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사 갑질 논란 이어 이번엔 약정체결 전 착공신고…LH 측 “기금 안정성 때문, 법적 문제 없다”
‘문재인 정부 1호 뉴스테이 사업’, 구로 뉴스테이 공사 현장 전경. 사진=최준필 기자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함진규 자유한국당 의원실 등에 따르면 HUG는 구로 뉴스테이 사업에서 약정체결과 기금출자를 담당했다. 약정체결과 기금출자는 각각 지난 9월 18일과 9월 20일 마무리됐다. LH는 기금출자 이후 진행되는 사후관리를 맡았고, 그 절차는 착공신고였다. 그런데 착공신고가 약정체결과 기금출자보다 앞선 9월 12일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두고 업계 관계자는 “계약서에 사인도 하기 전에 삽부터 뜬 모양새다.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에 대해 LH 관계자는 10월 8일 “인허가(착공신고)를 완료한 뒤 기금출자 단계가 이뤄진 이유는 기금의 안정성 때문”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기금출자가 끝났는데 인허가가 연기되면 기회비용이 발생한다. 그렇게 되면 사업기간이 늘어나고 기금의 불확실성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기금출자가 끝나기 전 착공신고에 들어가는 경우가 일반적인지에 대해서 LH 관계자는 “그렇게 하는 사업장도 있고 아닌 곳도 있다”고 답했다.
LH 관계자는 “공공택지 개발의 경우 ‘인허가 리스크’가 거의 없다. 하지만 민간제안 사업에선 인허가 리스크를 비롯한 각종 민원으로 사업이 연기될 우려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조권 관련 민원이다. 지역 주민이 반대하면 사업이 지연될 수 있다. 이런 경우엔 기금출자나 약정체결을 하기 전 착공신고를 먼저 하기도 한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금출자와 약정체결을 담당했던 HUG의 관계자는 “사후관리 절차는 체결한 약정서에 따라 하게 돼 있다”고 했다. ‘착공신고가 약정체결보다도 6일 앞서있다’고 지적하자 HUG 관계자는 “(해당 절차는) 사업계획 협의에 따라 진행됐을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이 관계자는 “꼭 착공 전에 약정이 돼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약정은 돈을 언제 주고받을지를 협의하는 단계고, 사업은 사업대로 진행된다. 절차의 선후관계에 오류가 있어 보이진 않는다”고 했다.
행정규칙 주택도시기금 운용 및 관리규정엔 앞서 언급한 절차들에 대한 순서가 명시돼 있다. 규정 제46조(출자승인), 제47조(사업약정), 제49조(사후관리의 범위) 순이다. 구로 뉴스테이 사업은 이 절차의 역순으로 진행된 셈이다. 또 제49조(사후관리의 범위)는 “공사가 출자대금을 실행한 이후 다음 각 호의 사후관리에 대한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사업 진행의 순서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일요신문이 접촉한 복수의 변호사들은 “행정규칙이 법적 구속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실무적 가이드라인인 것은 분명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 변호사는 “사업 진행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과 관련 의혹을 제기할 근거는 충분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현대산업개발 본사. 사진=이종현 기자
구로 뉴스테이 사업을 둘러싼 구설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상가임대 사업자로 지정됐다 취소된 엔터식스 측은 “현대산업개발이 엔터식스를 상가 임차인에서 제외하는 과정에서 HUG가 제대로 된 감시자 역할을 하지 않았다”며 봐주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2018년 4월 현대산업개발은 엔터식스를 뉴스테이 사업에서 제외했다. 그 이후 아직 새로운 임대 사업자는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엔터식스 측은 HUG가 현대산업개발에 제재를 가하지 않은 것엔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다(관련기사 주택도시보증공사 국감에 정몽규 HDC 회장이 긴장하는 까닭).
LH의 ’뉴스테이 민간사업자 공모지침‘ 8조(신청자격 및 방법)에 따르면 “사업신청자는 상가 임차인의 입점확약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돼 있다. 공모지침 33조(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취소)에 따르면 “사업신청 시 제출한 계획을 변경한 경우”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취소할 수 있다. 엔터식스의 입점확약서를 제출해 우선협상대상자 자격을 얻은 현대산업개발은 지난 4월 엔터식스를 사업에서 제외했다. 사업신청 당시 계획을 일방적으로 변경한 것이다.
현대산업개발 측은 “엔터식스는 입점확약서만 작성했을 뿐 구체적 약정을 체결하지 않았다. 제출한 사업계획서 역시 우선협상대상자 지정 이후 수정 및 변경이 가능하다. 확정적이거나 구속적 효력을 갖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한 바 있다.
HUG 관계자는 “심사 단계에서 현대산업개발이 상가 임차인에 대한 내부적인 재검토를 한다고 했다. 이에 HUG는 (엔터식스가 사업에서) 빠진다고 가정했을 때 보완책으로 확약서를 제출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상가 임차인의 존재가) 그렇게 필수적인 요건은 아니라고 봤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구로 뉴스테이 사업을 둘러싼 이런 논란들에 대해 “법의 사각지대에서 중소기업이 갑질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사례”라면서 “여러 정황을 살펴봤을 때 공기업이 대기업을 감싸줬다는 ‘짬짜미 의혹’이 충분히 제기될 만하다. 앞으로 진행될 뉴스테이 사업들을 위해서라도 꼼꼼히 짚어봐야 할 논란”이라고 지적했다.
야당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진상 규명에 착수했다. 함진규 의원은 10월 14일과 21일 국정감사에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을 비롯한 고위 관계자 3명, LH 실무자 3명, HUG 실무자 7명 등 총 13명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자유한국당의 다른 의원실에선 서울중앙지검에 ‘현대산업개발의 대기업 갑질행위’ 관련 수사를 요청했다. 바른미래당의 한 의원실은 공정거래위원회에 ‘현대산업개발 갑질 논란’ 관련 유권해석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은재 자유한국당 의원은 감사원 국정감사에서 LH와 HUG에 대한 감사를 요청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