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브로드밴드+티브로드·LG유플러스+CJ헬로 ‘세 불리기’…딜라이브 인수 막힌 KT, 인공지능·VR ‘승부수’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의 케이블TV 인수합병(M&A)이 공정거래위원회 심사를 통과하면서 KT가 독주하던 시장이 3사 체제로 재편될 예정이다. 반면 KT의 딜라이브 인수는 합산규제로 발목이 잡히면서 유료방송시장 1위 사업자의 위치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사진=박정훈 기자
공정위는 인터넷TV(IPTV) 사업자인 LG유플러스와 SK텔레콤 자회사 SK브로드밴드가 각각 케이블TV 1·2위 사업자인 CJ헬로와 티브로드를 M&A 하는 건에 대해 지난 10일 조건부 승인을 결정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위원회의 인허가 절차가 남아 있지만 공정위의 이번 판단은 방송통신 미디어 시장이 급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셈이어서 남은 절차도 순항할 것으로 보인다. 유료방송업계 한 관계자는 “케이블TV 가입자가 IPTV,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넘어가면서 품질이 떨어지고 기술적 한계에 부딪치는 상황에서 넷플릭스 같은 해외 OTT가 세를 넓히는 등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며 “플랫폼 강자인 통신사가 인수해 경쟁력을 높이면 해외 OTT에 대응할 수 있다는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절차가 마무리되면 KT(KT스카이라이프 포함)가 점유율 31.07%로 절대강자였던 시장은 3강 체제로 재편된다. 케이블TV 1위 사업자 CJ헬로(점유율 12.61%)를 품은 LG유플러스는 점유율이 11.93%에서 24.54%로 늘어나 KT를 바짝 추격한다. 2위 사업자 티브로드(9.60%)를 합병한 SK브로드밴드도 14.32%에서 23.92%로 늘어나면서, 3사 점유율의 격차가 확 줄어든다. 아울러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가 인수한 케이블TV 가입자들은 IPTV의 잠재 고객이 되기 때문에, 향후 두 회사가 유료방송시장에서 세를 늘리는 데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공정위가 M&A를 승인하는 대신 ‘기존 가입자들의 저가형 상품 전환·계약 연장을 거절하거나 고가형 방송 상품으로 전환할 것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내걸면서 케이블TV 가입자들을 인위적으로 IPTV로 옮길 수는 없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동통신·인터넷·유료방송 결합상품을 내놓는 통합 마케팅을 통해 가입자 전환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유료방송 시장이 IPTV로 넘어가는 현 시점에서 가입자 수는 1인자로 올라서는 핵심 요건이 된다. 동축케이블이나 광케이블로 방송프로그램을 보내는 케이블TV는 채널 수 늘리는 데 제한이 있지만 인터넷망을 사용하는 IPTV는 채널을 무제한 확장할 수 있다. 5G망을 이용한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등 신기술도 적용 가능하다. 아울러 콘텐츠사업자들은 더 많은 잠재적 시청자를 확보하기 위해 가입자 수가 많은 플랫폼에 콘텐츠를 공급하길 원하는 만큼, 고객 기반이 탄탄한 플랫폼사업자는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유료 콘텐츠를 수급할 수 있다. 홈쇼핑 사업자 등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업체에서 받는 송출 수수료(PP가 프로그램을 방영하도록 채널을 송출해주는 대가로 유료방송 플랫폼이 받는 수수료) 수익도 늘릴 수 있다. 유료방송사업자들이 인수합병을 통해 가입자 수 늘리기에 혈안인 이유다.
반면 KT는 발이 묶였다. 유료방송 합산규제 이슈로 지난해부터 추진해온 케이블TV 3위 업체 딜라이브 인수 추진이 막힌 탓이다. 합산규제란 시장 내 독과점을 막기 위해 1개 사업자가 위성방송·케이블TV·IPTV를 합친 전체 유료방송 가입자 수 3분의 1을 확보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다. 2015년 3년 일몰을 조건으로 시행돼 지난해 이미 만료됐지만, 재도입 주장이 나오면서 인수 작업이 중단됐다. 여야 정쟁으로 국회의 유료방송 합산규제 사후규제 논의가 미뤄지고 내년엔 총선을 앞두고 있어 단기간 결론나긴 힘든 상황이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는 당분간 공정위 눈치를 보겠지만 추후 통신-인터넷-방송 결합 할인 상품을 내놓는 등 가입자들의 IPTV 전환을 시도할 것”이라며 “경쟁사들은 덩치를 키워 가는데 KT는 가입자를 늘리지 못하는 상황이기에 이번 인수합병이 위협적일 수 있다”고 봤다.
공정거래위원회가 LG유플러스와 SK텔레콤 자회사 SK브로드밴드의 CJ헬로와 티브로드 인수합병 건을 승인하면서 유료방송 1위 사업자 KT와 점유율 차이가 급격히 줄어들게 됐다. 사진=박정훈 기자
KT 입장은 기술력 강화로 경쟁사들의 추격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AI 큐레이션을 통해 소비자 맞춤형 서비스를 강화하고 5G·VR 기술 등을 접목해 고화질의 실감형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 1위 사업자 위치를 공고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최근 스카이티브이와 디스커버리 아시아는 제휴를 맺고 합작법인을 설립해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나서기로 했다. 사업 다각화 차원으로 연내 새로운 OTT 서비스도 선보일 계획이다. KT 관계자는 “이번 인수합병으로 유료방송시장이 통신사업자 위주로 재편되는 것은 시장이 유연해진다는 뜻으로 합산규제가 풀릴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KT에 기회가 될 수 있다”며 “IPTV 서비스와 기술력 강화로 승부하겠다”고 밝혔다.
유료방송시장이 통신 3사 체제로 전환되면서 플랫폼 사업자들의 영향력은 미디어 전반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SKT와 KT, LG를 축으로 유료방송사업자 간 M&A가 더 활발해지면서 고객 쟁탈을 위한 콘텐츠 경쟁이 치열해질 것인 만큼 플랫폼 강자인 통신사와 콘텐츠 제작사 간 활발한 합종연횡이 일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최진봉 교수는 “통신사들은 가입자 수를 최대한 늘려 사업의 확장성을 높인 뒤 콘텐츠업체와 제휴하거나 직접 제작하는 방식으로 투자에 나설 것”이라며 “콘텐츠사 입장에선 만든 프로그램을 공급할 채널이 중요한 만큼 탄탄한 고객 기반을 가진 플랫폼업계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경쟁이 활발해지면 유료방송시장은 단순 방송프로그램 공급 차원을 넘어 AI·VR을 활용한 체험형 미디어, 시청자 선택에 따라 스토리라인과 결말이 바뀌는 인터랙티브 콘텐츠 등이 발달하는 등 소비자들이 다양한 서비스를 접할 것”이라며 “다만 3사 독과점에 따른 가격 담합과 서비스 선택권 폭 감소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