립하고 투자자를 보호하며 금융투자업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립됐다. 지금 이대로라면 그 목적을 이루기 어려워 보인다.
한편 이번 갑질·폭언 논란이 불거지자 권용원 회장은 지난 21일 사과문을 내고 “저의 부덕함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으신 모든 분들, 특히 기자 여러분, 여성분들, 운전기사를 포함한 협회 임직원께 진심으로 머리 숙여 깊이 사과드린다”며 “이번 사안을 매우 엄중하게 받아들이며,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깊이 뉘우치고 있다. 그 어떤 구차한 변명도 하지 않겠다”고 전했다.
향후 거취에 대해서는 “관계되는 각계각층에 계신 많은 분들의 의견과 뜻을 구해 따르도록 하겠다”며 “조직이 빨리 안정을 되찾아 중요하고 시급한 현안들이 중단 없이 추진되기를 희망한다”고 즉답을 피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권 회장이 사태가 가라앉기를 기다리다 회장직을 유지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권 회장 측은 추가적인 녹취가 나올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의 내부 관계자는 “권 회장 거취에 대해 확실히 결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추가적인 갑질 녹취가 공개될까 염려하고 있다. 그것만 아니면 시간이 지나 흐지부지되길 기다렸다 회장을 계속 할 수도 있을 듯하다”고 전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누가 ‘폭탄’을 던졌나…권용원 회장 갑질 녹취록 출처 권용원 회장의 갑질·폭언 녹취록이 어떻게 공개된 것인지에 대해서도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다. 먼저 금융투자협회에서 내부갈등을 겪고 있는 노동조합에서 나온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있다. 현재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금융투자협회지부(금투협 노조)는 김시우 노조 위원장과 집행부 사이에 분열로 다툼을 벌이고 있다. 노조 위원장 혹은 집행부 측이 출처라는 것이다. 하지만 김시우 위원장과 노조 집행부 양측 모두 녹취록 공개와 관련이 없다고 반박했다. 김시우 위원장은 “내가 녹취록을 공개하지 않았다”며 “현재 노조가 내부 분열 상황이다. 내가 이 시점에서 권 회장을 공격하며 대립각을 세울 이유가 없다. 노조 집행부 측도 아닐 것이다. 노조에서는 관련 내용을 입수한 적이 없다. 노조와 전혀 무관하다”고 밝혔다. 실제 금투협 내부 관계자 역시 “외부 인사에 무게감이 실리고 있다. 금투협이 입는 타격이 너무 크다. 내부에서 굳이 터뜨릴 이유가 없다”고 전했다. 노조가 아닌 다른 가능성도 제기된다. 노와 사가 모두 타격을 입었을 때 이익을 보는 누군가가 터뜨렸을 수도 있다는 것. 익명을 요구한 금투협 내부 다른 관계자는 “금투협 내에 노사 양측으로부터 거취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새로운 회장이 와야 유리해진다. 동기는 있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귀띔했다. 또한 권 회장의 갑질 폭언이 금투협 내부에서는 워낙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서 누군가 우발적으로 터뜨렸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민웅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