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치엘비 거래대금 삼성전자 제쳐, 타 바이오주도 주가 급등…회사 ‘자체 발표’에 춤춘 주가, 당국 투자 경고
기업 가치가 롤러코스터를 타던 바이오 기업들이 최근 주식시장에서 대규모 자금을 흡수하고 있다. 사진=일요신문DB
지난 10월 한 달 동안 국내 증권시장 주인공은 에이치엘비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 기간 에이치엘비의 주식 거래대금은 총 11조 49억 원을 기록했다. 증권시장 상장 기업들 가운데 가장 많았다. 그동안 거래대금 1위를 지켜오던 삼성전자는 2위로 밀렸다. 삼성전자가 1위 자리를 내준 건 지난해 3월 이후 처음이다. 월별 기준으로 최근 5년 간 삼성전자 거래대금을 넘어선 기업이 나온 건 5차례에 불과하다.
에이치엘비의 지난 9월 거래대금은 1조 1537억 원이었다. 한 달 만에 거래대금이 853%(9조 8512억 원) 늘었다. 대규모 자금을 순식간에 빨아들이면서 지난 10월 22일 장중 한때 코스닥 시가총액 1위에 올라서기도 했다. 코스닥 시총 순위, 특히 ‘대장주’ 자리가 뒤바뀌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지난 10월 한 달 동안 에이치엘비 주가는 178.1% 급등해 15만~16만 원 선에 거래됐다. 그런데 이 회사만 ‘독주’를 한 건 아니다. 에이치엘비생명과학도 같은 기간 주가가 246.7% 급등했고, 신라젠이 136.5%, 헬릭스미스 46% 올랐다. 그 밖에 셀트리온헬스케어, 메지온, 제넥신, 셀트리온제약 등의 주가도 함께 두 자릿수로 올랐다.
바이오 기업들이 존재감을 과시하면서 코스닥 지수 자체를 들어올렸다. 이 때문에 코스닥 시장 일평균 거래대금(5조 3300억 원)이 10월 코스피 시장(4조 4200억 원)을 역전했다. 이는 정부의 코스닥 활성화 정책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던 2018년 1월 이후 처음이다. 한 대형 증권사 임원은 “코스닥 시가총액은 코스피의 6분의 1 정도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며 “코스닥 시장, 특히 바이오 기업들에 자금이 빠르게 쏠렸다”고 설명했다.
11월 들어서도 에이치엘비는 코스닥 시총 2위를 유지하고 있고, 상위 10곳 가운데 6곳을 바이오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이 같은 바이오주의 폭발적인 상승세는 에이치엘비에서 시작됐다. 이 회사는 지난 7월 30일까지만 해도 ‘실패한 바이오 업체’였다. 항암 신약물질 리보세라닙 임상 3상 중간 결과가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하고 대표이사 교체가 반복되면서 주가는 2만 원대까지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지난 9월 말 리보세라닙이 “글로벌 임상 3상에서 유의미한 효능이 입증됐다”는 소식이 시장에 퍼지기 시작했고 자금이 몰리기 시작했다. 다른 바이오 기업들에 불씨가 옮겨 붙은 것도 이때부터다.
# 주식시장 뒤흔든 ‘소식’의 정체는?
문제는 사실상 주식시장을 ‘집어 삼킨’ 앞서의 에이치엘비의 리보세라닙 ‘소식’의 신뢰도다. 이는 에이치엘비의 자회사인 엘리바가 유럽종양학회에서 약물 임상결과를 발표하면서 공개됐는데, 회사의 자체 분석 결과였기 때문이다. 올해 6월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내용의 임상 3상 중간발표를 뒤집는 ‘주장’이었다.
