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자본 쏟아부었지만 투자금조차 회수 못해…“한국의 경우 대북사업 특수성 감안해야” 지적도
지난 10월 23일 금강산 현지지도 중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연합뉴스
이집트 통신기업 ‘오라스콤 인베스트먼트 홀딩스(오라스콤)’는 2008년 북한의 3세대 이동통신 사업에 4억 달러(약 4662억 원)를 투자했다. 오라스콤은 조선우편통신공사와 지분을 합작해 통신기업 고려링크 대주주 자격을 얻으면서 북한 통신 사업에 발을 들였다. 막대한 수익을 기대하던 오라스콤 전망은 엇나갔다.
국외 송금을 사실상 불허하는 북한의 특수성에 오라스콤이 투자한 자본은 발이 묶였다. ‘들어올 땐 마음대로 들어오지만, 나갈 땐 그게 아니다’라는 식이었다. 고려링크 현금 잔고는 2015년 기준 5억 3900만 달러 규모지만 북한 당국 규제로 자본을 환전한 뒤 회수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다. 고려링크 현금 잔고는 북한 원화로 쌓이고 있으며, 오라스콤은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오라스콤은 평양 랜드마크인 류경호텔에도 투자했다. 복수의 대북 전문가는 “오라스콤이 류경호텔에 투자한 건 고려링크 투자 자본 회수 목적으로 북한에 보내는 유화 제스처일 수 있다”고 했다.
2008년 12월 15일 평양에서 열린 북한 3세대 이동통신 서비스 개통 기념식. 사진=연합뉴스
2019년 2월 12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석한 나기브 사위리스 오라스콤 회장은 “개방된 북한은 기회로 가득 찬 나라”라고 했다. 북한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는 발언이었다. 사위리스 회장 발언을 두고 한 대북 전문가는 “(오라스콤이) 자신들의 자본이 묶여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북한을 비판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북한 통신사업에 손을 댄 외국기업은 오라스콤뿐만이 아니다. 태국 굴지의 록슬리그룹은 오라스콤보다 먼저 북한 통신사업에 투자했다. 20세기 말 사업에 착수한 록슬리는 대만-핀란드 통신회사와 합작해 록슬리 퍼시픽을 설립, 1995년 북한의 나진-선봉 지역 통신사업의 닻을 올렸다. 2002년 록슬리는 평양 일대 지역으로까지 휴대전화 서비스 영역을 넓혔다.
하지만 사업은 지지부진했다. 북한 시민들이 구매하기에 휴대전화 단말기 가격은 너무 비쌌다. 통신 인프라 역시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결국 록슬리는 “북한에서 더 이상 사업을 확대하지 않을 것”이라며 사실상 북한 시장 철수를 선언했다. 록슬리가 북한 이동통신 사업에 투자한 규모는 3000만 달러 정도로 알려져 있다.
록슬리가 북한에서 철수한 뒤인 2004년 ‘룡천역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북한 당국은 이 사고를 휴대전화 정보 유출로 인한 사고로 판단했고, 휴대전화 2만 대를 몰수했다. 이로써 록슬리가 일궈온 북한의 이동통신 사업 터전은 씨가 마르게 됐다.
2008년엔 한 중국 기업이 6억 위안(1001억 원)을 북한 함경남도 원산 소재 수산물 가공 기업에 투자했다가 자본을 회수하지 못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중국 국적 대북경제 전문가 A 씨는 “당시 중국기업이 6억 위안을 민간 투자자로부터 끌어모아 북한 수산물 가공업 회사에 투자했다. 하지만 사업이 시작된 뒤 북한 당국이 수산물 가공업 회사를 몰수하는 일이 벌어졌다. 중국기업이 투자한 돈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증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라고 했다.
북한은 위화도 개발사업 관련, 중국 투자 유치를 진행 중이다. 위화도 국제 자유구 조감도. 사진=일요신문DB
A 씨는 일요신문이 보도한 ‘[단독입수] 북한판 라스베이거스, 위화도 프로젝트 공개’ 기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A 씨는 “위화도 개발사업은 전형적인 북한의 외화 끌어들이기 수법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A 씨는 “위화도 개발 사업 개요는 간단하다. 북한이 중국 민간투자를 바탕으로 위화도를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사업 계획 자체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대북 사업에서 자금 회수가 어려울 수 있다는 리스크는 존재한다. 중국 투자자들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중국 투자자들이 위화도 개발사업에 투자를 꺼리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물론 한국의 대북사업은 앞선 여러 나라들과 경우가 다르다. 기업이 아닌 정부 주도로 대북사업을 추진해 온 까닭이다. 1990년대 말부터 본격적인 대북 투자 사업을 진행한 정부는 금강산 관광 사업과 개성공단 조성 등을 통해 ‘대북 평화 무드’를 고조시켰다. 하지만 금강산 관광 사업은 2008년 박왕자 씨 피살사건을 계기로 중단됐다. 2005년 입주를 시작한 개성공단도 2016년 한국 정부가 폐쇄를 결정했다.
폐쇄된 지 3년이 넘은 개성공단. 사진=연합뉴스
지금은 중단된 대북사업들을 두고 일부 전문가들은 “결과론적으론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적지 않은 의미가 존재했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이들은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사업엔 경제 논리로만 설명할 수 없는 특수성이 있다”고 했다. 반면 한 탈북민은 “한국의 대북사업은 자본으로 평화를 구매하는 거래 형식”이라면서 “자본이 끊기면, 평화 무드도 사라지는 조건부 사업”이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