에이치엘비는 별도로 미국 FDA(식품의약국) 신약허가신청을 위한 사전미팅도 완료했다고 발표했는데, 역시 회사의 자체 발표였다. 한 증권사 바이오주 담당 연구원은 “임상 결과와 사전미팅 등은 현재로선 회사의 일방적인 홍보에 가깝다. FDA에 신약 후보물질 허가신청(NDA) 등이 남은 상황에서 기대감이 커졌고 주가가 롤러코스터를 타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한국거래소는 지난 10월 28일 에이치엘비 주가가 이상 급등했다는 이유로 투자경고종목으로 지정, 하루 거래를 정지하기도 했다.
에이치엘비가 자사 홈페이지에 공개한 임상진행 현황. 사진=에이치엘비 홈페이지 캡처
신라젠과 헬릭스미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신라젠은 개발 중이던 항암 바이러스 치료제 ‘펙사벡’이 지난 8월 초 미국 데이터모니터링위원회로부터 임상 중단 권고를 받으면서 사실상 실패했다. 특히 임상 중단 공시를 앞두고 신라젠 보통주가 대량 매각됐는데, 금융감독원이 해당 자료를 검찰에 넘겼고 검찰은 이를 근거로 회사 경영진과 관계자들이 내부정보를 이용했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신라젠도 지난 9월 30일 유럽종양학회(ESMO) 포스터 전시 세션3에서 “펙사벡 선행요법으로 사용한 임상 1상을 진행한 결과 간 전이성 대장암 환자에서 종양이 완전히 소멸됐다”고 발표했다. 역시 회사 자체 발표인 데다, 임상 1상인 점을 고려하면 주가가 지난 10월 한 달처럼 급등하기 어렵다는 게 증권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헬릭스미스 역시 9월 말 임상 데이터 오염이라는 치명적 오류로 임상 3상 결과 도출에 실패했다. 특히 회사 최대주주인 김선영 대표 처남의 부인과 딸은 미국 임상에서 부정적 결과가 나오기 직전인 지난 9월 23일 각각 2500주와 500주를 17만 6000원대에 장내 매도한 것이 입길에 올랐다. 신라젠과 마찬가지로 10월 한 달 동안 주가를 끌어올릴 만한 이슈는 없었다.
#‘바이오주 상승세’ 업계-증권가 의견 엇갈려
증권가와 바이오업계에선 최근 바이오주 상승세에 의견이 엇갈린다. 그동안 가라앉았던 바이오주 투자 심리가 되살아났다는 주장과 심각한 과열 양상이라는 반박이 부딪히고 있다. 한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일부 기업들의 실패가 바이오 업계 전체 실패는 아니다. 적지 않은 기업들이 각자 여력에 맞게 신약개발에 도전하고 있다”며 “시장이 침체된 바이오 업계의 가능성을 다시 확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다른 증권사의 한 PB(프라이빗뱅커)는 “바이오 기업들의 주가는 오직 신약 개발 여부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며 “문제는 증권사나 투자자들이나 모두 업체의 자체 발표를 중심으로 투자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다, 주가 변동폭도 과하게 크다. 10월 한 달 동안에도 낙폭이 상당했다. 증권사들이 바이오주의 관심이 뜨거운데도 보고서를 거의 쓰지 않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투자를 하려면 주가를 보기보다는 기업들이 개발하는 신약의 가치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은 제약, 바이오주에 대해 연달아 투자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은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와 공동으로 지난 10월 17일 ‘바이오·제약주 관련 투자자 유의사항’이라는 보도참고자료를 17일 발표했다. 금융당국이 바이오·제약주와 관련해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주의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11월 3일에는 금융위·금감원·거래소가 신약 개발기업 임상 진행 경과 관련 주가 급등락에 따른 이상 매매도 집중 점검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바이오·제약주는 주가가 급변할 수 있어 ‘묻지마식 투자’는 큰 손실을 유발할 수 있다”며 “개발신약 임상시험이 대부분 해외에서 이뤄지고 있고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정보비대칭성도 커 ‘과장·허위풍문’에 노출될 가능성도 높아 투자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